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이 제주이전 2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만든 문화카페 '닐모리동동'. 수익금을 지역 문화발전 기금으로 내 놓는다고 하지만 재벌기업이 튀어들 업종은 아니다.

<고충석 칼럼> 아무리 기부가 목적이라 하지만 재벌 격에 맞아야 한다

여야 대통령후보들이 저마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국민통합을 내걸고 있다.그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하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경제민주화란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돈이 더 많이 가진 소수에게 쏠리지 않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눠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며, 금산분리 강화 등이 그 주된 목표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무엇보다 국민의 일상적 삶에 우선적으로 와 닿는 문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례로 제주시 해안도로에는 피자와 파스타 등을 파는 ‘닐모리동동’이라는 레스토랑 카페가 있다. 이 식당은 특유의 마케팅으로 연일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번 여름에 나도 서울에서 온 지인의 권유로 서나차례 이 레스토랑에 갔었다. 친절, 서비스, 실내 인테리어, 음식맛 등 유명세를 탈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인터넷을 통한 홍보의 효과도 주효했는지 처음 방문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도내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하지만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이 식당을 보는 다른 식당 주인들은 매일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다. 나 자신도 이 식당의 소유자가 누구인가를 아는 순간 ‘이건 아닌데’ 하는  씁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 식당은 전자게임을 개발하여 기업의 반열에 오른 넥슨 (nexon)의 지주회사인 NXC가 사회공헌의 목적을 두고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넥슨은 어떤 기업인가?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넥슨은 세계 최초로 그래픽 인터넷 게임을 개발하여 단숨에 재벌로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의 젊은 회장은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한국의 부자 순위에서 이건희 삼성회장과 정몽규 현대차 회장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세계 7대 게임소프트웨어 업체로 자리 잡은 이 기업의 자산이 무려 43억 달러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세계적인 대기업이 2009년 3월 제주도로 본사(NXC)를 옮겼을 때만해도 제주도민들은 제주도가 IT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제주도를 먹여 살릴 대단한 기업이 들어 왔다고 너무나 기뻐했다. 나 자신도 제주도 IT산업의 확실한 가능성을 넥슨에서 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연에서 말한 적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국의 시에틀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 한국 부자순위 3위가 레스토랑을? 차라리 인터넷중독치유센터는 어떤가?

그러나 이러한 희망과는 달리 넥슨의 본사는 제주시 노형동 7층 건물 중 달랑 한층만 사용하는 등 직원도 많지 않아 얼핏 보면 페이퍼 컴퍼니 같은 모습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세계 다국적 기업인 재벌 IT기업이 단지 특별자치도에서 세금 감면을 받을 목적으로 본사를 제주도로 옮긴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넥슨이 제주로 본사를 이전해 어떤 일을 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더구나 이런 재벌 기업이  해안도로에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현실은 뭔가 잘못돼도 상당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수익을 내서 제주문화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고 하지만   세계적인 재벌기업의 격에 맞지 않은 일이다.

IT재벌기업이 영세 식당주인들과 경쟁해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제주문화 발전에 기부한다는 발상 자체가 현명하지 못하다. 굳이 제주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왜 자영업자의 영역인 요식업이냐 하는 것이다. 넥슨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부지기수다. 그 중에서도 넥슨이 하는 일과 관계가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 가지만 주문하자. 제주도는 인구비례로 볼 때 인터넷 중독자가 전국 최고이다. 인터넷 중독에 빠진 사람들 대부분이 저소득계층에 속해 있다. 인터넷 중독은 본인은 물론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인터넷 중독치유센터를 만들어서 이 불쌍한 존재들의 정신을 치유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 식당운영수익을 가지고 사회공헌활동을 한다는 주장은 누가 들어도 옹색하기 이를 데 없다. 꼭 그렇게 자영업자 시장을 잠식 해가며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면 오히려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렇지 않아도 재벌기업의 골목시장 잠식으로 영세 자영업자 들이 좌절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대형 마트는 골목의 구멍가게들을 이미 질식사 시켰다. 소비자들이 골목상권보다 서비스 좋고 품목도 다양하고 가격 또한 싼 기업형수퍼마켓을 선호한 결과이다. 골목상권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자영업자들이 저소득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재벌들의 탐욕이 부른 서글픈 일이다.
 
CJ그룹의 뚜레쥬르와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이미 동네 빵집들을 거의  문 닫게 했다. 수입 명품에서부터 삼각 김밥까지 돈이 되는 것은 재벌기업이 모두 다 하려하니 국민이 먹고 살 길이 없어졌다. 이러한 나라가 건강한 미래를 꿈 꿀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한국청년들의 우상이 된 IT재벌 넥슨(NXC)이 다른 재벌기업의 못된 행보를 따라 배우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것이다.

 # CJ그룹 뚜레쥬스, SPC그룹 파라바게또와 넥슨 닐모리동동은 뭐가 다른가?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접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한 해 평균 60만개의 업소가 문을 열지만 58만개가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베이붐 세대 즉 1950년에서 196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쉰을 넘기면서 줄줄이 은퇴하고 있다. 이들이 갈 곳은 지금도 포화상태인 자영업 시장 뿐이다. 베이붐 세대들의 진입으로 미래의 자영업 시장은 말 그대로 피튀기는 전쟁터가 될 것이다. 적어도 한 해 평균 수십만명, 그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수백만명이 전쟁에서 패해 저소득층으로 떨어질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119조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조항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상의 자유는 기본권이지만, 그 기본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자유에는 절제와 금도와 염치가 있어야 한다. 과거 우리 선대들은 고기를 적쇠에 구울 때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꼮 닫고 구웠다고 한다. 고기 구워먹을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딱한 형편에 대한 원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거 제주의 해녀조직은 수확능력이 형편없는 노인해녀나 소녀가장들도 구성원으로 입회시켜서 성과와 관계없이 일정한 과실을 가져가게 했다.

이러한 에토스가 없는 자유는 승자독식사회를 낳는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탐욕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금융위기도 전부 탐욕이 잉태한 재앙이다. 일찍이 시장주의자로 알려진 아담스미스도 국부론에서 ‘한 명의 큰 부자가 있으면 500명의 가난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수의 풍요는 다수의 빈곤을 전제로 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그래서 어떤 집단보다도 재벌기업들은 국민 삶의 터전을 보호하고 상생이 가능한 사회경제 구조를 만들어나갈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공동체적 정의를 세우는 일, 그것이야 말로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가 대기업들에게 던지는 도덕적 명령이다.

▲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닐모리 동동은 제주말로 그리운 사람이 내일 올까, 모래 올까? 빨리 오길 바라는 처절한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다. 넥슨의 닐모리동동 레스토랑은 누구를 그렇게 처절하게 기다리고 있는가? 자영업자들의 절망과 재앙을 기다리고 있는가! 대기업이 자영업자들의 영역을 침해하는 일은 그들에게 절망을 강요하는 일이다. 첨단 IT재벌기업이 벌일 일이 있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할 일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그 수분(守分)을 제대로 하는 일이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바람직한 길이다. 우리나라의 건강한 미래는 구성원들의 튼튼한 사회적 연대에 기초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오늘 따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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