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도민연대, '2005 전국 4.3유적지 순례'
고윤섭.고봉원씨 수형생활했던 마산.진주형무소터 방문

▲ 4.3 영령들에게 추념하는 4.3 유적지 순례단
"죽을 때까지 다시는 이곳을 보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감회가 너무 새롭습니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도민연대)가 29~30일 양일간 유족과 4.3단체 관계자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2005 전국 4.3 유적지 순례 및 진혼제'를 개최했다.

▲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마산형무소터.
도민연대의 4.3유적지 첫날 순례 일정은 마산형무소와 진주형무소, 그리고 거제포로수용소.

이번 4.3유적지 순례에는 직접 형무소에서 수형인으로 옥고를 치른 고윤섭, 고봉원, 고성화 선생님이 참여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첫 방문지인 마산형무소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마산형무소는 고봉원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수행생활을 했던 곳.

▲ 형무소 생활을 증언하는 고봉원 할아버지
남원읍 한남리 출신인 고 할아버지는 48년 10월 산으로 피신했다가 다음해인 49년 4월 귀순했다.

하지만 고 할아버지는 7월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15년형으로 선고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 가량 복역하다 50년 1월 부산형무소로 이감됐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마산형무소로 이송돼 56년 2월 가석방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푸 부산형무소에서는 매일 야간트럭에 수형인을 끌고 갔지만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다"며 "아마도 부산 앞바다에서 처형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어 고 할아버지는 "우리도 곧 죽을 줄 알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제주출신 150명은 마산형무소로 이관됐다"며 "마산형무소에서는 더 이상 피의 학살극은 벌어지지 않았고, 56년 2월 가석방됐다"고 말했다.

▲ 고윤섭 할아버지
고 할아버지는 "꿈인지 생사인지 감회가 새롭다"며 "예전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주변도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진주형무소도 아파트 단지로 변해 있었다. 이 곳이 형무소터였다는 것을 알수 있는 유일한 사료는 120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팽나무'

제주에는 마을마다 하나씩 있는 팽나무지만 육지부에는 별로 없어 아파트단지가 건설될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국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모두 지켜본 듯 팽나무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또 나무 밑둥에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를 상징하듯 총흔도 군데군데 보였다.

진주형무소에서는 고윤섭 할아버지가 수형생활을 했던 곳이다.

고윤섭 할아버지는 반세기만에 다시 찾은 진주형무소터에서 '죽을 때까지 다시는 이 곳을 보지 못할 줄 알았다'며  눈시울을 붉혀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고 할아버지의 고향은 제주시 봉개동. 4.3이 발생했던 48년부터 한라산으로 피신해 살았다.

▲ 진주형무소터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료 팽나무
고 할아버지는 48년 11~12월 군경에으해 중산간 지역 토벌이 벌어지자 부모님은 삼양으로 피신하게 됐지만 3형제는 토굴에 움막생활을 하는 등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고 할아버지는 형과 동생은 49년 1월 봉개,용강,회천 등 '동부8리소탕작전'에서 목숨을 잃고 자신은 매복해 있던 군경에 의해 총탄을 3발이나 맞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 팽나무에 박혀 있는 총탄들.
49년 2월 고할아버지는 명도암 절물 인근 대나오름에서 피신생화을 하던 중 군경에서 '산으로 내려오면 살려준다' 선무공작에 의해 내려왔다.

헌병대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제주경찰서에 이송된 후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광주지법에서 7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복역중 항소했지만 한국전쟁으로 항고가 취하되고 부산형무소에서 이송됐다가 53년 진주형무소로 이감돼 56년 출소됐다.

고할아버지는 진주형무소 복역중 남로당 제주도당 조몽구 위원장과의 인연도 설명했다.

고 할아버지는 "4.3 무력 투쟁을 반대했던 조몽구 선생은 당시 진주형무소에서 복역중이었다"며 "조 선생은 강경파인 김달삼 등에게 말려  4.3 무장봉기가 일어났다고 저에게 말한 바 있다"고 진술했다.

▲ 진공스님의 천도의식
4.3 유적지 순레단은 형무서 순레를 마치고, 거제도에 있는 '포로수용소'를 찾았다. 한국전쟁 당시 22만명이란 포로가 수용됐던 거제포로수용소.

수용소는 이미 시가지로 변해 있었고,  주변에는 수용소박물관이 조성돼 있었다.

▲ 거제포로수용소박물관. 완전히 반공박물관으로 변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곳
하지만 수용소 박물관은 '반공 박물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했다.

순레단에 참여한 김경훈 시인은 "4.3 평화공원이 포로수용소박물관처럼 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씁쓸히 말하기도 했다.

"조만간 4.3영화를 도민들에게 선보일 겁니다"

- 임종호 감독

▲ 4.3영화를 준비하는 임종호 감독
완전한 4.3 해결은 위한 2005년 전국 4.3 유적지 순례단'에는 4.3 유족과 단체에서만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6mm카메라로 행사를 열심히 찍었던 임종호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주영상위원회 임원식 감독의 큰 아들이기도 한 임종호 감독은 4.3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번 순례에 참여한 것.

임 감독은 '조만간 제작발표회를 가질 예정으로 영화화 할 것'이라며 '스토리와 에피소드가  부족해 이렇게 따라나선것'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이미 판권게약을 마쳤다'며 '오는 11월 초경에 제작발표회를 갖고 본격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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