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13-①

투자유치와 지역발전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필자 역시 경제적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에 경제는 필자에게도 주요한 관심사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용어들에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 용어들은 그 본질을 숨기고 미화시키는 경우가 많은데(이는 아마도 한국의 경제학이 관치경제의 품 안에서 발전학으로 인식되었던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인 것 같다.), 이를테면 민영화란 말이 대표적이다. 이 얼마나 순치된 용어인가? 기실 이는 사유화의 다른 표현이다. 누구의? 대자본을 소유한 재벌들의 사유화 말이다. 그 사유화의 대상은 무엇일까? 대부분 국민들이 소유한 공공영역, 공기업들이다. 어떤? 예를 들어 국책은행이나 철도, 도로, 통신 등의 공공인프라, 한전 등 공기업들이다.

즉, 국민의 재산인 공공재를 헐값에 개인에게 팔아치울 때 주로 쓰이는 용어가 바로 민영화다. 국민의 재산을 약탈해 재벌들에게 사유화시킨다고 하기 뭐하니까, 부실한 공기업을 민영화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인다는 그럴싸한 포장이 필요할 때 쓰이는 용어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 용어인가?

‘노동자’를 굳이 ‘근로자’란 말로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노동자 하면, 다수의 주체적인 사회세력으로, 그 내부에는 자본주의에 응대한 강력한 전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가 내재되어 있다. 즉,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노동계급의 힘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근로자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계급성은 탈각되고 단순히 ‘일하는 사람’으로, 즉 파편화된 개별성으로 조각나 버린다. 이 용어도 기만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듯한 용어의 차이가 기실 우리 사회의 팽팽한 대결의 역사를 담고 있다.

‘투자유치?’ 좋은 말이다. 특히 우리 제주사회에서 이 투자유치는 마치 제주경제의 활성화와 지역발전을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쓰인 지 오래다. 종종 ‘도지사의 외유=투자유치’의 의미로 쓰일 때도 많다. 이 투자유치를 못 해오면 무능한 지사로 낙인찍히는 게 겁이 났는지, 어떤 지사는 단순히 사업을 하고 싶다는 표현일 뿐인, 소위 MOU를 남발하면서 투자유치 성과인 양 행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실제 사업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허명이 문서일 경우가 많았다.

투자유치의 뜻은 말 그대로 (외부의) 투자를 끌어온다는 말이다. 누구의 투자를?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사업자일 것이다. 어떤 사업자들? 바로 제주의 자원을 최대로 활용해 돈을 불리고 싶은 자들이다. 사업자란 본질적으로 최소의 투자를 통해 최대의 이윤을 가져가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제주에 투자하는 모든 사업자는 투자규모와는 상관없이 최소의 투지를 하고 싶어 하고 최대의 이윤을 뽑아가고 싶어 한다. 그게 자본의 논리이며, 본질이기 때문이다.

최근 투자유치를 위한 활발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주에서 목마르게 유치하는 투자와 유치가 대부분 갑을관계가 뒤바뀐 형국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보석 같은 제주도에 투자를 유치하면서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으로 지원책을 제시하는가 하면, 이득도 크지 않은데, 유치한 투자가 결국 미래자원 가치가 큰 제주도에 부동산 장사만 시켜주는 패착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일례로 JDC가 앞장서서 추진하는 사업인 외국인영어학교의 경우도 이게 소위 국책공기업에서 해야 되는 일인지, 제주도민들에게는 어떤 플러스 효과가 있는지, 중등교육의 본질과 맞닿아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무시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 개인사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중등교육과정이 지니는 의미보다는 투자유치의 성과로, 국적 없는 글로벌 인재(?)의 양성(유학 대신 이 학교들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물려주거나, 새로운 기득권을 틀어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보낸다.)을 위한 천박한 교육장사라는 측면에서 철학적 성찰도 없다. 소위 경제논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곳에서 길러진 인재들이 추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들과 어떻게 만나질지도 논외다. 특히 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되는 성장기 전체를 영국식 커리큘럼에 따라 채워나갈 대한민국 아이들의 미래는 무엇인지도 심도 있는 토론 한 번 없었다. 그저 선진국의 교육기관이고, 영어 하나는 완벽하게 해내서 앞으로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장이 필요했고, 이 시장에 맞춤인 것이 소위 ‘영국의 명문사학 NLCS Jeju 분교’인 것이다. 마침, 대한민국이 구축해 놓은 입시제도 안에서 병든 공교육의 처참한 상황들은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명징한 증거가 되어, 조건도 안성맞춤인 때인 것이다. 뼛속까지 자본주의적인 방식이 이 멀고 멀었던 섬나라 제주에서 관철되고 있다. 글로벌시대, 이미 제주사람들 또한 예외가 없다.


