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맥없이 가라앉을 때, 우리는 이곳에 간다
살다가 맥없이 가라앉을 때, 우리는 이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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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의 숨, 쉼] 제주인의 허파, 동문 재래시장에서

 흔히들 제주의 곶자왈을 제주의 허파라고 부른다. 곶자왈이 물리적 의미의 허파라면 동문시장은 정신적 의미의 허파라고나 할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거르지 않고 하루에 한번 동문 시장에 간다.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서다.


 동문시장에 가면 언제나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도 물건을 사는 사람도 서로 치열하게 흥정을 벌이는 모습은 현장감을 더한다.

 삼촌이나 이모 같은 친근하고 가족적인 호칭들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옵서 갑서, 삽서, 내립서, 하영 드리쿠다 같은 진한 제주도 사투리들도 펄펄 기가 살았다. 제주도 바람무늬를 그대로 이마에 새긴 할망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수산 시장 숨·쉼

물고기들 팔딱팔딱
숨넘어가는 소리에
내 심장도 팔딱팔딱

물고기들 팔딱팔딱
“차암 신선해 보이네.”
엄마 눈이 반짝반짝

물고기들 팔딱팔딱
“정말 생동감이 넘치네요.”
취재 아나운서 목소리 쩌렁쩌렁

팔딱팔딱
급한 목숨 하나에

마음은 여러 개

 졸작<수산시장>

 

▲ ⓒ김희정

살다보면 자꾸만 맥없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수산물 코너를 한 바퀴 돌아보시라. 삶이란 놈이 실시간으로 다가올 테니까. 오늘같이 차가운 날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동문시장 수산물 코너이다.


창희는
아직 일 학년
학교 갔다 오면
생선 파는 엄마 볼에
제 볼을 비벼대요.
생선 사는 사람들
거스름돈도 털고 넣는
비릿한 손도 잡고 흔들어요.
 “엄마야, 어깨 아프지?”
고사리 손으로 주무르면
창희 엄마 벙글벙글
입이 벙글어지고요
옆에옆에 앞에앞에
어물전 아줌마들
딸 없는 사람 서러워 못살겠다고
엄살이 어물전 바닥에 찰방거려요.
         졸작<창희>

 시장에 가면 종종 아이들도 만날 수 있다. 그 아이들은 그냥 학교나 동네 골목에서 만났을 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시장에서는 가족뿐만 아니라 서로 좌판을 벌인 사람들끼리의 정도 끈끈하다.

 

▲ ⓒ김희정

호떡 골목 숨·쉼

 동문 시장을 한 바퀴 돌다보면 바쁜 걸음이, 마음이 절로 멈추어지는 곳이 있다. 살짝 도망갔던 입맛이 자신도 모르게 돌아와 침샘을 자극하고 철옹성 같이 버티던 다이어트 부담을 딱 하루만 내려놓고 싶은 곳, 호떡, 어묵, 빙떡 골목이다.

 특히 겨울이면 지위고하, 국적불문을 막론하고 뜨거운 단물이 줄줄 흐르는 호떡을 후후 불어가면서 입 안 가득 밀어 넣거나 김이 모락모락 날아오르는 대나무 꼬치를 뜯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는가? 그 곁을 지나면 모두 참새가 된다.

짹짹 ^ ^ 500원짜리 호떡에 어묵에 아이들 마냥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숨은 골목 숨·쉼

 동문 시장에도 번성한 곳이 있지만 후미진 골목도 있다. 그곳은 사람 발길이 비교적 뜸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좌판을 벌이고 손수 가져온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이 더러 있다. 신선하고, 싸고, 덤을 주시는 맛에 일부러 찾아들어간다. 그러다 가끔 졸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본다. 그럴 땐 그 꿀맛 같은 잠을 깨우지 않고 그냥 지나쳐준다. 돈 몇 천원과 바꾸기엔 너무나 달콤해 보여서…

  이렇게 동문 시장을 천천히 걷다보면 살아서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입에 발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멋진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산길(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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