중국 최고의 여신 노닐던 얼음과 모래의 호수
중국 최고의 여신 노닐던 얼음과 모래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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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 천지의 도교사원, 복수관. ⓒ양기혁
복수관에서 바라본 맞은편의 봉우리 오른쪽 기슭에 노란색 지붕의 서왕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양기혁
사진의 줄무늬 상의가 콧수염이고, 그 옆에 대머리가 흰 두건을 벗고 앉아 있다. 간판의 양쪽 끝에‘淸眞’이라고 써서 이슬람식당임을 알리고 있다. ⓒ양기혁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15 도교 최고의 신을 모신 사찰, 그리고 이슬람식당에서의 저녁식사

너무 편하게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단숨에 올라와서 그런지 감흥이 덜한 느낌이고 나는 오히려 감기와의 악전고투로 감동을 느낄 새도 없었다. 가이드는 일행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하고 나서 근처의 한 사찰로 이동하였다.

‘福壽觀’이라는 도교 사원이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계단의 시멘트 가루며 손때가 전혀 묻지 않은 난간과 건물들이 어쩐지 조잡하고 어설프게 급조된 느낌을 주었다. 장식된 꽃들과 제물로 올려진 과일들도 조화거나 플라스틱 제품들을 올려놓아 무성의하고 천박하게 보이기도 했다.

 

▲ 천산 천지의 도교사원, 복수관. ⓒ양기혁

사찰 안으로 들어가니 일행들을 모아놓고 한 여인이 나와 해설을 하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우두커니 서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일행의 뒤에 서서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사찰은 몇 개의 단계로 되어있는데 아래로부터 중국의 민간에서 숭배하는 역사적 인물이거나 신화 속의 인물들을 모시고 있고 맨 위 삼청전(三淸殿)에는 도교 최고의 신 세 분-원시천존(元始天尊), 영보천존(靈寶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을 모시고 있었다. 삼청전 신선의 간략한 소개라고 쓴 표지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앙의 첫째 신 원시천존(元始天尊)은 우주생성 이전에 이미 있었으며, 천계(天界)를 주지하고,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한 분이다. 좌측의 두 번째 신은 삼천계(三天界)의 청선경(淸仙境)에 거하시는 영보천존(靈寶天尊)이며, 삼원기중의 하나인 적혼태가 근원이 없이 생겨나 혼돈을 처음으로 분별하여 만물의 음과 양을 나누었다. 우측의 세 번째 신은 ‘태상로군(太上老君)’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에게 ‘노자(老子)’로 잘 알려져 있다.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이(耳), 자(字)는 담(聃). 초(楚)나라 초(楚)현 출생으로 도덕경(道德經) 오천자를 지었고, 도가사상의 창시자로서 도교의 스승이 되었으나 몸을 낮추어 도교의 세 번째 신이 되었다.’

삼청전을 끝으로 관람을 마치고, 일행을 인솔하고 해설하던 여인은 한 구석진 방으로 사람들을 들어가게 하여 바닥의 방석에 앉게 하였다. 앞에 서 있던 검은 예복을 입은 젊은 도사가 뭔가를 설명하고 나서 한사람씩 앞으로 나오게 하여 주문을 외우고는 천산에서 자라는 솔잎가지에 물을 묻혀 이마에 찍어 주었다.

아마도 무병장수와 현세의 복을 빌어주는 주문으로 짐작되는데, 내 차례가 되어서 앞으로 나간 나에게도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는 솔가지에 물을 묻혀 찍어주었다. 그리고 반대편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태워서 복을 비는 향을 하나씩 사들고 나왔다. 향을 사지 않고 미리 밖으로 나온 나는 일행들이 향을 태우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시 천지 호숫가로 와서 내려가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온 가이드는 뒤늦게 이름이 ‘량단’이라고 하며 자기를 소개했다. 내가 수첩을 꺼내서 이름을 써달라고하자, ‘梁丹’이라고 썼다. 그 밑에 내 이름을 한자로 쓰고 우리가 성이 같다고 하자 그녀는 매우 놀라워하면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녀에게 창바이산(백두산)의 천지가 있는데 화산폭발로 생긴 것이라고 말하고, 여기와 어떻게 다른지 묻자 이곳 천지는 천산의 눈과 얼음이 녹아서 생긴 호수이며, 내 수첩에다가는‘빙적호’라고 썼다. 얼음과 모래(혹은 자갈)의 호수라는 뜻인 것 같다.그녀는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설명했던 내용을 다시 나에게 했다. 이곳 신장위구르 지역에는 북쪽에서부터 알타이(阿爾泰), 티엔산(天山), 쿤룬이라는 세 개의 산맥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운데 있는 천산이 으뜸이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복수관에서 바라본 맞은편의 봉우리 오른쪽 기슭에 노란색 지붕의 서왕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양기혁

그리고 쿤룬산에 산다는 도교 최고의 여신인 서왕모(西王母)가 이곳 천지에서 목욕을 했으며, 아까 갔던 도교사원에서 마주 바라다보이는 봉우리의 호숫가에 서왕모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며 손으로 가리킨다.

