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13) 고기잡이 아줌마와 내 검정 고무신 / 정신지 

▲ 지난 밤에 잡아올린 우럭이 한 마리. 다 팔려 나갔는데 무슨일로 혼자 남겨졌느냐며 아줌마가 웃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고무신을 사러 시장에 갔다. “고무신 거믄 거(검은 것) 이수과(있어요)?” 하고 묻자, 주인장 할망(할머니)이 위아래로 내 차림새를 살펴보시더니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누게가(누가) 신을 거냐?” 물으시기에 내가 신을 거라 대답하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취미도 괴상하다 하신다. 그런데 사이즈가 없다. 다음 시장에 오면 살 수 있을 거라 하셔서 아쉽게도 시장을 나섰다.

제주의 서쪽 마을에 사는 나는, 가끔 동쪽 마을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터미널에서 무작정 동쪽 가는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구좌읍 세화리.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세화에서 온 당근 밭 아들이었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버스에 올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운이 좋아 세화오일장에 들렀지만 기대했던 검정 고무신이 없어서 마을을 걷기로 했다. 국수를 한 그릇 사 먹고, 한참을 걷다가 작은 신발가게를 발견했다. 시장에 없던 내 사이즈의 고무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가게 문을 열자마자, “고무신 꺼먼 거(검은 것) 이수과?” 하고 물었다. 주인이 위아래로 내 차림새를 보고는, “아까 사이즈 어성이네(없어서) 못 산 아이로구나!” 하신다.

엎어지면 코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시장에서, 닷새에 한 번 신발 장사를 하시는 할망은 이 신발가게 주인이었던 것이다. 할망은 웃으며 내 발에 꼭 맞는 ‘타이야표’(타이어) 검정 고무신을 건네준다. 옆에 있던 손님 할망들이 내가 산 고무신을 보고는, “고무신은 역시 타이야표야, 아니, 말표야” 하시면서 가게 안이 온통 고무신 타령이다.

오천 원짜리 새신을 신고 세화 항을 향해 걷는다. 깔창 얇은 고무신 탓에 맨발로 땅을 걷는 기분이다. 이래서 고무신이 좋다.

 

▲ 오천 원짜리 새 신을 신고 세화 항을 향해 걷는다. 깔창 얇은 고무신 탓에 맨발로 땅을 걷는 기분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검게 그을린 그녀의 얼굴과 거칠고 뭉뚝한 손가락은 뱃사람으로 살아온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준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세화항에 도착하니 출항을 앞둔 배들이 분주하다.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그물을 정리하고 미끼를 실어다 나른다. 그 속에, 홀로 배 위에 앉아 미끼를 끼우는 한 여성이 있다. 살며시 다가가 그녀의 배 앞에 앉는다.

25년째 남편과 둘이서 고기잡이배를 타고 있다는 그녀는 올해 59세. 귤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을 타던 남편이 고기잡이배에 타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남편을 만나고부터이다. 여자가 배에 타면 운이 없다고 하여, 배 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는 옛 시절,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가난한 살림에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뱃일을 해왔다.

요즘은 사람이 모자라서 여성도 흔치 않게 배에 탄다고 하지만, 굳이 미신을 들먹이지 않고 생각을 해도, 뱃일은 여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거센 직업이다. 검게 그을린 그녀의 얼굴과 거칠고 뭉뚝한 손가락이 뱃사람으로 살아온 그녀의 삶을 이야기해준다.

성질이 벼락같다는 그녀의 남편은, 곧 죽어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고 또 못 듣는 사람이라, 다른 선원 없이 부부 둘이서 뱃일을 해왔다. 그 때문에 오만가지 잔소리를 아주머니 혼자 다 들어왔다고 입을 삐죽이며 그녀가 말한다. 한 번은, 옥돔을 잡으러 갔다가 거친 파도에 휘말려 죽을 뻔했다. 그 와중에 남편이 목숨을 걸고 주낙(줄낚시 도구)을 걷어 올리고 있는데, 겁에 질린 그녀가 돛대를 부여잡고 덜덜 떨고 있자, 남편이 천둥처럼 소리를 치며 말했다. “혼자 살아보잰(살아보려고) 바둥거렴구나(바둥거리는구나)!” 그 말에 화가 치밀어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러다 둘 다 죽으면, 남은 자식새끼들은 어떻게 기릅니까?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꽈(아니에요)?”

