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21) 할망 말씀 대로 “살젠허난 살았주” / 정신지

 

▲ 하르방은 몸이 많이 편찮으시다. 기계로 치면 이미 다 고장이 나 버렸다고, 언젠가 하르방에게 의사가 그렇게 말을 했단다. 거참, 혹독한 의사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어느 한적한 오후, 노부부가 마당에 앉아 산에서 캐온 약초를 말리고 있다. 하르방은 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둥글게 굽은 등을 한 할망이 홀로 앉아 묵묵히 일을 한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그들의 마당에 침묵을 깨고 다가가 할망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하던 일을 멈추고 할망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올해 83세라는 할망은 이 마을에 시집온 지 50년이 지났다. 서른두 살, 옛날로 치면 꽤 늦은 나이에 시집을 왔다. 제주시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녀가 도대체 왜 이 산골 마을로 시집을 왔는지가 궁금해 나는 물었다. 그러자 조용한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아이고, 게메(아휴, 그러게). 좋은 디(곳) 다 내버려 둰(두고) 이디 완(여기 왔어). 고생허젠 허난(고생하려고 하니까) 온 거라. 살아지카부덴 행(살아질 것 같아서) 와신디(왔는데), 이디도(여기도) 잘도(상당히) 박헌 디라(힘든 곳이야). 한라산 가차운 데(가까운) 왕(와서) 땅 파먹고 살아와신디(왔는데). 살아온 거 생각하민(생각하면) 참 기가 막혀.”

결국, 왜 늦은 나이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는지,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이래서 오셨나, 저래서 오셨나, 내 멋대로 스토리를 만들어 그녀에게 물어봐도, “게메 말이여(그러게 말이야).”, “모르켜(몰라).” 라는 대답만 쓴웃음에 섞여 나온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더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혹은, 정말 기억에서 사라져버렸거나.

하기 싫은 말들은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은 고문과도 같은 행위다. 평화로운 오후의 침묵을 깨고 무단침입자가 되어 그들 앞에 서 있는 나. 이미 충분히 민폐를 끼치고 있다. 삶에 관한 단순한 내 호기심으로 그들을 슬프게 했다가는, 업이 쌓여 내가 아프고 말 것이다. 주책 같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으로 나는 늘 걸으며 반성한다.

말이 없어도 정말 없는 노부부. 하지만 불쑥 나타난 나에게 보내는 할망의 미소는 거짓된 것이 하나도 없다. 낯선 이에 관한 적대심도 경계심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약초를 말리는 그녀의 곁에 앉아 가만히 놀았다. 어쭙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며 말이다.

 

▲ 한적한 오후, 캐어 온 약초를 말리고 있는 그들의 마당. 하루에 한마디도 말을 주고받지 않는 적도 많다는 노부부이지만, 늘 이렇게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시집 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소를 기르는 일. 이제 농사를 도와주는 일꾼도 아닌 소들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먹이를 먹으며 노부부와 함께 산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마당에 작은 외양간이 있다. 신기해 다가가니 지난여름에 태어났다는 송아지와 어미 소가 두 마리 나란히 서서 먹이를 먹고 있다. 하루에 다섯 번이나 먹이를 먹는다는 소는, 이제 그들의 밭일을 도와주는 가축이 아니다. 되레 소에게 풀을 먹이다 보면 하루가 가고 계절이 훌쩍 지난다.

할망이 서른 넘어 시집을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를 기르는 일이었다. 소를 길러 팔고 밭농사를 하며 살아온 한평생. 그러나 이제 그 누구도 밭을 가는 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몇 해 전, 소가 병에 걸렸다며 공무원들이 나타나 자식 같이 길러온 소들을 폐사시켰다. 할망과 하르방이 직접 소들을 땅에 묻었다. 보상금은 받았지만, 죽어버린 소들과 보상금은 맞바꿀만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할머니, 쇠(소) 지르는(기르는) 것이 쉬우꽈?(쉬우세요?), 아니면 조식(자식) 지르는 것이 쉬우꽈?” 하고 내가 장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말없이 앉아 계시던 하르방도 멀리서 움찔하며 웃는다. 할망이 입을 열었다.

“허이고, 참말로…. 조식 나앙(낳아서) 밭에 데려갈 꺼라? 허허허. 조식이 살아이시민(살아있으면) 뭐 허주마는, 돈 들고 속 타는 것은 조식이라. 조식도 오글오글 크민(크면) 모든 것을 잊어불고(잊어버리고) 잘 살아져실 건디(살아졌을 건데)…. 그것이 생각추룩 되지 않허영(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경(그렇게) 가부난게(가버리니까).”
“가긴 어딜 가마씨(가요)?”
“어디긴 어디라, 저승나라.”

