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봉우리에 다 담겼는데…'사라봉 연가'
조그만 봉우리에 다 담겼는데…'사라봉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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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의 숨, 쉼> 도를 찾아 멀리 갈 필요가 있는가

 내가 만약 제주섬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게 된다면 나는 사라봉을 가장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라봉과 별도봉을 하루도 빠짐없이 도는 운동 매니아도 아니다. 게다가 사라봉 바로 밑 동네에 사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사라봉과는 그다지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살아 걸어서 가자면 좀 멀다싶고, 차를 몰고 가자면 다소 쑥스러운 바라보기에 딱 좋은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또 자주 가지도 않는 편이다. 한 달에 두어 번 안팎이니 사라봉을 연모한다는 말이 스스로 우습기도 하다. 그럼에도 만약에 제주를 떠나 살게 된다면 나는 사라봉이 정말로 그리울 것이다.

사라봉, 별도봉, 우당도서관, 국립제주박물관,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보게 되는 오목한 들판과 말 몇 마리, 사라사, 등대, 부두, 바다, 낙조……
 사라봉을 떠올리면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소중하다.

#사라봉
 육지 지인들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동네 한 바퀴 쯤은 같이 돌아준다. 그 이상은  서비스 하지 않는 편이다. 그 코스에 사라봉이 필수로 들어간다. 빼어난 해안선, 눈이 시린 바다와 하늘, 푸르고 싱싱한 소나무 숲, 가지가지 꽃나무들과 야생화들, 건강한 제주사람들, 무엇보다 제주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특히 관광이 아니고 강연이나 기타 업무 때문에 바쁜 일정으로 왔다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코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나의 지인들은 너무 좋았다는 말을 꼭 남긴다.

#별도봉

▲ ⓒ김희정

 이별의 아픔이 칼로 베어내는 듯하다 하여 별도봉이라 한다고 들었다. 그 얘기를 들은 뒤부터 나는 이곳을 돌 때쯤 나의 지인들에게도 이름에 얽힌 사연을 말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한 편의 슬픈 시 같다고 한다. 내려다보이는 항구와 가없는 수평선, 그리고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자살 바위가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슬픔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이 별도봉이다. 본래 삶이란 별도봉처럼 슬프고도 아름다운 서사시가 아닌가? 
 퍼뜩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오래전 나는 괸당과 그 젊은 아낙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남편의 외도 때문에 슬픔과 절망에 절어있는 그녀에게 살만큼 살아낸 괸당은 제주도 할망들 하는 말로 위로를 하였다.

 “살멍 살아진다, 게, 아이들 봥 잘 참으라 잉”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남겼건만 얼마 뒤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어린 자식을 둘이나 두고 자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별도봉에 얽힌 죽음 중 내가 아는 죽음이 되었다.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에서 보낸 추석과 설을 생각하면 이곳이 떠오를 것이다. 차례를 끝낸 오후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 떡메도 쳐보고, 빙떡도 지져보고, 윷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따위를 하면서 아이 키우는 재미를 느꼈던 곳이다. 평소에도 뛰어놀기 좋아하던 아들을 이곳에 풀어놓으면  훨훨 날아다니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았다.

  그 어린이가 다 자란 요즈음은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긴 의자에 멍하게 앉아있거나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참 좋다. 이 넓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사람조차 별로 없다는 건 내게 큰 행운이다.

#우당도서관
 언제가 아동문학평론가 선생님을 모시고 우당도서관에서 강연회를 한 적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어디를 좀 산책하였으면 하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사라봉을 추천했다. 어스름 저녁 별도봉을 한 바퀴 돌아 우당도서관에 돌아오니 산 그림자에 묻힌 우당도서관은 그야말로 선계의 도서관이었다. 늘 있던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그 분은 이런 감탄의 말을 남겼다.
  “아니, 이런데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가끔 책을 빌리지만 아이와 함께 도서관 둘레둘레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에서 그만 놀다간다. 결코 학문적인 냄새를 풍기지 못하는지 않은 도서관이다.
 등대 위에 천상사람들만 입음직한 비단 옷의 끝자락 같은 절이 있다. 비록 큰 절은 아니지만 절 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촛불도 켜 놓았다. 사라봉 등대가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절 입구에 관조(觀照)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는데 사라봉을 그냥 봉우리에서 마음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스스로 내려 본다.

▲ ⓒ김희정

#사라사-

#말
 우당도서관을 지나 사라봉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옴팍한 들판에 말 몇 마리가 방목되어있다. 가끔 까치들이 말 등을 타고 곡예를 부리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기도 하거니와 사라봉이 제주도임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다.
 가끔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기들은 이 지점에서 멈춘다. 그리곤 목청이 터지라고 부른다.    “말아! 말아!”
 말은 대답 없고…… 아기는 애가 타고……
아기들 세상에서야 어디 동·식물과 사람이 따로 있으랴. 슬며시 웃게 만드는 장면을 종종 만난다.

 
 내게 있어 사라봉은 숨과 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 봉우리에서 나는 아이와 놀고, 성장하고, 몇 편의 시도 건져 세상에 내어 놓았다. 비록 밤낮 가리지 않고 사람으로 넘쳐나지만 사라봉은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뿐만 아니라 사람의 소리조차 품어 조화롭게 하는 묘한 힘을 가졌다.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 도를 찾아 어디 멀리 갈 필요가 있겠는가.

    
▲ 산길(김희정). ⓒ제주의소리
        글쓴이 산길은 “연꽃을 좋아하고 닮고 싶어합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자 정진하고 있지요. 제 시를 좋아해주고 저와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바람섬과의 인연이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로 이끌었네요. 컴퓨터와 별로 친하지 않은 제겐 참 놀라운 일이지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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