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중) 해인사와 파리도 반역의 대가로 지켜낸 유산

▲ 레고레타의 건축미학의 정수인 물, 빛, 색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미국 스탠포드대 Schwab Residential Center.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낸 예술의 힘

 

최초에 <카사 델 아구아>의 모델하우스였을 뿐인 ‘더 갤러리’는 행정절차상으로 법리적 판단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제주는 물론 국내적으로도 분명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축가가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나 기자들 역시 레고레타의 건축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다. 사실 레고레타의 작품이 완공되기까지 필자에게도 레고레타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은 도록이나 건축잡지 등에 실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강렬한 색채와 남미풍의 건축의 형태미들이 그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후의 일이다.

“만일 카사 델 아구아를 없앤다면 훗날 분명 땅을 치고 후회하리라 확신한다. 이 시대의 무지한 우리 때문에 말이다. 예술가들은 죽지만 작품은 유산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레고레타는 제주도에서 두 번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이선화 도의회 문광위원)
“유럽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폐허조차도 역사이며 문화이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자산으로 보존하고 보전하며 선진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문제는 철거냐 보전이냐를 떠나 국격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유산입니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반대합니다.”(한국건축가협회)

“세계적인 거장들이 설계한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작품으로 건축유산이다. 좋은 건축물은 시민·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등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도시 품격을 높인다. 행정은 ‘카사 델 아구아’의 문제를 사기업간의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또한 법규만을 내세우며 철거에 나서 세계적인 거장이 남긴 건축문화 자원을 스스로 포기해서도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카사 델 아구아’를 살릴 방법 찾기에 나서야 한다.”(김석주)

“논리(법)상으로 따지면 철거해야 하는 이유가 수긍은 가지만 많은 이들이 ‘보존’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법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김태일 제주대 건축학과 교수)

“어쩌면 지금 필요한 정책적 판단은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가 아니라, 제2, 3의 카사 델 아구아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사태 해결을 위한 행정의 적극적 개입을 강력히 촉구한다. 경직된 사고를 탈피, 보존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업자들의 전향적 사고 전환도 절실하다. 부영주택의 경우 호텔을 지으면 예술작품 등을 구입해야 한다. 카사 델 아구아가 훌륭한 대안일 수 있음을 제안한다. JID도 공감할 수 있는 가격으로 재협상에 임할 것을 당부한다. 심하게 얘기해 행정 대집행이 이뤄지면 없어질 수도 있다. 세계적 거장의 건축작품을 제주도가 계속 가질 수 있도록 행정과 업자들 모두가 한발씩 양보할 것을 주문한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대처는 절대 안 된다.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지구촌 모두에게 죄를 짓는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제민일보 사설)
 
의원, 시민, 지식인들 공히 언론에 표출된 철거에 대한 반응들은 강력한 철거반대다.(물론 관련 공무원의 해명성 기고문도 더러 있지만) 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신문지면에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를 반대하는 기고문들과 철거에 대한 우려로 가득찬 기자들의 글쓰기로 도배되었다. 거장의 작품, 그것도 이미 마지막 유작이 되어 버린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튼 결과다. 행정에서 아무리 실정법을 따진다 한들, (주)부영주택이 아무리 조망권 운운한다 해도 이미 이 작품은 단순히 리조트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의 의미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와 제주사회를 뒤흔드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 버렸고,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는 하나의 영생의 생명체인 예술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문화적인 사건이니만큼 국격의 문제가 나온다. 멕시코에서는 그들의 상징이 되어버린 레고레타의 작품이 파괴된다는 소식에 분노와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만약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다른 나라에서 파괴하려 한다고 했을 때,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우리가 그 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나라들이 그 나라를 보는 시선은 어떨 것인가? 역지사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강제철거의 시한을 넘긴 상태에서 도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이 당연하고 명백한 논란에 대해 행정이 그토록 강조하는 원칙과 철거강행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 데는 그동안 행정이 써온 연대기라는 배경이 있다.

현재에도 해군기지 공사가 강행되면서 5년간 몸살을 않고 있는 주민들과 전 세계에 이곳밖에 없는 진기하고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가 폭약으로 날아가는 상황, 그렇게 오랫동안 제주사회를 갈등으로 몰았던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났던 예래동과 노형동의 50~60층이나 되는 초고층 빌딩허가 문제, 그렇게도 도민들이 뜯어말렸던 아름다운 바다, 탑동먹돌바당을 끝내 매립하고 말았던 기억과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더 대규모의 매립을 추진하려는 상황들, 농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도입되었지만, 결국 농민이 아니라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지어서 해안가의 진짜 경관파괴범이 되어 버린 각종 펜션들. 그 속에 실정법이 있었다. 그 속에 행정책임이 있었다. 그 속에 수많은 도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가 함께했다. 그 속에 도민들의 법 집행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존재한다.

