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의 숨, 쉼> 옥상 위 내 작은 연못을 가꾸는 즐거움

내 작은 연못에는 온갖 즐거움이 있다.

첫 번째 내가 좋아하는 연꽃을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즐겁다. 비오는 날은 비오는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내 작은 연못은 아름답다.

두 번째 나를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꽤 큰 감동과 휴식을 준다. 지친 마음을 끌고 오는 지인들을 나는 이층 야외 베란다로 보낸다. 아래층에 앉아 그들에게 “이층으로!” 를 명령하고 엔터키를 누르면 바로 “와!”하는 감탄사가 뜬다. 이 경이로운 순간을 위해 될 수 있으면 갑작스레 만나게 한다. 비오는 날은 우산을 손에 들려 올려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연꽃을 만나고 온 사람들은 쌓였던 삶의 찌꺼기들을 삽시간에 정화시키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 우리집 작은 연못.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게 지나가고,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그 연못이다. ⓒ제주의소리

세 번째 나의 작은 연못에서 자연과 우주를 넘나드는 온갖 지혜를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연꽃은 해가 뜨면 서서히 꽃잎을 열어 꽃을 피우고 12시면 거의 절정에 다다른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그 에너지를 거두어들인다.  도로가에 살아 온갖 흙먼지를 다 뒤집어쓰며 살아도, 좀 지저분한 것들 다 넣어주어도 놀라운 정화력을 발휘하고, 그토록 엄청난 한파를 겪고도 거뜬히 살아남고, 물이 펄펄 끓음직한 한여름도 잘 견딘다. 견딜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하는 연꽃을 보면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에너지를 느낀다. 게다가 뿌리를 잘라 나누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니 내게 끊임없이 나눔을 독려한다. 

 연못이라고 하니 얼마나 근사할까 상상을 하시겠지만 실은 커다란 고무 통 두 개다. 내가 워낙 연꽃(특히 백련)을  좋아해서 지인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혹 백련을 보거들랑 딱 한 뿌리만 캐어다 달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나의 작은 연못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그 고무 통 연못에서 느끼는 감동이 근사한 연못 못지않은 것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효과가 아닐까? 우리 집은 도심의 도로변이니 그곳에서 발견한 연못은 오아시스 이상일 것이다.

 이제는 베란다 담을 훌쩍 넘어서 길 건너에서도 하늘거리는 연잎과 하얀 백련을 볼 수 있으니 잠시 걸음을 멈춘 거리의 사람들에까지 기쁨과 휴식을 주고 있다. 그러나 보는 사람만 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연꽃이 있는 줄도 모르는 우리 집 작은 연못이다.

오묘한 향기를 지닌 백련 향에 취해 역시 연꽃은 백련이라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 내 휴대폰으로 두 장의 연꽃 사진이 날아왔다. 이 두 장의 사진으로 백련에 대한 나의 편애는 깨졌다.

▲ 신풍리 자성원 연꽃. 백련만 좋아하던 내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줬다. ⓒ제주의소리

 백련 사랑이 각별한 내가 나도  모르게 속삭이고 있었다.
 ‘어머나, 고운 색을 입고 있는 연꽃도 아름다아~.’
백련뿐만 아니라 홍련도 아름답다.^ ^

 나의 작은 연못이 생긴 지 4년째, 우리 집 아니 우리 동네 허파와 같은 우리 집 작은 연못을 찾는 지인이 많아지고 그들 대부분이 자기들도 키워보겠다고 하기에 분양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욕심만큼 잘 키우지 못하고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고 만다. 더러 풍성하게 잘 크는 우리 집 연꽃을 보고 내게 연꽃 키우는 법을 물어보는데 나는 사실 별 방법을 쓴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우리 집 연꽃은 주인의 무심한 성격을 알아 그런지 자기대로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얄밉다고 하니 비법 아닌 비법을 공개한다.


  먼저 커다란 고무 통에  물과 흙을 적당히 담고 연을 심는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들이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살아남도록 그들의 에너지를 믿어주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그들 상황에 쉽게 개입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연꽃이 아무리 좋아도 연꽃 하고 숨 막히는 사랑은 하지 마시길 바란다. 들어보면 지극정성 최선을 다해 키우다가 본래 자리로 돌려보냈다고 하니 하는 소리다. ^ ^
 올해도 연꽃을 분양해 주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열 명도 넘는 것 같다.

TIP 연꽃 잘 키우는 법

▲ ⓒ제주의소리

지나치게 마음 쓰지 말 것. 부담스러우니까.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 것. 걱정대로 되는 수가 있으니까.
지나치게 기대하지도 말 것. 실망이 클 테니까.

 마음을 비우면 뜻밖에도 알아서 잘 큰답니다. 생명력이 무지 강하거든요. ^ ^ /산길(김희정) 

    
▲ 산길(김희정). ⓒ제주의소리
        글쓴이 산길은 “연꽃을 좋아하고 닮고 싶어합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자 정진하고 있지요. 제 시를 좋아해주고 저와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바람섬과의 인연이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로 이끌었네요. 컴퓨터와 별로 친하지 않은 제겐 참 놀라운 일이지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숨, 쉼>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전직 기자 출신의 ‘바람섬(홍경희)’과 10년 전 제주로 결혼이민(?) 온 아동문학 작가 ‘산길(김희정)’이 주거니 받거니 제주와 제주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앞으로 이들은 <숨, 쉼>을 통해 빠르게만 달려가는 세상, 숨만큼이나 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해줄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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