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38 운명의 여신-가믄장아기 신화 1

“내 배꼽 밑으로 쭉 내려 그어진 선그믓 덕에 먹고 입고 행동합니다.”


*지난 글까지 자청비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글부터는 가믄장아기 이야기(가믄장아기 신화-가믄장아기 원형-가믄장아기 여성)입니다.
 


옛날, 윗마을에는 강이영성이라는 거지가 아랫마을에는 홍은소천이라는 거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7년 만에, 9년 만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아랫마을에는 윗마을에서는 풍년이 들어 시절이 좋다 하고 윗마을에는 아랫마을은 풍년이 들어 시절이 좋다하는 소문이 들었다.

들은 바가 있는 터라 윗마을 강이영성은 시절 좋다는 아랫마을로 가고, 아랫마을 홍은소천도 들은 바가 있는 터라 윗마을로 얻어먹으러 길을 떠났다. 강이영성과 홍은소천은 마을 어귀 먼 올레에서 마주쳤다.

▲ 가문장아기 신화를 구술하고 있는 강대원 심방(2012.9.8.)

가난한 부부에게 첫째 딸이 태어나다


구르는 돌도 연분이 있듯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서로는 통성명하고 부부살림을 하게 되었다. 배필을 만난 둘은 동냥하여 얻어먹는 일을 그만 두고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써도 겨우 근근이 먹고살아갈 뿐이었다.

그런 즈음 홍은소천에게 태기가 생겨 점점 둥둥배가 되어갔다. 아버지 몸에 흰 피 석 달 어머니 몸에 검은 피 석 달 살 만들고 뼈 만들고, 아홉 달 열 달 준삭을 채워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일가친척도 없고 쌀도 옷도 없는데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막막하던 차에 마을 사람들이 죽을 쒀 은그릇에 담아다 먹여주고 돌봐주었다. 은그릇의 죽을 먹여주며 키웠다 해서 은장아기라 이름 지었다. 


어머니에게 기어가면 아버지가 웃고 아버지에게 기어가면 어머니가 웃고,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은장아기가 재롱을 해갈 때 홍은소천이 또 아기를 가졌다. 또 여자아기가 태어났다.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은, 처음만큼 정성은 못했으나 놋그릇에 밥을 해다 키워 주며 살펴주었다. 둘째 딸은 놋장아기라 이름 지었다.


다시 또 여자아기가 태어나니, 가난한 집에 운이 트이고 부자가 되다
 

다시 딸이 태어났다. 이제 동네 사람들의 반가움과 정성은 많이 식어, 검은 나무바가지에 밥을 해다 먹여 키워 주었다. 아기의 이름을 가믄장아기라 지었다.

그런데 가믄장아기가 한두 살이 되어 가니 점점 발복하여 가난했던 집에 유기전답이 생기고 우마가 생기고 처마 높은 기와집 네 귀에 풍경 달아 천하거부가 되어 갔다.

▲ 극단 북새통의 가족극 '가믄장아기'(작 고순덕·연출 남인우)가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국제연극제(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 SCHXPIR 2009)에 초청받았다.(출처 CBS노컷뉴스)

부자가 된 부모, 폼 재고 싶어 하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어느 날 너무나도 풍요롭고 평화로워서 지루해진 강이영성과 홍은소천은 딸아기들을 불러 문답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큰딸아기 이리 오라.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잘 사느냐?”
“하늘님도 덕입니다. 지하님 덕입니다. 아버님도 덕입니다. 어머님도 덕입니다.”
“ 내 자식이 분명하다. 네 방으로 가라”
“둘째딸아기 이리 오라.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사느냐?”
“하늘님도 덕입니다. 지하님 덕입니다. 아버님도 덕입니다. 어머님도 덕입니다.”
“오 기특하다. 어서 네 방으로 가라!.”


내 운명으로 먹고산다고 말하다


“막내딸 가믄장아기 이리 오라. 너는 누구 덕에 먹고 입고 행위발신하느냐?”
“하늘님도 덕입니다. 지하님도 덕입니다. 아버님도 덕입니다. 어머님도 덕입니다마는, 내 배꼽 밑으로 쭉 내려 그어진 선그믓 덕에 먹고 입고 행위발신합니다.”
“이런 부모 은공도 모르고 자기 덕에 먹고산다니, 이런 불효막심한 딸이 어디 있느냐. 당장 집을 나가라!”
자기 스스로 타고난 운명에 의해 먹고 산다고 당돌하게 말한 가믄장아기는 어머니 눈에 거슬리고 아버지 눈에 밉게 보여 집에서 내쫓겼다. 가믄장아기는 열다섯 될 때까지 입었던 옷가지들과 양식을 챙겨 검은 암소에 실고 다음 뵐 때까지 건강하시라고 부모에게 하직인사를 드렸다. /김정숙 

* 현용준「제주도 무속자료사전」, 문무병「제주도무속신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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