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 칼럼>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암울한 청춘'                                        

관광업계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청년이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앞으로 연애와  결혼도 포기하기로 했다’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기도 비정규직인데 여자 친구도 백수  여서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불안한 상황이 더 증폭되기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요즘 대부분의 도민 가정을 보면 아들 손자 조카 등 젊은이들이 이 같은 가슴 아픈 고민을 안고 있는데 이들을 ‘삼포(三抛)세대’라고 한다. 세 가지를 포기(抛棄)한 세대들이란 의미인데 대체적인 의미는 연애, 결혼, 출산을 지칭한다. 제대로 된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니 버거운 생활비용으로 인해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  하거나 기약 없이 미루는 세대들이란 말이다.

몇 년 전 고용 불안으로 인해 ‘88만원 세대’란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청년 세대들로부터 가족 구성에 필요한 통상적 세 단계를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란 말이 나오니 우울하고 또 우려가 된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형성마저 무너져 내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가족의 종말 시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증후가 한국 전반적 현상이지만 특히 우리 제주지역에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표들이 제시되고 있다.

 # 대학졸업자 취업률 최하위·일자리 구해도 ‘시간급’...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사치”

몇 가지 지표를 살펴보자. 제주지역은 올해 4년제 대학 졸업자 취업률이 47.8%에 불과해 전국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 비해 양호했던 도내 청년 실업률도 2010년 이후 악화되면서 2012년 2분기에는 7.6%까지 치솟고 있다.  더욱이 제주지역 고용 시장의 불안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행 제주지역본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9월에 비해 올 9월은 기능 단순 업무 종사자가 1만 1,000명, 농림·수산업자가 3,000명, 서비스판매직이 2,000명 증가한 반면 관리자 전문직이 5,000명 이나 줄고, 사무직 종사자도 4,000명이 줄었다는 것이다. 질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대신 불안정하고 돈 몇 푼 손에 못 쥐는 일자리가 대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마저 비정규직 시간급 등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청년들은 먹고 살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인생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겠느냐고 아우성이다. ‘가족을 이루는 것이 사치’라는 말도 서슴없이들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주지역 출산율이 최하위권이라는 것이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취업도 할 수 없고 그래서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사랑 하고, 연애 하고,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는 것은 인류가 사회공동체를 만들어 살게 된 이래 지속된 변치 않은 생명의 법칙이다. 가장 아름답고 정열적이어야 할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불안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족을 이루기를 포기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 리 없고 비전이 따로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래를 박탈당했다는 것은 ‘죽음’이나 다를 바 없다. 어떤 철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상징적 죽음이라고 했다. 미래가 없는 삶에 ‘살아갈 가치’도 없는 까닭이다.

‘삼포세대’란 말처럼 이 시대 한국사회, 더 좁게는 제주사회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잘 집약한 단어가 또 있을까? 청년문제라 하지만 이것은 20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포’는 유례없는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고 이러한 경향이 고착될 경우 우리사회는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가족형성 실종, 생산력 저하, 사회 해체 위기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물가는 치솟고 교육비 부담은 날로 늘어나 가계부채 역시 위험 수위에 도달한 지 오래다. 그러니 애를 낳고 키울 방도가 막막하니 누가 애를 낳으려고 할 것인가?
 
  문제는 꿈과 희망으로 그 ‘불확실성마저도 아름다워야 할 젊은이들’이 ‘삼포세대’로 내몰리는 상황을 아무 대책도 없이 방관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정치 지도자들이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도 대통령 후보군에서 공감할 수 있는 뚜렷한 삼포세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프니까가 청춘이다’라고 그 현란한 수사로 위로하기에는 한국의 청춘들이 너무나 지쳐있고 좌절의 심연이 너무 깊다. 괴테는 눈물 섞인 빵 한 조각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다. 고상한 청춘의 번뇌, 고민, 방황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아픈 청춘들이다. 청춘이 아픈 것은 청춘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구조의 문제이고 목표설정 기능을 담당해야 할 정치적 리더십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삼포세대는 세계화와 지식경제기반사회의 필연적인 산물이라고 치부하지 말자. 자본주의 체제는 통상적으로 경쟁에서 전체인구 중 20~30%를 탈락시킨다. 노동의 종말을 쓴 유명한 문명사가인 제러미 리프킨도 앞으로  현재 노동력의 5%밖에 필요치 않은 시대가 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도 내놓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저성장이 뚜렷한 추세가 될 것이고 이러한 흐름속에서 신 성장동력산업을 찾아내는 고민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문제는 경쟁에서 뒤진 이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성장하는 경제를  얼마나 잘 구조화 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 그 역할은 정치의 몫이다. 

 # 대권후보·제주사회 리더들이  ‘청춘’에 희망과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제주사회 리더십의 부재도 이 땅의 청춘들을 절망하게 하고 있다. 민자 유치 세제혜택 유인이 주효해서 꽤 몇몇 명망 있는 기업들을 포함한 여러 기업들이 제주로 진입했다. 이제 이들 기업들에 대해서 고용 친화성을 포함한 지역사회공헌 정도를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 단지 세제 혜택만을 보고 제주에 진출한 기업은 없는지를 따져 봐야 할 때이다. 제주도와 대학, 기업이 공동으로 취업대책을 세워 나가야 한다. 학력과 나이와 희망사항에 따른  맞춤형 취업전략을 설계할 필요성이 다분하다. 그 중의 하나가 직업능력 개발을 위한 직업훈련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일정기간 동안 훈련비를 전액 면제 해줘야 한다. 해외로도 눈을 돌려서 외국에서 가장 요구되는 기술, 언어 등을 1~2년 정도 무료로 교육시켜서 해당 국가로 내보내는 방안도 생각해보자. 일본이나 중국 등에 ‘탐라방’을 세워서 제주도의 생산품들을 팔고 그곳을 제주청년들의 연착륙 거점으로 삼도록 하자. 외국은 아직도 미답의 땅이다. 특히 인도나 중국 등 아시아로 눈을 돌리자. 마을 기업과 사회적 기업들을 활성화시키고 협동조합운동도 장려해서 자생적 일자리 공급기지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예시적인 대책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삼포세대에  대한 역지사지, 나아가 감정이입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심리적 기초 위에서 진정성  있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말로는 공평·공정사회와 공생을 제시 하면서도 끼리끼리 해먹는 파당적이고 분절적인 정치로서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말 고통 받는 청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 고충석 제주대 교수
이제 우리 사회에 등장한 ‘삼포세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물음표 이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 발전의 방향성, 산업 및 고용구조, 투자유치 업종과 지역 업종간의 관계, 노동시장구조, 교육, 그리고 경제민주화, 복지, 직장환경, 여성과 육아문제 등 연관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다층적이다. 경제적인 문제이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이를 공론화하고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거기에 우리나라의 장래가 연동 되어 있다. /고충석(전 제주대 총장)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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