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경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안혜경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안혜경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인터뷰] 제주여성영화제 안혜경 집행위원장

 

▲ 안혜경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여성영화제에 올라온 영화들을 다 보고나면 분명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 걸 공유하면서 각자의 사고방식을 터가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상영회가 아니라 ‘영화제’의 역할이 아닐까”

이러한 의식에서 출발해 올해로 열세 해를 맞은 ‘제주여성영화제’가 20일부터 23일까지 제주도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사)제주여민회(회장 안혜경)와 설문대여성문화센터(소장 김영윤)가 공동주최한다.

20일 개막을 앞두고 집행위원장을 맡은 안혜경 아트스페이스C 대표를 만났다.

올해의 주제는 ‘여성, 경계에서 피어나다!’. 이 땅에 태어나 여성으로 분류되면서 그어진 선 때문에 당연한데도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거나 외면 당해왔던 것들에 초점을 맞췄다. ‘여성’이라는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때로는 경계라는 막을 걷어낸 채 자신을 펼치는 이야기들이다. 
 
안 위원장 “어떤 이슈를 놓고 서너 편을 묶어서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듣기만 해도 어려운 정책을 늘어놓기 보다는 영화 한 편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며 제주여성영화제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들이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작품성은 기본이고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는지,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인지를 가장 먼저 살핀다.

올해는 ‘익숙한 낯섦’, ‘뜨거운 분출’,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올해의 특별 세션’, ‘비경쟁 공모작’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17개국 31작품이 상영된다.

“과감하게 고르자는 주의”라고 안 위원장이 말을 보탰다. 편견을 부수려면 강력한 ‘한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지스팟, 여성 쾌락에 대한 이야기>가 그런 작품이다. 세골렌 아노토, 질 보봉 감독의 작품으로 여성의 성적 쾌감에 의학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다. 남성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던 여성이, 미처 여성도 몰랐던 여성의 이야기다.

이런 ‘논쟁’적인 영화를 소개할 때는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 영화의 참뜻을 왜곡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서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건 1회성 상영회가 아닌 ‘영화제’여야 한다.

 

▲ 안혜경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행사는 고작 나흘이지만 집행위원들은 1년 내내 행사 준비에 매달린다. 평소 영화 보면서 골라두기도 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같은 곳에 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빠듯한 주머니 탓에 마음이 졸아든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건 ‘제주여성영화제’이기에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어서다. 예술영화 상영관이 없는 제주에선 보기 어려운 영화를 소개하는 까닭에 슬슬 마니아층도 생기고 있다. 작년엔 현장판매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차츰 늘어가면서 올해는 영화 자막이나 브로슈어 등 ‘외국어’에 특히 신경을 쏟았다. 지난해 관객으로 영화제를 찾았던 한진이 씨가 ‘자발적’으로 스태프로 합류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지난해 영화제를 둘러보다가 아쉬운 마음에 “간단한 도움 정도는 드릴 수 있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단다. 게다가 한씨는 안 위원장 못지않게 영화광이어서 영화를 고르는 데도 든든한 역할을 했다.

자그마치 13년, 제주여성영화제는 이렇게 누군가의 뜻과 뜻이 더해지며 몸집을 키워왔던 것.

이어 그녀가 이번 영화제에서 “눈 여겨 볼 작품”이라며 브로슈어를 내민다. 마레이 메이르만 감독의 <보스가 되고 싶다>와 오타 나오코의 <달빛 아래에서-야간고등학교의 기억>이다.

<보스가 되고 싶다>는 1자녀가구가 절대 다수인 중국의 교육현실을 짚은 작품이다. 북경대, 청화대 등 명문대를 보내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종용하는 학교 교감이 등장하는 등 우리나라 못지않은 과열 경쟁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반대로 <달빛 아래에서-야간 고등학교의 기억>은 문제아들을 모아놓은 야간고등학교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진학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안 위원장은 “‘교육’이라는 문제로 대척점을 이룬 두 작품을 통해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기도 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 안혜경 제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페오 알라다그 감독의 <그녀가 떠날 때>는 안 위원장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단다. 이 작품은 터키계 독일여성으로 자란 여주인공이 결혼 생활을 포기하고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겪는 ‘이슬람’ 문화의 관습을 그렸다.

안 위원장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관습이나 사회와 싸워나가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 참지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다. 그동안 많이 깨달았다 여겼는데 아직도 멀었나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진행해오며 아쉬운 점은 없냐고 물었다. “갈 길이 멀다. 집행 예산이나 상설 전문 인력 부재 등의 문제는 여전히 아쉽다. 13년 해오고 있지만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할까, 시민단체에서 얼마나 채워나갈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여성영화 동호회’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들이 여성영화제의 뒷받침이 된다면 굳이 영화제 홍보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갖고 있는 자료들을 걱정 없이 나눠볼 수도 있다. 또한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고 나면 ‘여성’ 관련 인력으로도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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