그런 와중에 하필 불법적인 예술작품 가설건축물이 철거 위기에 몰렸다. 이를 행정적으로는 가설건축물이나 불법건축물로 부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예술작품, 건축작품, 거장의 작품,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라고 부른다. 이 간극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현재 주어진 해결과제이기도 하다. 세계가 인정하는 진정한 예술작품은 해안경관 훼손이라는 명분에 철거운명에 놓였고, 수많은 제주의 경관을 파괴하는 여타의 행위들은 편법과 탈법으로 고무줄 법령이 되어 이루어졌던 상황 속에 진정 슬픔과 안타까움이 존재한다.

▲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와 해안 전경. 이 이미지 속에서 <더 갤러리>가 경관을 방해하는가?

시대를 뛰어넘는 반역의 대가로 살아남은 문화유산들

세상에는 반드시 실정법이나 명령체계대로 행동하기보다는 그에 반하는 용기가 오늘날 인간의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특히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전쟁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명령불복종이라는 가장 큰 죄를 지으면서도 용기 있는 결단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살린 미담들을 곱씹으며, 이 곤란한 상황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장경각을 폭격으로부터 구한 빨간 마후라 전설의 주인공인 고(故) 김영환 공군대령. 한국전쟁의 와중인 1951년 8월, 패주하던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지리산과 가야산, 덕유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자 공비토벌작전에 나선 전투경찰대는 해인사 일대 가야산에 대한 공중폭격 지원을 요청한다. 이 요청에 따라 당시 작전권을 가진 미 5공군은 한국공군에 “무장공비가 주둔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을 받은 김영환 대령은 급히 해인사 폭격 명령을 철회하고, 해인사 뒷산에 있던 적군 집결지와 보급품 저장소만 공격하는 것으로 작전을 마쳤다. 그는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는 없다.”고 목숨도 내놓은 항명을 했다. “해인사 내 팔만대장경은 귀한 우리의 문화유적인데 해인사를 폭격하면 영원히 소실되고 만다.”며 동료 조종사들에게도 폭격을 중지시켰다고 한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 덕에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은 전화(戰火)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까지 지정되어 세계인들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의 포스터.

1966년 르네 클레르망 감독의 작품으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는 2차대전 말기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파괴를 중심에 둔 연합군과 독일점령군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이 영화는 실제로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작품이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영화의 타이틀은 당시 파괴명령을 내렸던 히틀러가 파괴작전의 책임자였던 콜티츠 장군에게 전화를 통해 물었던 대사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2차대전이 막바지로 향하던 1945년 파리담당 군정장관이었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Dietrich von Choltitz) 독일점령군 사령관은 히틀러에게서 “후퇴할 시 파리의 모든 건물, 모든 유적들을 파괴하라! 절대로 온전하게 넘겨주지 마라!”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콜티츠 장군은 명령을 받고 나서 심각하게 고민한다. 당시 독일의 정권은 나치였고, 히틀러는 나치의 총수이며 자신은 그 휘하의 군인인데,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콜티츠는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 프로이센 군인으로서 파리를 파괴하란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럴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히틀러는 무려 9번에 걸쳐서 파리 군정사령부에 전화를 걸어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전화통에 대고 악을 썼지만, 콜티츠 장군은 끝내 이를 무시하고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만다.

예술의 도시 파리는 오늘도 세계인들이 반드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꼽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도시는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불법적인 행동에 의해 살아남았다. 2004년 파리해방 60주년 기념일을 맞아 파리시내에서는 다채로운 해방기념축제가 벌어졌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인 르몽드는 8페이지짜리 ‘파리 해방’ 특집 섹션을 발행하면서 ‘8월 25일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파리 해방과 관련된 주요 인물 4인을 소개했다. 그중 유일하게 독일군인 디트리히 폰 콜티츠의 행적을 밝히면서 파리가 전쟁을 겪었음에도 현재까지 과거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그의 덕분임을 기억하게 했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의소리

이 두 사례 모두는 실정법을 어긴, 그것도 목숨을 내놓고 어긴 사례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반역이었으나, 그들의 안목과 지적 판단력은 결국 인류의 문화유산을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실정법은 그 법이 작동하던 시대성 속에 갇힌 법적체계이나, 하지만 문화유산의 가치는, 그것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유산의 가치는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 이번 <박경훈의 제주담론>은 상, 중, 하 세 편의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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