할망과 하르방은 슬하에 자식이 둘이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에게는 여섯 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 중 네 명이 부모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간 자식도 있고, 서른을 넘어 간 자식도 있다고 하신다. 네 번의 장례상을 차려 배 아파 나은 자식을 저승나라에 보내신 할망 하르방이다. 그래서 당신들의 명줄이 터무니없이 질긴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쓴웃음 뒤에 나의 가슴은 턱하고 답답해진다. 

“게난(그러니) 넌 결혼해샤(결혼했니)?” 화두를 내게 옮기며 할망이 물었다. 그리고는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해진 담뱃갑을 꺼내신다. 그녀의 가녀린 손에 쥐어진 라이터가 떨린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후’ 하며 그녀가 연기를 내뱉는 동안, 나는 고개를 저어 아직 미혼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할망이 대뜸 목청을 높이신다. “어이고게(어이구). 너가 배운 것이 하부난 (많아버리니까) 경 햄서(그러는 거야).”

기가 찬 분석이다. 뻥하고 한 방 맞았지만, 내가 왜 아직 시집을 못 갔는지(안 갔는지?)에 관한 설명 따위는 굳이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제야 말 없는 할망의 입장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나를 화두에 두고 이야기하시는 할망은 좀 전보다 말이 많아져 있다. 담배를 태우며 답답한 속이 조금은 뚫리셨는지 길게 말씀을 이어갔다.

 

▲ 담배를 피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 내려앉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뿜는 담배연기 속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바람에 날려 이내 사라지기에 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50여년 전에 이 마을에 시집을 오신 할망은, 소를 기르고 한라산 가까운 곳에서 땅을 파 농사를 지으며 한평생을 살아왔다. 지금은 약초를 캐어 파는 것이 용돈벌이라 하신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이녁(너) 혼자만은 돈을 벌어져도 좋고 못 벌어도 좋지만, 결혼행(해서) 조식을 나으민(자식을 낳으면), ‘아, 우리 부모가 이추룩(이렇게) 나를 낳고 아프멍(아프면서) 키웠구나.’ 알아지고 의지가 생겨. 여자가 놈(남)의 집에 강이네(가서) 살젠허민(살려고 하면) 의지가 이서야(있어야) 살아. 남편이영(이랑) 쏩당 보민(싸우다 보면) 세월 다 가주만(가지만), 촘으멍(참으면서) 배와지는 거라(배워지는 거야). 나도 젊은 적엔 글자 하나라도 배우젠(배우려고) 야학도 댕기고 해나서(다니고 했었어). 경헌디 4.3사건 터졍이네(그런데 4.3사건 터져가지고), 학교랑 말앙(학교는 아니고) 대신 훈련 댕겼주게(다녔지).

테레비 틀엉(텔레비젼 틀어서) 봠시민(보고 있으면) 요새 아기들이 지기냥으로(자기대로) 죽어불켄(죽어버리겠다고). 뛰어내령(뛰어내려서), 약 먹엉(약 먹어서), 호끔허민(툭하면) 죽어불잰(죽어버리려고)…. 허이고, 부모네가 얼마나 속상허크냐(속상하겠어). 돈은 돈 같이 벌엉(벌어서) 조식 공부시키젠(시키려고) 학교 보냄시민(보내고 있으면), 집 밖에선 아기들이 죽어나. 게난(그러니까) 요즘 잘도(참) 위험한 세상이라. 우리 적에는 살당 살당(살다 살다) 고생허멍(고생하며) 살 수 없는 입장이 되어도 죽지 못허여. 살고정(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병으로 죽고, 맞앙(맞아서) 죽고 해신디(했는데)…. 나도 이제 그만 저승나라에 가고 싶주만(싶지만), 여든 넘엉(넘어서) 약 먹고 죽었덴 허민(죽었다고 하면) 웃긴 거 아니라? 살아지난 게(살게 되니까), 살잰(살려고) 안 해도 살아사주(살아야지).”

담배를 다 태우신 할망이 커피 마시자며 나를 집안으로 불러들이셨다. 물을 끓여 커피를 세 봉지 까서 컵에 넣으시고는, 그 위에 두 숟가락씩 설탕을 또 얹는다. 그 중 한 잔을 주시며 하르방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시는 그녀의 손길이 참 진득하다. 밖에 계신 하르방에게 커피를 갖다 드리자, 이제껏 한마디 말도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추운디 안에 들어강 고치(같이) 먹자.”

하루에 단 한마디도 안 할 때가 많다는 하르방의 입에서 나온 귀한 말 한마디. 뜨끈한 마루에 셋이 앉아 할망의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그날따라 희망차게 들려오는 것은 왜였을까. 소는 가고 자식도 갔지만, 텅 빈 외양간에 새 소가 오고 새 사람이 온다. 그러니 할망 말씀대로 그냥, 함께 사는 거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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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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