천지 관람을 끝내고 시내로 들어와서 이곳 특산물인 옥(玉) 판매장쇼핑을 끝으로 한 사람씩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하여 나도 숙소 가까운 도로에 내려서 유스호스텔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방에는 까오펑의 짐들이 자전거에 단단히 묶인 채 아직 세워져 있었다. 오랜 여행기간 동안 유일한 연락수단일 수도 있는 핸드폰이 고장났다면 출발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침대에 드러누워 피곤한 몸을 쉬었다가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시간이 되어서 다시 방을 나왔다. 근처에 있다고 하는 공항 가는 셔틀버스 타는 곳을 미리 알아보아야 했고, 어제 갔던 시장에서 양꼬치구이를 먹어보고 싶었다.

   

우선 시장에 먼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셔틀버스를 알아보기로 하고 이미 익숙해진 길을 따라 번화한 고층빌딩의 숲과 인파 속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시장은 파장 분위기였다. 노점상들은 다 치워져 있었고 지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문을 열고 있는 양꼬치구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두어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위구르 인으로 보이는 청년 둘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호리호리한 청년은 식당 안에서 주문을 받거나 음식 나르는 일을 하고, 머리에 흰 두건을 쓴 뚱뚱한 청년은 밖에서 양꼬치를 굽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에 메뉴판도 없고 음식을 먹는 사람도 없어서 뭘 시켜야 좋을지 알수 없었다.

▲ 사진의 줄무늬 상의가 콧수염이고, 그 옆에 대머리가 흰 두건을 벗고 앉아 있다. 간판의 양쪽 끝에‘淸眞’이라고 써서 이슬람식당임을 알리고 있다. ⓒ양기혁

다가온 콧수염에게 맥주나 술 종류가 있는지를 물어보자 술은 팔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는 이슬람 식당인 것이다. 앞 테이블에서 막 먹기 시작하는 양꼬치구이를 가리키며 하나를 주문했다. 콧수염이 되물었다.
“이거?”
내가 다시 “이거.”하고 말하자, 그는 뒤돌아서 밖에 있는 흰 두건에게 소리쳤다.
“이거.”
흰 두건이 콧수염에게 되물었다.
“이거?”
마치 ‘양꼬치구이를 하나만 시키는 사람도 있냐?’, 혹은 ‘양꼬치 하나를 어떻게 굽냐?’라고 따지는 것 같았다. 앞 테이블에 앉은 남녀커플과 건너편의 두 남자도 가볍게 웃었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콧수염이 주방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흰 두건에게 다가가서 손가락 두 개를 펴보이며 말했다.“량거.” 흰 두건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방 안쪽에다 대고 그들의 말로 수정한 나의 새 주문을 외쳤다.

잠시 후 나온 양꼬치구이는 소금과 양념이 적당히 잘 되어 있어 맛있었다. 그리고 앞 테이블에 면 종류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같은 것으로 하나 달라고 했다. 면은 낮에 천산에서 먹었던 것과 똑같아 보였는데, 텁텁한 맛이 없고 훨씬 맛있었다. 양꼬치구이와 면 한 그릇으로 든든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아직 날이 새지도 않았는데 기침이 계속 나오고 점점 심해져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가래를 뱉어내야 하고, 처음 따끔거리며 아프던 목이 이젠 얼얼해지며 부어가는 느낌이다. 까오펑은 잠시 코를 골기도 하고 뒤척이며 잠들어 있다. 어쩌면 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전등을 켜둔 채 누워 있다 깜박 잠이 들었고, 문을 여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곧 불이 꺼지고 나서 다시 잠이 들었다. 몇 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상당히 늦은 시간에 들어온 것 같았다.

뜨거운 물을 좀 마셔야겠다 싶어서 방을 나와 로비로 갔다. 새벽의 여명이 창밖에 어슴푸레하게 다가선 어두컴컴한 로비의 소파에 한 남자가 고양이와 함께 누워 있다 인기척에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유스호스텔 주인 남자였다. 가지고 간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며 그에게 말했다.
“워간마오러(감기 걸렸습니다).”
그가 놀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니간마오러? 쩌리 간마오러마?(여기서 감기 걸렸습니까?)”
“싼티엔 치엔 짜이 둔황 간마오러 위에라이위에 션션더.(三天前在, 3일 전 둔황에서 감기 걸렸는데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설명을 하자, 그가 다시 손으로 물 마시는
동작을 해보이며 말했다.
“둬허카이수이(뜨거운 물을 많이 마셔요).”
방으로 돌아와서 감기약과 함께 뜨거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침대에 누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배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배낭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고 다시 두꺼운 옷과 중국에서 산 책들과 기념품들을 깊숙이 집어넣고 정리를 하는데, 하나 남은 단팥빵과 치킨 한 조각이 나왔다. 치킨은 그제 우루무치 역 앞 식당에서 점심 식사 때 같이 나온 것을 안 먹고 배낭 속에 넣어두었던 것이었다. 단팥빵 하나와 치킨 한 조각에 뜨거운 물 한 컵을 마시니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었다.

배낭을 정리하고 나서 맨살의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까오펑에게로 가서 나직하게 불렀다. 그가 돌아보며 몸을 일으켰다.
“짜이지엔!”
나는 손을 들어 흔들며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방을 나와 밖으로 나가기 전에 복도와 로비에 쓰여 있는 낙서 중에 몇 가지를 카메라로 찍었다. 멕시코에서 온 친구는‘CABRONES!!’라는 심한 욕을 써놓았고, 스페인의 카탈루니아주 깃발을 그려놓고, ‘CATALONIA 不是西班牙(카탈루니아는 스페인이 아니다)!’라고 써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노자는 어쩌면, 필자 자신인지도 모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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