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더 부조리한 삶’, 죽음으로 고발하다
‘죽음보다 더 부조리한 삶’, 죽음으로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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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미의 문학카페> 21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바퀴벌레 한 마리 방바닥에 벌렁 뒤집혀 있다. 평소 같으면 신문지 뭉치나 신고 있던 실내화라도 벗어 내리쳤을 것을, 불현듯 그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 내려다본다. 아마도 카프카의 작품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떠올랐을지 모른다.

멕시코 농민혁명세력 사이에서 여러 버전으로 불리는 노래 ‘라 쿠카라차’는 그 뜻이 ‘바퀴벌레’라고 한다. 영어의 ‘cockroach(바퀴벌레)’와 그 어원이 같다. 바퀴벌레 취급당하면서 갖은 수모를 겪고 살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멕시코 농민들 자신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하니 흥겨운 듯 흥얼거리던 노래가 이젠 슬프게 들린다.

인간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더럽다고 치부되는 곤충인 바퀴벌레. 그도 이런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퀴벌레이고, 바퀴벌레가 나라면 어떻게 될까’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갑자기 몸이 오그라든다.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바퀴벌레들이 무기를 들고 인간을 박멸하려 든다면…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바퀴벌레든 인간이든 우주 안에서 모두는 서로 이방인 아닌가. 이방인은 낯설지언정 박멸의 대상이거나 폭력의 대상은 아닐진대, 지구의 법칙은 약육강식의 원리를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 우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으며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은 ‘인간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이다. 우주의 중심에 인간을 놓고 신과 우주는 인간에 의해 해부되고 해석될 뿐이다. 과학은 그 해석의 원리가 되고 있으며 법은 그에 반하는 자를 골라내 처단하는 직무에 충실하고 있다. 즉 합리화로 구조화된 이 세계를 벗어난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하여 모순과 부조리는 인간 실존의 근원을 의심하게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부조리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은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고도 아들 뫼르소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사장에게 휴가를 얻어내야 하고, 버스를 타야하고, 그것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날에 그런 일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뫼르소는 시골의 어느 초라한 수녀원으로 가서 싸늘히 누워있는 어머니를 본다. 어머니의 친구들이라고 생각되는 주변의 노인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눈물 또한 흘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어찌 보면 무심한 듯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와서 뫼르소는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희극영화까지 본다.

그런데 뫼르소는 우연히 레이몽이라는 사람과 가까워진다. 레이몽은 여자관계로 아랍인에게 미행을 당하는 신세였다. 어느 여름날, 뫼르소는 애인 마리와 레이몽 일행과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가 미행하는 아랍인과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혼자 산책을 하다가 뫼르소는 또 다시 아랍인과 마주치게 되고,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긴장한다. 아랍인은 칼을 뽑고, 그 때 그의 눈앞에는 강렬한 태양이 타오른다. 뫼르소는 아랍인에게 네 방의 총을 쏜다.

엉겁결에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재판을 받는다. 모든 상황은 뫼르소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어머니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아랍인을 잔인하게 쏘아 죽였으며, 끊임없이 회개하라는 사제의 권유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로 배심원들은 그에게 사형 결정을 내린다.

 작품 속 책갈피...

<작품 속 책갈피> 누구나 특권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엔 모두 특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결국 죽음을 선고받을 것이다. 당신도 역시 마찬가지다. 살인범으로 기소된 자가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는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이냐? 살라마노 영감의 개도 그 마누라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거다. 그 작은 꼭두각시 여자도 뫼르소와 결혼했던 파리 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던 마리와 마찬가지로 모두 죄인이다. 셀레스트의 성품은 레이몽보다 훌륭하지만 셀레스트와 마찬가지로 레이몽이 내 친구라고 해서 다를 게 뭐 있는가? 마리가 오늘 또 다른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어준다고 해서 뭐가 어떻단 말이냐?

(중략)

교외의 소리들이 내 귀까지 들려왔다. 밤의 향기, 흙냄새, 소금 냄새가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여름밤의 신비로운 평화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그 때 밤의 끝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했다. 왜 만년에 어머니는 ‘약혼자’를 정했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며보라고 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죽음 근처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생의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싶었을 게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없애준 것처럼, 표적과 별들이 드리운 밤을 지켜보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 세상의 다정스런 무관심에 내 마음을 열었다. 이 세상이 그처럼 나와 동일하며 형제 같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으며, 또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까뮈는 그의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주인공 뫼르소의 심리상태를 “갑자기 환상과 광명이 없어진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느끼는데 그에게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기억도 없고 약속된 땅에 대한 희망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세계 속에서 어떤 감정도 희망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상태, 그것은 마치 벽 속의 거울처럼 실체를 볼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는 서늘한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이방인’이 의미하는 것은 공간적 거리감이나 정서적 거리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전통적인 관습과 가치관’에 의해 습관화된 감정과 비논리성으로 무장된 이성에 대한 낯섦을 말하는 것일 게다. 뫼르소는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인간은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만 하는가. 가령 부모가 죽었다고 해서 한 가족이 느끼는 감정도 동일해야 하는가. 울지 않았다고 그를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신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자인가. 태양 아래 칼을 든 검은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달려드는데 총을 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작업, 식사, 잠, 똑같은 리듬으로 계속 이어지는 월화수목금토요일. 대부분의 시간이 이같은 일상적 행동 속에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왜 이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나서, 모든 것이 구역질로 물들여진 권태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시계처럼 돌아가는 이 세계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들로 꽉 차있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습관화된 감정이 배격되고, 모든 것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작은 위협이 공포로 다가올 수 있으며 반대로 무서움으로 떨던 것들에게는 무감각해질 것이다. 이런 복잡다단한 인간 내면의 세계를 이해한다면 뫼르소의 살인은 정상참작 되지 않았을까?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뫼르소. 그는 살고 싶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삶이 죽음보다 더 부조리하다면 죽음으로써 삶을 고발해야 하지 않을까. 뫼르소가 다하지 못한 말을 까뮈의 말을 빌려 대신 전한다.

“부조리는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결박한다. 부조리는 모든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금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조리는 다만 이러한 행동들의 결과에 그들의 등가성을 줄 뿐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중에서.
/강은미

 
▲ 시인 강은미.

 시인이자 글쓰기 강사인 강은미씨는 2010년 <현대시학>에서 ‘자벌레 보폭’ 외 4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창의력 글쓰기 지도자 과정 강의를 비롯해 NIE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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