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에비앙은 레만호 남쪽 호반에 위치한 프랑스의 휴양도시다. 원래 지명이 에비앙레뱅( Évian-les-Bains)이라 불리는 이 도시는 지도상으로 호수를 가로질러 스위스의 로잔느와 마주보고 있다.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나온 론강이 레만 호수로 이어지고 다시 프랑스 남동부 지역을 거쳐 지중해로 흘러들기 때문에 레만호가 자연스럽게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을 이루는 결과다.

이 도시가 주변의 호반 도시 가운데서도 지금처럼 유명해진 것은 광천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잡은 에비앙 덕분이다. 생수로 인해 도시의 이름이 알려진 경우다. 각국에 수출되는 생수의 규모가 매달 3000만병에 이를 정도다. 이미 1826년부터 생수를 팔기 시작했다고 하니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셈이다. 프랑스의 어느 귀족이 이곳에서 샘물을 마시며 요양한 끝에 지병이 나았다는 입소문이 퍼진 덕분이었다.

이를테면 전체 인구가 채 1만명도 안되는 작은 도시로서 생수 마케팅을 통해 세계적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연간 2200만 유로(약 330억원) 규모에 이르는 시정부 예산 가운데 30% 안팎이 에비앙 생수에서 조달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생수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은 샘물을 이용한 스프레이, 스킨케어 등 건강·미용 상품까지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각 나라마다 이름을 날리고 있는 천연 광천수의 브랜드를 살펴보아도 이미지 활용 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에비앙과 같은 프랑스의 볼빅이나 페리에를 비롯해 독일의 노르데나우, 캐나다 아이스, 일본의 히타(日田) 천령수 등이 수입을 통해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상표들이지만 대체로 나름대로 비중있는 기업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밖에도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기업들이 해양 심층수를 브랜드로 개발해 내놓고 있다.

국내 회사들이 생산하는 생수 브랜드도 경쟁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지방의 군소 업체들까지 감안하면 줄잡아 50~60개의 상표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환경오염과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겹친 데다 휴양·레저활동의 확산으로 생수의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는데 따른 현상이다. 현재 국내의 생수시장 규모는 연간 6000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국내의 생수 제품과 수입 제품의 가격 차이가 너무 현저하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10배 정도, 브랜드에 따라서는 100배 이상이나 높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물론 지역마다, 편의점마다 차이가 있고 같은 브랜드의 경우에도 가격이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일목요연한 비교가 어렵다고는 하더라도 국내 제품보다 월등히 비싼 것만은 틀림없다. 그야말로 물 몇 모금이 밥값보다 비싸다는 얘기가 들릴 만도 하다.

그렇다고 외국산 브랜드라고 해서 늘 품질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산 생수보다 미네랄 함량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일반 세균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프랑스의 어느 생수 제품이 중국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은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사의 기준이 다르다는 반박과 논란도 따르고 있으나 적어도 가격을 보장할 만큼 물의 성분이 뛰어나다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 삼다수가 최근 도외반출을 포함한 모진 풍파에 휩싸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삼다수가 생수 시장 점유율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제주도민의 공동 재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제주개발공사가 지하수 취수량을 늘려야 할 경우 도의회의 절차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인식을 반영한다. 다른 지역의 개발공사들이 거의 적자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서도 유독 제주개발공사가 연간 300억원 규모의 순익을 거두는 것도 삼다수 덕분임은 물론이다.

특히 삼다수의 불법유통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주개발공사에 대한 압수수사까지 이뤄졌고 여기에 관련된 업체 대표들도 무더기로 경찰 당국에 입건 조치된 마당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과정에서 한동안 유통 불안으로 자칫 삼다수의 명성이 훼손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이번 기회에 삼다수 생산을 위해 지하수를 어느 정도까지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도민들의 공감대가 이뤄져야만 한다.

육지 지역에 대한 삼다수 유통사업을 농심에 장기간 독점으로 맡기고 있는 것도 정상적인 처사는 아니다. 그 과정에서 농심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그것을 떠나서도 제주도민의 전체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이런 일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렵다. 제주도가 아쉬운 나머지 처음부터 불평등계약을 자초하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라면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삼다수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들도 다각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있어서는 앞서의 에비앙 생수로부터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뛰어난 홍보 전략이다. 에비앙은 몽블랑을 자기들의 공장이라고 선전하는 데서부터 눈길을 끌고 있다. 이에 비하면 삼다수는 한라산의 화산 암반을 거치며 걸러져 외국의 어느 생수에 못지않으면서도 홍보 전략은 뒤지는 것 같다.

사실 에비앙의 뛰어난 점은 홍보 전략만은 아니다. 생수가 흘러나오는 알프스 고원지대의 취수원을 보호하는 활동을 면밀히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주변 도시들과 협약을 맺어 농약으로 인해 물줄기가 오염되지 않도록 로열티를 제공하기도 한다. 시 지역 내에서도 농약보다는 가급적 먹이사슬의 천적을 이용하고 있다. 골프장의 잔디 관리에 있어 살충제를 뿌리지 않고 진딧물과 그 천적인 무당벌레를 이용하는 식이다.

▲ 허영섭 칼럼니스트.ⓒ제주의소리
그렇게 본다면, 아직도 제주 삼다수로는 받아들여야 할 교훈이 적지 않은 셈이다. 비단 이번에 드러난 유통과정의 문제점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비가 온 다음에 땅바닥이 더 굳어지는 법이라 하지 않는가. 다시는 비슷한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책을 마련하는 한편 10년, 20년 더 나아가 100년 앞을 내다보는 개발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전체 도민의 재산을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 허영섭(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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