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하) 해법은 있다, 다만…

환경과 도시를 보는 눈

▲ 도시의 이미지와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 버린 건축의 힘을 대변하는 프랑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갤러리>.

스페인의 도시 빌바오에는 1997년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로 유명하다. 또한 빌바오의 변화 또한 경이로운 것이었다. 바스크인들의 도시로 퇴락해버린 공업도시가 1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도시의 기적 같은 변화를 이야기 할 때,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곳이 브라질의 꾸리찌바, 아랍에미레이트연방의 두바이, 그리고 바로 이 빌바오다. 그중에서도 빌바오는  한때 ‘빌바오 효과’라는 말을 유행시켰는데, 우중충한 공해 도시이면서 퇴락한 공업도시가 어떻게 찬란하게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였기 때문이다.

빌바오에 세계 미술계 최고의 브랜드인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의 보물같은 소장품들과 그 보물들을 감싼 건축물 자체가 역시 보물이 된 뒤, 빌바오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건축물은 세계적인 건축계의 거장 프랑크 게리(Frank Gehry)의 작품으로 2010년 세계의 건축가들에 의해 ‘최근 30년간 세워진 건축물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뽑히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그러나 정작 빌바오의 가장 놀라운 변화는 그 구겐하임 미술관을 진짜 이 도시에 딱 어울리는 건축물이 되도록 지난 10년간 스스로 변신했고,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빌바오 시민들 스스로 예술적 안목을 키우고 도시디자인의 경이로움을 받아 들였고, 예술로 도시를 변화시키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게리의 작품만 아니라 세계적인 거장들이 참여하는 건축프로젝트와 도시공공디자인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빌바오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거장의 작품으로 빌바오 시내를 채울 수 있게 기회만 되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과 예술적 안목, 그리고 예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주목하는 빌바오 사람들에게, 그렇게 입지한 건축물과 조형작품들은 연간 400만 이상의 도시방문객들을 끌어들여 화답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관광객유입효과에 따른 경제활성화 분만 아니라, 쾌적한 도시환경은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행복지수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가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에도 빌바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하여 기고한 어느 공무원의 글을 보면, “그의 작품은 일본에도 있고, 우리 시에도 2개의 건축물이 한창 건립되고 있다.”라고 쓴 내용이 있다. 물론 앞뒤 문맥에는 행정에서도 레고레타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이지만, 사실 이 표현 속에 내재된 생각의 일단은 오히려 위험한 발상이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자체가 독립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여러 개가 있으니, <더 갤러리>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된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빌바오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구할 수 있는 해법은 없는가?

▲ 생전의 리카르도 레고레타.

“나는 건축이 조각품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을 뽐내기 위해, 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설계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건축물들과 경쟁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환경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고 생전에 건축에 대한 생각을 밝힌 레고레타의 작품이, 역시 그가 설계한 앵커호텔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망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물론 이 상황은 전적으로 새 시행사인 부영의 입장이다.) 속에 철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끝내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져서 철거를 마치고 계획대로 공원을 조성한다면, 과연 WCC총회에 참석한 세계의 방문객들이 이미 사라져버린 잔디밭 위에서 그래 “레고레타의 작품을 없앤 건 아주 잘한 일이야!”라고 할까?

이번 사태는 리카르도 레고레타라는 멕시코의 건축가를 우리 사회에 각인시키는 데 확실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건축을 예술로 인식하게 한 것, 또한 그 예술작품의 존치와 철거문제가 문화적인 담론의 범위를 급격히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으로는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오면서 제주사회에 건축예술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을 확산시킨 점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사회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도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성찰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귀추가 어떻게 되든 매우 소중한 기회라 할 것이다.

레고레타는 지상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하나를 남기고 갔다. 그것이 비록 어떤 배경에서 제주에 남았든 리카르도 레고레타라는 거장의 선물이다. 그 소중한 선물을 제주섬의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좋은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아이들이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 누가 가져야 하는지, 옥신각신하면서 다투다가 끝내는 부숴버리고 마는, 우화 속의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어쩌면 이 논란은 어떤 식으로 끝을 맺든 마치 레고레타의 선물이 연출한 우스꽝스런 한낮의 단막극 같은 풍경이 될 것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낯설기만 한 이 사태가 제주섬사람들에게 성장통 같은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해법은 없는가? 있다. 아무리 꼬인 일에도 출구가 있기 마련이다. 그 꼬인 줄타래를 놓아 버리면 된다. 다 내려놓으면 된다. 이 사태가 단순한 불법가설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다 잘못된 장소에 놓인 인류의 위대한 건축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을 한다면, 답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현재 직접적인 당사자인 (주)JID와 (주)부영주택 그리고 이 모든 논란의 뒷수습을 감당해야 하는 행정, 3자가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를 세계인이 나눠야 하며 보존해야 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식하는 기본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JID의 조강원 대표는 “이도 저도 안 되면 법대로 철거당할 바에야 무상기부라도 해서, 공공건물로 사용하게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 속에 더 갤러리의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들어 있다. (주)JID가 무상으로 제주도에 기부채납을 하면 된다. (주)부영주택 역시, 현재 더 갤러리가 들어선 부지를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제주도에 기부한다.

그리고 행정에서는 문화유산으로서의 특례를 반영해 더 갤러리의 건축적 지위를 보장해주고, 이 공간을 제주도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갤러리로 활용하면 된다. 도립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하든, 별도의 독립된 현대미술관이나 기획대관 전용관으로 활용한다면, 제주도민이나 관광객들이나 언제나 드나들면서 레고레타의 작품을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적자원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두는 현재 당사자들인 3자가 레고레타의 예술작품이 반드시 이 세상에 남아야 할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때 가능할 것이다. 세계인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 골치 아픈 지경에 빠진 거장의 건축작품을 제주도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혜롭게 살려낼지를.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의소리

자! 이 작은 갤러리가 우리가 문화를 대하는 수준과 안목, 그리고 현행법과 미래의 가치, 기업의 이해관계와 노블레스 오블리제, 인류가 나눠야 하는 세계적인 유산으로서의 ‘건축’에 대해 묻고 있다. 세계자연유산이 즐비한 제주도민들게 “그대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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