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9) 폭낭 아래 소굴의 구사일생 이야기② / 정신지

 

▲ 노부모가 한 번에 드시기 적당한 크기의 수박이라며 아들이 가져온 수박. 4남1녀 모두 효자 효녀라 마음이 든든하다 하신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시작은 돼지고기였다. 전쟁 통에 새신랑을 잃고 홀몸으로 아들을 키우던 어느 날, 제사 때 쓸 고기 한 점을 사기 위해 할망(할머니의 제주어)은 집을 나섰었다. 그리고 그날부로 그녀는 하르방(할아버지)의 족은 각시(후처)가 되어 이웃마을로 거처를 옮긴다. 1958년의 일이다.

하르방은 돼지고기를 먹으러 친척 집에 갔다가 할망을 만난다. 삼대독자인 그에게는 이미 똑똑하고 아름다운 각시가 있었다. 하지만 하르방의 부인은 딸을 하나 낳고 불임증에 걸렸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속상해하던 어느 날, 그는 고기장사를 하던 친척의 소개로 지금의 할망을 만났고, 그 후 반세기가 넘도록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자식 딸린 족은 각시로 하르방의 신혼집에 얹혀살게 된 할망은, 꽤 눈칫밥을 먹고 살았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했다. 하지만 억측은 시원스레 빗나갔다. 일본강점기, 4.3사건에 연이은 한국전쟁으로 할망과 하르방의 가슴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있었고, 그들은 더 이상의 슬픔을 스스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질투, 시기, 경쟁과 오만, 내가 아는 이 단어들은 어찌 보면 참으로 배부른 감정들일지 모른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살되, 그들에게는 오로지 평화롭고 싶다는 바람뿐이었다.

큰 각시와 작은 각시는 자매처럼 살았다. 비록 사는 집은 달랐지만, 된장 한 큰 술도 나누어 먹고, 아프면 서로 병간호도 했다. 새 식구가 된 할망은 들어오자마자 줄줄이 아들을 셋이나 낳았고, 황금 같은 첫아들을 큰 각시의 이름으로 삼대독자의 대를 이을 호적에 올려놓았다.

“아들 낳자마자 씨아방(시아버지)이 나신디 완(나에게 왔어). 동네에서도 소문난 몹쓸 씨아방이어신디(이었는데), 나가(내가) 큰 어멍 호(호적)에 아들을 넣어주켄 허난(넣어주겠다고 하니까) , 막 착하댄(정말 착하다고) 나를 칭찬했주게(칭찬했지). 놈 신디(다른 사람에게) 절대 좋은 말 곧지 안허는(말하지 않는) 씨아방인디(인데), 고맙댄 인사를 해라(하더라고). ‘어이 착허다’ 허곡(하면서) 몇 번이고 왕(와서) 고라신디(말했는데), 그 말이 나도 잘도 고마왕이네(고마워서)…, 지금꺼정(지금까지) 절대 잊어불지 않허여(않는다).”

 

고무신  할망의 다리가 조금씩 삐걱거린다. 마음도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인지, 두 발로 걷는 또래의 노인들을 보면 서러움과 부러움을 감출 수 없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 식성 좋으신 하르방을 위해 삼시세끼 분주한 할망의 손.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큰 각시는 칠순을 조금 넘게 살고 세상을 떠났다. 할망은 마치 큰 언니를 먼저 보낸 양 마음이 아팠다. 4남1녀를 두 손으로 함께 기르고, 한 남편을 함께 모셨다. 큰 재산은 얻지 못했으나 그들은 평화로운 가족이었고, 단 한 번도 서로 미워하거나 다툰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빈자리가 할망은 쓸쓸하기만 한 것인지, 먼저 간 큰 어멍을 생각하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할망은 시집온 지 40년 만에 일 부(夫)의 일 처(妻)로, 온종일 하르방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큰 각시가 죽고 얼마 안 가 하르방이 크게 아프기 시작했다. 다리에 마비가 와서 더는 걸을 수 없게 된 하르방은,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매일같이 말했다. 그러기를 10년째. 하르방은 걷지 못하지만, 심신이 건강하다. 그러나 이제 할망의 다리가 삐걱거린다. 마음도 조금씩 삐걱거려온다. 같은 또래의 노인들이 두 발로 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서러움과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다고 하신다.

