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지질기행> 23 해수면 최대 상승기에 형성된 이중화산체
▲ 성산읍 시흥리와 구좌읍 종달리가 만나는 점에 두산봉이 자리잡고 있다.

 

태풍 '볼라벤'이 휩쓸고 지나간 들녘은 황량하기만 하다. 태풍에 작물들이 모두 휩쓸려나가고, 밭은 텅텅 비어있다. 그나마 일부 남아 있는 것들도, 잎이 누렇게 말라 시들어가고 있다.

지난여름에 올레길 살인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게 했는데, 사건이 일었던 두산봉을 찾았다. 두산봉은 성산읍 시흥리와 구좌읍 하도리, 종달리 등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화산체인데, 산체가 대정읍 하모리에 위치한 송악산처럼 이중화산 구조를 띠고 있다.  

두산봉은 해안선에서 1km이상 뭍으로 올라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 화산체의 외부에는 해발 70m 높이까지 파도의 침식을 받아 형성된 해식절벽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과거 이 자리는 지금처럼 육지가 아닌 바다였다는 증거다. 두산봉이 형성될 당시의 해수면은 지금보다도 더 높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8천 년 이전에 지구는 마지막 빙하기 단계에 있었다. 당시 한반도 주변 해수면은 현재의 것보다 약 100m 이상 낮아서 서해안 대부분은 육지로 노출되었다. 그러다가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 온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해수면은 빠르게 상승했다.

두산봉의 분출은 제주도 주변 해수면이 최대로 상승했던 시절에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그마가 얕은 바다로 분출하면서 물과 격렬하게 반응했고, 그 과정에서 화산재를 포함해 거대한 양의 화산 쇄설물이 공중으로 분출했다. 그리고 이들이 주변에 퇴적되어 두산봉 응회환을 만들었다.

▲ 두산봉은 해안선으로부터 1Km 이상 뭍으로 들어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회환 외벽이 파도에 깎여 형성된 절벽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 두산봉 주변의 돌담. 원래 이 지역의 기반을 이루던 현무암과 두산봉 응회암이 뒤섞여 있는데 그 차이점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파도에 깎인 응회암 절벽

시흥초등학교 옆길로 두산봉에 접근하다보면 처음에는 들녘이 온통 검은색을 띠다가, 산체에 근접하면 흙이 붉은 색을 띠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산봉을 이루는 화산쇄설암이 부서져서 만들어진 붉은 흙이 검은 색 현무암 토양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인근 밭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에도 현무암과 화산쇄설암이 뒤섞여 있는데, 한눈에 봐도 두 종류 암석의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응회환의 외벽에는 오래전 파도의 침식을 받아 해식절벽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해식절벽에는 화산쇄설암이 퇴적되던 방향을 알려주는 사층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누렁이들이 그 절벽 주변을 와면서 풀을 뜯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소가 암벽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사뭇 신기하다.

두산봉에는 트래킹 코스가 정비되어 있어서 정상까지는 쉽게 오를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산체를 오르는데, 성산 일대의 들녘이 눈앞에 펼쳐진다. 두산봉 응회환의 정상부는 산체 동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해발 고도가 126m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곳에 서면 시흥마을 너머로 우도와 성산 일출봉이 내다볼 수 있는데, 마치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아담하고 사랑스럽다.

▲ 두산봉 외륜 정상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오름 분화구 안에 또 작은 오름

두산봉의 응회환의 화구 안쪽에는 밭이 들어서 있다. 이 화구 내의 밭은 토질이 비옥하다고 알려졌는데, 마침 가을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이 바쁘게 씨를 뿌리고 있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밭 옆에 작은 오름이 자리 잡고 있다. 응회환의 화구 안쪽에 들어선 작은 오름이란 의미로 사람들은 '알오름'이라 부른다. 화구 내에 새로운 오름이 들어섰기 때문에 두산봉은 이중화산구조를 띠는 것이다.

▲ 두산봉 응회환의 분화구 안에 밭이 조성되었는데, 농민들이 가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 뒤에 솟은 것은 '알오름'인데, 분화구 내에 또 다른 오름이 솟았기 때문에 두산봉은 이중화산체 구조를 띠는 것이다.

얕은 바다 환경에서 수성화산활동이 일어나 응회환이 만들어진 후 해수가 화구 안으로 유입되는 것이 다소 차단되었다. 이른 상태에서 화구 안에서 다시 폭발 이 일어났는데, 자갈(입자의 지름 2~32mm)과 화산암괴(입자의 지름 32mm 이상) 등 입자가 큰 화산쇄설물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화구 가운데 쌓였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해발 145m의 알오름이 만들어졌다.

70년 가까이 지질 연구에 종사한 서무송 선생은 두산봉이 지니는 특징에 주목하여 <제주도 기생화산 연구 및 답사>(푸른길,2009)에서 "이중화산의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두산봉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제주도 화산지형 연구의 중심지로 개발함이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몇 해 전, 걷기 열풍이 제주에 상륙하여 '제주 올레'라는 상품으로 선을 보였는데, '올레길'을 선보인 사람들은 두산봉이 있는 시흥리를 올레길 1코스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두산봉과 시흥리 들녘은 그 원조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그 열풍도 잠시, 지난여름에 이 오름 인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길은 시작부터 차단되었다. 영문도 모르는 두산봉은 올레열풍의 주인공에서 그 열풍의 종착역으로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제주섬의 자연환경을 활용하여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빨리 결실을 얻겠다는 유혹을 내려놓고, 환경에 대해 철저하게 기초조사를 먼저 벌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산봉에 수많은 사람이 다녀갔는데도 불구하고, 이 화산체의 형성과정 및 지질학적 가치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장태욱

 
   
장태욱 시민기자는 1969년 남원읍 위미리에서 출생했다. 서귀고등학교를 거쳐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에 입학해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42년 후배가 됐다.  1992년 졸업 후 항해사 생활을 참 재미나게 했다. 인도네시아 낙후된 섬에서 의사 흉내를 내며 원주민들 치료해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주대학교 의예과 입학해 수료했다. 의지가 박약한 탓에 의사되기는 포기했다.  그 후 입시학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씨름하다 2005년에 <오마이뉴스>와 <제주의소리>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0년에 바람이 부는 망장포로 귀촌해 귤을 재배하며 지내다 갑자기 제주도 지질에 꽂혀 지질기행을 기획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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