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호 칼럼> Casa del Aqua 논란에 대한 단견(短見)

▲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전경. <제주의소리DB>

이제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의 절경지에 자리 잡을 앵커호텔의 모델하우스 겸 홍보관으로 지어놓은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qua)’에 대해 단견이나마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이 건축물의 철거여부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또 건축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떠한 의견이라도 내놓는 것이 도리이지 않나, 라는 생각은 무척 많았습니다. 또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 동안에는 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 같아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건축물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뉴스로 접하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논란을 알게 되고서 바로 의견을 피력하고자 자료를 모으고 지인들과 대화하는 등 준비를 하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안이 결코 단순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인 내용은 ‘세계적인 저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축작품이지만, 현행법에 저촉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라는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 또 다른 논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논란은 ‘건축’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난, 또 그것들이 서로 예민하게 충돌한 예라는 생각입니다. 흔히, ‘건축’의 속성을 설명할 때, ‘건축은 예술(Art)이면서 공학기술(Engineering)이다’, ‘건축은 그 사회의 시대적 산물이다’, ‘건축은 경제성이 강한 산업의 일부이다’,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 등 많은 요소들을 말하곤 합니다. 이 건축물에 대한 논란은 이러한 건축의 속성들이 서로 충돌하기에 대단히 풀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논란의 성격이 이러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건축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느 하나의 속성만을 바탕으로 의견을 대중에게 피력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건축의 속성들을 뒤집어 말하면, 건축은 예술만도 아니고, 공학기술만도 아니며, 시대적 산물만도 아니고, 경제성이나 사회성만을 갖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기술을 무시하거나 사회성이 없어져도 된다, 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건축이 갖는 속성들을 두루 갖추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을 주문하는 건축주(client)가 있어야 하고, 건축물을 세우기 위한 자본이 있어야 하며, 또 건축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합니다. 또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에 까다로운 건축 및 도시관련 법규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체들이 적절한 역할을 다할 때 훌륭한 건축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가르치게 됩니다.

이 건축물에 대한 논란을 둘러싼 입장 혹은 주체를 정리하면, 크게 디자이너(넓게는 문화계), 소유주, 행정기관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나름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하건대, 상대방의 당위성에 대해 서로 이해는 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고 원칙만을 고수하려는 듯이 보입니다. 어찌 보면, 서로 간에 마치 자존심싸움이라도 하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논란은 이미 법적인 판단에 맡겨져서, 어제 24일 ‘철거’하는 취지의 항소판결이 나왔고 10월 초에 철거한다고 합니다. 판결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문화예술이니, 사유재산이니, 시대적 산물이니, 사회적 역할이니, 운운해도 법적인 판단을 어찌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법치국가에 사는 그 누구도 법원의 판단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를 문화예술에 무지한 야만의 고장으로 낙인찍지 않도록,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끔 ‘법 위에 정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의미라기보다, ‘정치적 판단’을 통하여 법적 집행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봅니다.

만약, 정치적 판단을 통해 법집행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시점에서라도 이 건축물이 철거되지 않도록, 그 자리에 그냥 서있을 수 있도록 현명한 행정적인 방안이 마련되지는 않을까, 기대를 가져봅니다. 마치 사형제도가 있어 사형판결을 받은 사형수가 있음에도 집행하지 않고 있듯이, 건축작품의 사형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집행을 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정치적 판단의 여지는 없는지, 호소도 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법 집행을 담당해야 하는 행정관청에서 그러한 고뇌가 없었을 리 만무하다는 짐작을 하면서도 말입니다.

▲ 양 상호 제주국제대학교(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이제 우리는 문화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이 시기에, 제주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역사적인 일을 결정하는 시점에 와있습니다. 20년 전 건축가 김중업씨의 작품인 ‘제주대 본관’ 건물을 철거한 일에 대해서 건축역사에서 비극적인 사건으로 다루듯이, 20년 전과는 무척이나 달라진 지금의 시대상황에서 이 건축작품이 철거된다면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에게는 법적 판결에 따라 집행하는 일만이 남은 것일까요? / 양 상호 제주국제대학교(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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