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20~30% 서명 발의 제한…10%로 낮춰야
[기고] "실효성 없으면 차라리 하지 않겠다고 해라"

특별자치, ‘기회’이자 ‘모험’

제주특별자치도 문제가 지난 4일 입법예고로 입법 초읽기에 들어갔다.

도민사회 일각에서는 ‘알맹이 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특별자치도 법안은 실제로는 방대한 양의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 이는 ‘반쪽 지방자치'로 점철된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를 이제야말로 제대로 쓸 수 있는 획기적 전기가 마련되었고, 그 가운데 제주도가 핵심적으로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많은 양의 권한이 한순간에 이양되고 있기 때문에 제주특별자치체제는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회와 모험의 양면을 동시에 갖고있는 제주특별자치체제를 도 당국이 말하듯 제주발전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서 삼기 위해서는 이를 제대로 작동시킬 시스템을 얼마나 효과적이고 실제적으로 설계하고 작동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법 내용을 통해 기본적으로 구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별자치의 전개원리를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강력해진 행정, 취약한 의회, 무력한 주민

그런 의미에서 특별자치도의 성패는 행정-의회-주민의 삼각구도가 얼마나 상호보완과 견제의 원리에 의해서 전개되는가 하는 데 달려있다. 그러나 지금의 법안은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도지사의 권한이 더욱 비대해지는 반면, 지방의회나 주민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그지없다.

지방의회의 경우 자율적 인사권 부여, 전문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포함돼 있지만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설령, 지방의회의 권한이 제대로 구현되었다 할지라도,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돌아가는 현재의 지방정치 구도는 특별자치체제 하에서의 지방의회 또한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제주특별자치도가 시행될 경우 더욱 강력해진 행정부를 견제할 유일한 주체는 또 다시 ‘주민’이다. 여기에 지방의회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또한 여전하기 때문에, 주민은 지방의회에 대한 견제라는 ‘이중적 감시’의 역할 또한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자치도에서 주민들에게 주어진 제도적 견제수단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소위 ‘3대 직접참정제도’라고 할 수 있는 ‘주민발의-주민소환-주민투표’에서 주민발의나 주민투표는 정부차원의 수준과 별반 다를 게 없고, 더구나 주민투표의 경우 최근 행정계층개편 주민투표나 방폐장 주민투표의 사례에서 보여지듯 오히려 국가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유용한 도구로 전락돼 버렸다. 따라서 주민소환제야 말로 주민입장에서 지방정치를 통제하고 행정과 의회를 견제·견인할 가장 강력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주민소환제, 차라리 안하겠다고 해라!

그러나 현재의 특별자치도입법안에서 주민소환제는 그야말로 ‘속빈 강정’이자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중요한 내용은 현재 다른 쟁점에 밀려 공론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정부나 의회입장에서는 이의 공론화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제부터라도 시민사회가 이를 적극 제기하여야 한다.

특별자치도 법안에서 주민소환제는 사실상 무력화 돼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 주민소환을 하려면 유권자들의 서명을 받아 이를 발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 8만명 이상의 유권자 서명을 받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 법안은 주민소환청구 요건을 총유권자의 20~30%의 서명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민소환제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주민소환은 청구가 이뤄지더라도 최종적으로 주민투표에 의해서 소환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를 청구요건에서부터 까다롭게 제한하는 것은 정치권의 입김만을 반영한 결과이다.

강창일 의원 대표발의 주민소환제법률안 수준 반영돼야

한편, 주목할 것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이 별도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제주출신 강창일 의원 대표발의에 의해 이뤄지는 이 법률은 주민소환에 관해 상당히 진일보한 내용으로 구성되고 있다.

우선 이 법률안에서는 주민소환 청구요건을 제주특별자치도보다 훨씬 완화된 8~12%로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어 ‘실효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률안은 소환대상을 개별정치인 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전체’에 대한 해산권까지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민소환제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이 도정 전체에 대한 평가의 성격을 갖는 반면, 개별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은 개별정치인의 문제로만 귀착된다. 이런 점에서 의회해산청구권은 의회전체에 대한 평가를 갖는다는 점에서 ‘자치단체장 불신임권 - 의회해산권’의 견제원리가 주민에 의해 사실상 주민으로부터 구현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주민에 의한 의회해산청구권이 도입돼 있고, 실제로 그 사례가 많이 발생해왔다는 것은 이의 현실적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구나 제주도의 경우, 중요한 쟁점사안이 대두될 때 마다, 도의회는 대체로 의회전체의 사실상의 ‘담합으로 현안 비켜가기’ 모습을 보여 왔으며 이것이 의회가 주로 비난받는 이유가 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의 필요성은 충분한 현실적 근거를 갖는다.

어쨌든 ‘선도적 분권모델’을 창출한다는 특별자치도 법안에서는 행정권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주민통제수단인 주민소환제가 정작 실효성 없는 내용으로 구성된 반면, 제주 국회의원이 주도하는 별도의 주민소환 법률은 이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따라서 특별자치도법상의 주민소환제도 또한 지금 계류 중인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과 동일한 내용과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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