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만화 「삽 한자루 달랑 들고」를 읽고

며칠 전 유경이가 혼자 열심히 만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공부하러 온 애가 만화는 왠 거니?' 하고 핀잔을 줬는데, 그 표지를 보고나니 왠지 눈길이 끌렸다. '삽 한자루 달랑 들고'라는 제목과 부제로 붙어있는 '건달농부의 농사일기1'에서 받은 다정함에 이끌린 것이다.

스스로를 '불량농부'라고 생각하는 기자에게 '건달농부'란 칭호는 마치 오래된 친구의 이름을 대하는 것 같은 친숙한 느낌을 주었다. 건달농부가 삽 한자루 달랑 들고 뭘 어쩌겠다는 말일까? 체면 불구하고 유경이에게 만화를 빌려보기로 했다. 유경이는 시민기자를 꿈꾸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다.

   
가족의 '고향만들기'

만화의 작가 '장진영'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강화도에 귀농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만화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만화는 농사의 'ㄴ'자도 모르는 작자 자신이 가족들과 함께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가 가능포 벌판에 집을 마련하는 내용부터 시작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가족의 고향만들기'라고 했다.

처음에는 농지 700평을 빌려 삽 한자루 들고 농사를 지으려 했는데 잡풀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다. 지나가는 이웃이 그를 측은히 여겨 소를 한 번 키워보라고 했는데, 광우병 파동으로 소값이 폭락하는 것을 보고는 겁을 먹고 소 키우는 일을 포기했다.

쉬운 게 하나도 없는 농촌 현실

다시 다른 이웃의 제안에 따라서 세 명이 동업으로 흑돼지를 키웠다. 그런데 흑돼지가 힘이 너무 세서 우리를 부수고 다니는 바람에 동업에서 포기하고 만다. 나중에 흑돼지 값이 폭락하여 흑돼지 사업을 계속한 이웃들이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을 보면서 축산이 하루 아침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중간에 그만두길 잘 했다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이웃에서 오리를 사육하는 분들이 있었든데 오리값이 폭락하자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서 이웃의 오리를 사주게 되었다. 그때 작가도 이웃의 오리를 사서 오리를 이용한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게 되었다. 오리농법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보려는 젊은 세대들의 노력과, '수확량도 줄고 판로도 마땅치 않은데 쓸데없는 짓들 한다'고 나무라는 어르신들의 견해차에서 우리 농촌에 존재하는 세대간 인식의 차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 삽 하자루 들고 풀을 제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가 자신의 삶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희망과 고통이 공존하는 농촌

작품은 광우병 파동, 돼지 파동 등 농촌에 존해하는 힘든 현실을 전혀 감추지 않고 과장없이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농사를 끝내고 이웃이 한자리에 모여서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나, 마을 서당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모습, 동네 어르신의 장례식에 온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모습 등 농촌에 남아있는 따뜻한 온정 또한 놓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

작품은 삶에 지쳐 절망하는 농부의 아픔과 그래도 노력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희망이 공존하는 오늘의 농촌을 잔잔한 색채로 묘사하고 있다. 결코 녹록치 않지만 매력이 숨어있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삶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불량농부로 살아가는 나와 가족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이 '낭만주의적 귀농'을 꿈꾸는 도시민들에게는 농촌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고, 이농을 꿈꾸는 농민들에게는 농촌이 아직도 살 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농촌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 농촌과 농민들의 땀과 웃음과 눈물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있는 만화를 볼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저자에 반가운 마음을 전한다.

※ 장태욱 시민기자는 제주시내에서 '장선생수학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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