남편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그녀는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때의 남편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거라며,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고. 그러나 그녀는 배 위에서만큼은 남편을 “선장 하르방”이라 부른다. 온갖 풍파를 다 겪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지만, 선장 하르방의 현명한 판단과 행동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가족이 있는 것이라며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배는 요즘 우럭을 비롯한 잡어를 낚는다. 그녀가 몇 백개는 되어 보이는 ‘주낙’을 정비하고, 미끼로 쓸 꽁치를 자르는 동안, 선장 하르방은 집에서 눈을 붙이고 있다. 곧 있으면 작은아들과 함께 나와서 함께 미끼를 준비할 것이라며 그녀는 묵묵히 홀로 배 위에서 채비 중이다. 작은아들은 대학생이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하느라 집에도 잘 안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 작은아들이 오늘은 부모님을 도우러 포구에 나온다. 큰아들은 육지에서 취업해 살고 있지만, 두 아들은 자랄 때부터 늘 부모님을 말려왔다. 하고많은 일 중에 왜 뱃일을 하느냐고. 하지만 그들이 고기를 잡아 판 그 돈으로 장성한 아들들은, 이제 부모를 말릴 길이 없다. 힘이 드는 것은 둘째 치고, 그녀는 뱃일이 좋다고 한다. 고기가 잡힐 때도 있고 허탕을 칠 때도 있지만, 내 목숨을 걸고 내 능력껏 거둬들이는 뱃일은 보람찬 직업이라고 하신다.
 

▲ 줄낚시를 할 때 필요한 주낙. 하나 하나 바늘을 끼우고 거기에 미끼를 물린다. 출항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은 산더미.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그녀의 배는 요즘 우럭을 비롯한 잡어를 낚는다. 많이 잡힐 때도 있고 허탕을 칠 때도 있지만 그녀는 예측불허의 뱃일이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그녀는 제주에서 흔히 말하는 ‘육지사름(사람)’이다. 제주도 사투리가 유창해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여자고, 육지사름이고, 게다가 뱃일에서 말하면 뜨내기야. 그런데 제주도에 오고 나서 많이 강해졌어. 4남 1녀 중에 내가 막내 외동딸인데, 30년 전에 제주도에 와서 남편하고 배를 타겠다고 했을 때, 친정에서 얼마나 나를 말렸는지 몰라. 그런데 어쩔 거야. 내가 해야 했고 할 수 있었던 일은, 집에서 고기잡이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선장 하르방 따라 나가서 같이 돈을 벌어오는 일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여자가 배 탄다고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어. 그래도 남편이랑 둘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도 많이 나를 도와줬지.”

다시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제주에 와서 배운 게 참 많아. 여기 사람들은 타인에게 쉽게 신세를 지려 하지 않잖아. 심지어 자식한테도. 그런 건 육지 사람들이 보고 배워야하는 거지. 네가 네 힘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만이 진짜 네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자식도 그렇게 키우는 것이고. 남들 눈치 볼 틈이 어디 있어? 제주도 사람과 친해지는 것은 시간이 걸려. 하지만 한 번 친해지면 정말 깊은 바다처럼 친해지는 거야.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아도 한번 열리면 잘도 깊이 열리는 거.
바당 밑에 어떤 고기가 어디서 헤엄을 치는지, 보통 사람들은 모르지. 근데 우리 선장 하르방은 그걸 다 꿰뚫고 있다. 난 아직 몰라. 그래서 선장은 선장, 나는 항상 선원. 그래도 20년 넘게 하니까, 낮잠을 자면 이제 눈앞에 고기가 아른거려. 그런데 그런 날에 내가 주낙을 치면 꼭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거야. 난 이제 다른 일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냥 죽을 때 까지 물고기 꿈이나 꾸고, 배에 타려고.”

동쪽 바다에 가서 어부 아저씨를 만나고 싶어 버스에 올랐건만, 내가 만난 것은 제주생활 30년 어부생활 25년의 대구 아줌마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의 바다는 바람에 실려 제주도 앞을 지나기도 하고, 언젠가 대구 앞바다에 출렁이던 파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주낙에 끼우던 꽁치는 저 멀리 추운 북태평양에서 왔다지만, 그 꽁치를 제주 앞바다의 우럭이 먹고, 잡힌 우럭을 우리가 먹는다.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걸고 꽁치를 잡고 우럭을 잡아온 그 누군가의 삶과 아낌없이 주는 바다의 존재가 아닐까.

아줌마가 말했다. 고기 한 마리 한 마리 잡는데 들어가는 정성을 생각하면, 시장 같은 데 가서 절대 쉽게 가격을 깎고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감사히 먹고 감사히 커야겠다고 다짐하며, 새로 산 ‘타이야표’ 고무신을 신고 서쪽행 버스에 올랐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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