 

▲ 하르방은 책을 좋아한다. 내친김에 내 토정비결까지 봐주셨다. 마른 땅 위에 비가 온다는 점괘에, 할망도 하르방도 시집가라 야단법석.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노부부는 많은 시간을 그늘에 앉아 보내거나, 둘이 함께 방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항시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다. 할망이 만든 시원한 냉국에 저녁을 먹고 방에서 올림픽경기를 보던 중, 그녀가 말했다.

“밤 여덟 시에 하는 연속극이 이서(있어). 겐디(그런데) 봠시믄(보고 있으면) 막 부애가 나(화가나). 젊은 부부가 나오는디(나오는데), 그자(그저) 서로 지(자기) 생각으로만 살잰(살려고). 새 각시가 사장 똘이난게(딸이라서)…, 지만(자기만) 웃노릇하젠 허여(잘난척하려고 하는 거야).
 서로 어지간해사주(어지간해야지), 새서방 집에서 요마니만(요만큼만) 허켄 허믄(한다고 하면), 새각시 집에서도 그 말 듣고 서로 의지허영 살아야지. 결혼헐 때 아무것도 촐리지(차리지) 않앵(않고) 가도, 사랑이 이시믄(있으면) 잘 살아져. 살 마음만 이시믄 잘살아. 이녁이(네가) 돈만 확 쥐엉(쥐어서) 거들거리믄(으스대면), 거 안되어. 어시믄(없으면) 그냥 살아가멍, 둘이 쌉지만(싸우지만) 말앙(말고) 오곤조곤(오손도손) 행이네(해서), 받으멍(받으면서) 살고, 벗으멍(벗으면서) 살아야 부부가 성공허주(성공하지). 그 모냥(상태)으로 우김박질만(말다툼만) 햄시믄(하면) 무신(어떻게)…. 게난 널랑(너는) 그런데 시집가믄 안된다이.”

바닥에 누운 채로 열변을 토하던 할망의 헐렁한 몸빼바지 사이로 하얀 뱃살이 튀어나왔다. 그때, 침대에 앉아계시던 하르방이 장난삼아 발가락을 꼬무락거려 그녀의 뱃살을 꼬집었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행동에 웃음보가 터진 할망이 하르방에게 소리쳤다. “좀, 거시지 말라게!(건들지 말아줘)!”

아이 같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몸과 마음에 감동의 닭살이 돋는다. 오곤조곤 서로 의지하고 살아온 84세 동갑내기 노부부는, 매번 찾아갈 때마다 즐겁다. 내가 좋고 내가 고마워서 그들을 찾아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할망과 하르방은 역으로 내게 와주어서 고맙다 하신다. 아름다운 늙음이다.

여든이 넘고부터, 오래 사신 기념으로 그들에게는 매달 ‘장수수당’이라는 돈이 지급된다. 게다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명목으로 나라에서 도에서 또 다른 이름의 작은 용돈도 나온다. 그 작은 보상에 할망과 하르방은 꽤 만족해하신다. 젊은 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닥쳤던 4.3과 6.25의 모진 비바람 따위 원망치 않고, 성할 곳 없는 늙은 몸 추스를 병원비를 싸게 해 주어 고맙다 하신다. 하지만 그것이 시대와 나라를 향한 ‘고마움’이 아닌, 대인(大人)의 너그러운 ‘용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하르방이 내게 말했다.
“저기 저책에 이런 말이 이서게(있어). 재물을 잃으면 약간 잃는 거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건디이(것인데), 건강을 잃으면 몬~딱(전부) 잃는 거라. 알아지크냐(알겠냐)?”/ 정신지

# 이번 글은 지난 7월14일자에 실린 '84세 동갑 노부부의 산전수전 인생 스토리-폭낭 아래 소굴의 구사일생 이야기①'의 두번째 글입니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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