에코 엘도라도 제주

▲ 황금향인 엘도라도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이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해,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매체로 표현된 예술적 소재이기도 하다. 그림은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엘도라도>의 한 장면.

스페인어 엘도라도(El Dorado)에서 엘은 정관사, 도라도는 황금을 뜻한다. 이 말은 황금인간, 또는 금가루를 칠한 사람 그리고 황금의 도시를 뜻하는 말로, 오늘날 페루와 칠레지역의 잉카제국을 정복한 대항해시대 정복자들의 입을 통해 유럽에 전해진, 황금이 넘쳐 난다는 황금향(黃金鄕)에 대한 전설을 담고 있다. 당시 많은 정복자가 엘도라도를 찾으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뒤로 엘도라도는 그 자리에서 쉽게 부(富)를 얻을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뜻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라틴아메리카 및 미국의 여러 도시와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다.

 

▲ 영화 <블랙골드>의 포스터.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을 맡아 2011년 개봉한 영화로, 1930년대 석유 발견 당시 아라비아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엘도라도는 중동의 아랍국가들, 소위 산유국들이다. 블랙 골드라 불리는 석유제국이 있는 중동은 석유에너지시대의 호황을 맞아 블랙 엘도라도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이 블랙 엘도라도의 힘은 지구의 모든 부의 원천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위 피크 오일(석유 정점)이 다가오고 있다. 즉, 석유종말시대가 온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유한하다. 자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한한 자원이라는 태양에너지 역시 태양의 수명만큼 무한할 따름이다. 불행히도 블랙 엘도라도의 시대는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원은 유한한데 갈수록 석유소비는 증대하고 있다. 다른 말로, 종말을 재촉하는 시대의 종말을 눈에 두고 있는 셈인데, 이 블랙골드로 세계는 좁아졌고, 이 블랙골드 덕에 인류는 유래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려왔다.

하지만, 이 블랙골드를 열심히 사용한 결과, 지구온난화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 직격탄은 온도 상승으로 인해 빙하지대의 해빙이 가속화되면서 지구인들이 유래 없는 물 부족시대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의 10억 인구가 당장 물 부족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유엔보고서는 밝힌다. 또한 석유에너지를 대체할 대체에너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부족한 석유는 21세기에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국제전인 1,2차 걸프전을 일으켰다. 좁아진 지구화는 바이러스와 광우병 등 질병의 확산에 있어서 끔찍한 속도를 보여줬고, 인류의 종말은 질병의 세계화로 인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는 또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 저 익숙한 이미지, 블랙골드를 뽑아 올리는 시추기의 모습은 20세기 석유문명의 상징적인 아이콘이다.

소위 콘크리트와 아스콘을 기반으로 지어진 현대의 모든 도시들, 특히 끔찍한 자동차대국이면서 고층아파트제국인 대한민국은 쾌적한 도시의 창출에 실패했다. 소위 부동산적 가치와 토건족의 정책적 결합의 먹이사슬구조가 우리의 도시들을 끔찍한 삶의 공간으로 타락시켰다. 이제 도시에 사는 누구에게나 쾌적한 자연이 살아 있거나, 자연을 품은 삶의 터전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필요와 욕망들은 바로 에코 엘도라도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다.

19~20세기가 블랙 엘도라도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에코 엘도라도의 세기다. 제주도는 에코 엘도라도다. 에코 엘도라도는 청정한 물과 대안에너지원 그리고 쾌적한 자연환경과 천혜의 경관, 안전한 먹거리들이 자급되고 생산되는 곳이다. 지구상에 이 모두를 충족시켜줄 곳은 많지 않다. 이러한 에코 엘도라도의 자원들은 사실 블랙 엘도라도의 시대가 창출한 수요이기도 하다. 즉, 에코 엘도라도는 포스트-블랙 엘도라도다.

▲ 에코 엘도라도의 모습들. 물, 에너지, 청정 환경, 친환경 먹거리는 궁극의 미래자원이다. 제주의 후손들이 누리고 살아갈 절대자원이기도 하다.

제주는 현재 블랙 엘도라도의 막차를 탔다.

지금 제주는 블랙 엘도라도 세대의 총아인 관광산업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아니, 황금시대 끝물의 막차를 탔다.

