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민심기행] '삼포세대', 30대에게 물었다

공자는 삽십 세를 가리켜 이립(而立)이라 했다. 스스로 뜻을 세우고 설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요즘의 30대를 가리켜 삼포세대라 불렀다. 치열한 입시경쟁를 뚫고 대학교를 졸업했다. 겨우 취직하고 나니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하고 살 수밖에 없단다. 

일자리가 없어도 너무 없는 제주도에서는 더욱 냉혹한 현실이다. 마음 둘 곳 없는 30대들의 속내를 들춰보고자 벤처마루와 시청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 벤처마루에 입주한 한 IT벤처기업에서 30대들을 만났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양 씨(38세)는 IT벤처기업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문대에서 전자를 전공하고 곧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13년 차다. 4년 전 결혼해 외벌이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아이는 3살. 올해까진 어린이집 지원금 나와 부담이 덜 됐지만 내년부터 바뀐다고 해서 걱정이다.

투표 할 거냐는 질문에 뭐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못해도 투표는 해야 한다. 그래야 할 말이 생긴다”고 했지만 누굴 뽑을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하는 일이 IT쪽이다 보니 아무래도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해왔다고 말했다. 안 전 후보의 사퇴에 누굴 뽑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IT정책을 어떻게 내놓냐를 살펴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양 씨는 “먹고 사는 일이 연결 돼 있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기자도 역시 기삿거리가 있어야 일을 하지 않겠냐”고 받아친다. 회사 분위기도 대체로 그런 편이라고 했다.

위층 다른 벤처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77년생 뱀띠 미혼남 김 씨. 군대를 다녀와서야 수능을 치르고 00학번으로 대학을 입학했다. 곧바로 졸업해 IT계열의 회사에 취직했다.

보통 한 프로젝트에 걸리는 기간이 5~6개월. 늦을 땐 11시, 12시에 퇴근하는 일도 다반사다. 결혼은 왜 아직 못 하셨냐고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 “바빠서도 그렇고 겸사겸사…”라고 답했다.

그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아직 여성대통령은 무리라고 본다. 세계에서도 여성 대통령의 예가 흔치 않다. 안 전 후보는 이미 사퇴했지만 무소속이어서 대통령이 돼 봤자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서 커트 당할 게 뻔했다. 해본 사람이 하는 게 제일 낫다”고 말했다.

7시를 넘긴 퇴근 시간. 이번엔 시청 대학가 인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빽빽이 들어선 고깃집마다 학생 반 직장인 반씩 나눠 앉았다. 커피숍엔 하루의 피로를 수다로 푸는 여성들과 노트북을 펼쳐들고 못 끝낸 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들이 섞여 앉았다.  

▲ 박 씨는 "제주에선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계약직 공무원 박(30.남)씨. 그의 말에 따르면 올해 초 얼떨결에 대학원을 가게 돼 2학기 째다. 이날은 수업이 없어 후배들과 밥 먹으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고 있냐고 물으니 “오늘 아침에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대통령 후보 정책 매칭 서비스를 해봤는데 박근혜 후보가 40%, 문재인 후보가 60% 나왔다”고 했다.

직업 특성상 대학생들을 만날 일이 많아 취업의 적나라한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후배들이 그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해올 때마다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다른 건 몰라도 청년 일자리에 대한 정책은 문 후보가 ‘그나마’ 구체적인 것 같다고 설명을 보탰다.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에게 “계약직이라 하셨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냐?”고 물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땅도 있고 정 안 되면 농사라도 지으려고 한다”며 “어머니가 일본에서 가게를 하고 계신데 일본으로 건너갈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교 졸업 전에 취직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잡다한 아르바이트에 방송국 FD도 해보고, 사무직 일도 해보고, 중소기업이 망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심지어 대리 기사도 해봤다. “더 이상 제주에서는 희망이 없는 걸 알았다”고 입맛을 다신다.

마지막 연애는 몇 해 전, 여자친구는 안 사귀기도 하고 못 사귄 것도 있다고 했다. ‘여자친구=돈’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결혼도 아직은 뜻이 없는 듯 했다.  

▲ 결혼이 고민인 그녀는 "결혼한 친구들도 좋아보이지는 않아서 결혼이 망설여진다"고 털어놨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정 (31.여)씨는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들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어서 집세 나갈 일도 없고 햇수가 제법 돼서 돈 모으기는 쉽다고 했다.

결혼은 하셨냐고 물으니 “아직…”이라고 대답한다. “신입 땐 일하느라 바빴고 20대 후반엔 어영부영 때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근무 외엔 자거나 공부하느라 ‘좋은 시절’이 다 가고 말았다.

그때는 남자친구가 없어도 그다지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서른을 넘기니 환자들이나 주변에서 결혼 안 하냐고 다그치는 통에 마음이 급해졌다. “소개팅도 하고 선도 보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어요”라며 마주 앉은 친구 눈치를 슬그머니 본다.

3교대 근무로 들쭉날쭉한 일상. 일이 힘들지는 않냐고 물으니 적응이 돼서 힘든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병원에선 정치 이야긴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뜩이나 바쁜데 그저 웃고 넘길 이야기만 주고받는단다. “정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병원에만 있다 보니 누가 좋은지도 잘 모르고요”라고 말했다. 

투표는 할 거냐고 물으니 “근무표를 봐야 알 거 같네요”라고 대답했다. 여태까지 대선은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거나 일했겠죠”라며 빙긋 웃는다. 마음에 둔 후보가 있냐고 하니 “안 전 후보를 뽑아볼까 했어요. 왠지 믿음이 가기도 하고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모르겠어요. 누굴 뽑아도 찝찝해서…” 말끝을 흐린다.

그녀는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돈 때문에 제대로 치료 못 받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되거든요. 그럴 때는 마음이 미어져요. 때로는 병원 차원에서도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너무 많아서 다 감당이 안 되죠. 돈 없어도 아픈 데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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