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이 만난사람(11)] 북촌 돌하르방공원 대표 김남흥
수없이 만들어지고 도내·외에 세워지고(최근에는 청계천에도 세워졌다) 지금도 토속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돌하르방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 해석은 아직도 분분하고 또한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관광상품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들 돌하르방이 제주토박이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 10월 22일 개장한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돌하르방공원’.
제주에서 나고 자란 30대 젊은 예술가 다섯 명이 합심하여 지난 5년 동안 땀흘린 1차 결과물이다.
보통 이 연배의 예술가들이라면 화랑이나 개인작업실에서 고고하게 작품활동이나 전시회 등을 열고 있음직한데, 이들은 5년전(99년) 이곳 북촌리 빌레왓에 5명이 의기투합, 망치와 정 등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제주대 미술학과 출신 선후배 3명과 산업디자인학과 출신 2명이 그들이다.
얼핏 보면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예술가라기보다는 하는 일이 완전히 ‘상노가다’ 일이기 때문이다(오해마시라. 건설노동자들의 일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들은 우선 4천5백여평에 달하는 곶자왈 빌레왓을 하나둘 손으로 일일이 다듬었다. 또한 인근 채석장에서 사온 현무암들을 직접 쪼개며 하나 둘 돌하르방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자료조사와 실측에 기초하여 여러 형태의 돌하르방 48기를 원형크기로 재현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돌하르방의 기능을 의미하는 여러 형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한 시대적 반영을 통한 새롭게 재해석되는 창작 돌하르방을 제작 설치함으로서 귀중한 향토문화유산인 돌하르방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단절된 과거를 잇는 가교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했다.
공식 개장한 지 일주일이 지난 29일 오후 돌하르방공원을 찾았다.
우선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에 세워져 있던 돌하르방 48기가 한군데 모여져 있다. 원형크기로 재현해 놓아 돌하르방의 지역적 특색을 한군데서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은 돌하르방의 기능(수호신, 주술종교, 위치표식, 금표(禁標)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새로운 돌하르방들이 우리를 맞는다. 남성의 성기를 묘사한 돌하르방도 있고, 칼을 든 돌하르방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악기를 연주하는 기발한 돌하르방의 형상이 우리를 맞는다. 이어 이 공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반영을 통해 재해석된 돌하르방의 갖가지 모습이 우리를 경탄하게 한다. 사랑과 평화의 전도자로서의 돌하르방, 꽃을 든 돌하르방, 우리를 포옹해 주는 돌하르방 등이 그것이다. 근엄하게만 여겨졌던 돌하르방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땅 속에 묻혀진 몸통까지 합치면 키가 15m나 된다는 거대한 '돌하르방과의 만남'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만난 김남흥대표(67년생).
오래전 ‘오름나그네’라는 오름답사 모임에서 만난지 10여년만의 조우이다. 돌하르방공원이 공식 개장했으니 이 공원의 대표인 셈인데 공식직함이 뭐냐 했더니 ‘뭔 직함이냐’며 손사래를 친다.
벙거지모자에 작업복 차림의 그를 보고 “영락없는 산폭도 같다”고 인사했더니 씩 웃기만 하는 그...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된 동기가 있을 텐데..
- (풍경)그림을 그리기 위해 제주지역의 산과 들을 7~8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는 중에 ‘동자석’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동자석의 미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대학에 다니며 왜 이런 제주도의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못했을까’라는 자괴감을 갖게 되었지요. 뒤늦게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 그 다음으로 돌하르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주의 대표적 상징이자 표상이라 불리어지는 돌하르방이 예상외로 정리가 안됐더라구요. 사진집조차 제대로 발간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원래 회화가 전공이지 조각이 전공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석공기술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 제가 평면작업만 해 왔고 조각경험이 없던 터라 처음에는 석공어른을 찾아뵙고 이 분들을 통해 원형재현 작업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근데 이분들이 일주일을 못 넘기십디다. 그 분들이 그 동안 작업해 왔던 정형화된 틀, 예를 들어 매끈하고 제주목 중심의 돌하르방의 형태는 우리가 추구하던 형태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그분들이 쓰던 연장 등의 장비를 보강하고 크레인 등을 빌려다가 직접 작업해보자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경험도 별로 없고 해서 처음 돌하르방 하나 완성하는데 꼬박 45일이 걸렸습니다.
- 또한 우리는 돌하르방을 눕혀서 작업한 것이 아니라 모두 세워서 작업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지요.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사면(四面)에 대한 공간감(空間感)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다보니 노동력은 2배나 더 들었지요. 나중에는 조금 속도가 붙더라구요. 대정현이나 정의현 돌하르방은 제주목 것보다 크기가 작기도 하고...
- 어쨌든 힘들었지만 얼굴과 크기가 각각 틀려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 깨끗한 다듬질을 거부하고 현무암의 투박한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우리만의 스타일도 고집했습니다.
- 돌을 자르는 ‘그라인더’라는 기계작업을 하다보면 물이 수반되는데, 작업에 열중하다보면 이런 부분에 주의를 못 기울여 감전사고가 부지기수로 났었습니다. 또한 정과 망치로 돌을 쪼다가 손이 다치는 것도 다반사였구요. 그래도 병원에 실려갈 정도의 큰 사고는 없었으니 다행이지요(웃음).
5년 동안 준비하면서 수입도 없었을텐데..가족들의 생계는 어떻게 꾸려가고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하네요.
- 동료들 모두가 결혼하여 가정이 있는 상태라 왜 그런 불만이 없었겠습니까만 드러내 놓고 반대하지는 않하더라구요. 아마도 그건 불만을 표출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땀이 뒤범벅이 되고 고생하고 있는데, 어느 아내가 그런 얘기 할 수 있겠어요?(웃음)
- 그래도 기초적인 생활을 위해 4대보험과 최저생계비 수준의 생활비를 내치느라, 형제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 은행빚도 많이 졌지요. 장비값만 해도 7~8천이 들었습니다(이건 쓰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나를 믿고 묵묵히 따라와 주고 함께 고생해준 후배들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김남흥씨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들 젊은 예술가들은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찾겠다는 의지와 맨몸하나 만으로 이 북촌 황무지 빌레왓을 새로운 제주의 문화관광자원으로 재창조해낸 셈이다.
김남흥대표는 이 돌하르방공원에서 어려움은 지속되지만 흘리는 땀의 결실을 믿으며 우리들 유년 기억 속에 사라진 건강한 원시성을 찾아내고 싶고 향후에는 갤러리 및 문화센터를 공개하여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원으로 성장하길 소망하고 있다.
필자 또한 그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제주의 문화를 가슴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관광객들에게 반드시 찾아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또한 제주의 문화를 이렇듯 온몸으로 사랑하는 젊은예술가들이 있는 한 제주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본다.
이지훈 편집위원
bagumj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