19세기 중엽까지 국가의 영토와 문명의 경계를 넘어서 이동하는 인간은 특정집단에 국한되어 있었다. 즉, 귀족, 승려, 군인, 상인 등이 그들이다. 이동은 실제적 필요에 의해서, 즉 생존과 관련된 이동이나, 종교적 배경의 순례 등이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실크로드를 오갔던 대상행렬이나, 차마고도의 소금상단 등이 그러했고, 산티아고나 예루살렘의 성지 순례가 그러했다.

그러나 근대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의 이용은 비약적인 이동수단의 발달을 가져왔다.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중산층과 부유한 평민들이 이 그룹에 추가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 ‘매스 투어리즘(Mass Tourism)’시대, 즉 대중관광·대량관광의 시대가 도래한다.

전후 미국의 석유재벌들에 의한 값싼 석유의 전 세계적인 대량보급으로 항공, 선박, 철도망 등이 대륙을 넘어서고, 문명과 문명을 넘어서 비약적으로 팽창하면서, 1950년대 이후 관광이 자본주의 세계의 비중 있는 산업으로 성장 발전하기 시작한다. 복합적인 서비스업의 총화로서 관광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제는 MICE산업으로 더 광의의 포괄적인 융·복합화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 MICE란 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Event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폭넓게 정의한 전시·박람회와 회의산업을 말한다. MICE 산업은 대규모로 조직된 집단의 국제행사 시 성립된다. 유엔 산하기구의 국제회의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크게 보면 국제 규모의 ‘행사 산업(Events Industry)’이라고 볼 수 있다.

제주도는 지난 40년간의 관광중심 개발정책으로 제주방문 1,000만인 시대의 도래가 눈앞에 와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값싼 석유의 혜택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 석유재벌들이 펼쳐놓은 블랙골드의 바다인 해협을 건너, 인구 60만도 채 안 되는 섬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마치 타오르는 촛불의 마지막 광휘와 같다. 이제 머잖은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전면적인 문명의 판짜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블랙골드의 마지막 만찬에 취해 도래할 위기의 시대를 예견하고 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호황의 단맛을 다시는 맞보지 못할 것이다.

20세기 마지막과 21세기 초엽의 신기루는 역시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지대에서, 즉 블랙 엘도라도의 사막 위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들은 닥쳐올 상황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내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탈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대 속담에서처럼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건설 중인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는 세계 최초의 탄소제로도시를 꿈꾸며  ‘석유 이후 시대(post-oil era)’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다.

전 세계가 두바이의 거대한 사막도시건설 프로젝트 쇼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이웃한 아랍에미레이트연방의 맏형이면서 전 세계 석유·가스 매장량의 10%를 점유하고 있는 아부다비(Abu Dhabi)는 2006년부터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탄소제로도시인 마스다르시티 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바이나 아부다비의 국책 프로젝트들은 모두 ‘제트기를 모는 세대가 낙타를 탔던 할아버지 시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40여 년 전부터 국제에너지시장을 분석해 오면서 석유 이후 어떤 자원이 에너지시장을 주도할 것인가를 예측하고 준비해 왔다. 아부다비의 마스다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공기업인 ADFCE(아부다비 미래 에너지)의 초대 CEO인 술탄 ‘알 자베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석유는 고갈될 수밖에 없고 그 이후에도 에너지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석유를 판 돈으로 석유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마스다르다.”라고 말한다. 손자들이 다시 낙타를 타는 시대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마스다르시티는 탄소제로도시다. 도시 내 전력은 태양열 발전과 풍력발전, 자동차는 태양광전지를 활용한 PRT라는 캡슐형 전동차로 석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016년까지 1천 500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5만여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다.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신개념의 도시가 세계 최대의 산유국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2012년 3월,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갑자기 우리가 산유국이나 된 듯 도배질을 했다. 다름 아닌 “석유공사 우리 유전 확보, UAE 3개 유전 광구 개발 본 계약 체결”, “3개 유전의 원유 부존량은 5억 7000만 배럴로 추산, 국내 소비량의 8개월 치에 해당, 석유공사는 이르면 2014년부터 생산에 들어가 하루 최대 4만 3000배럴의 원유를 캐낼 것으로 기대”, 이 경우 지분에 따라 우리 측은 하루 1만 7000배럴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로 관련 주가가 수직상승하는 등 경제적 관심을 유발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UAE 측에서는 자기 돈 안 들이고 부존자원을 개발하여, 그 개발이익금을 손 하나 까닥 않고 벌어들이고, 탄소제로도시에 투자할 여력이 더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환호하는 만큼 그들도 환호한다. 다만,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8개월 치의 소비할 석유를 얻었고, 그들은 그런 석유를 통해, 낙타를 타지 않아도 될 미래를 얻을 거니까.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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