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14-② 영화 '지슬'을 보다

‘세방화시대’를 상징하는 두 인물 ‘싸이’와 ‘오멸’

그가 제작한 영화 중 <어이그, 저 귓것>(2009)과 <뽕똘>(2010)은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은 그가 이끄는 ‘예술그룹 자파리’의 이미지들을 닮았다. 실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뽕똘>의 마지막 부분, 극중 주연배우인 김성필이 왜 영화를 만드냐고 극중 감독인 뽕똘에게 묻자 감독은 ‘자파리’라고 대답한다. 어쩌면, 이는 그의 영화 전체를 규정하는 철학적 언사일 수 있다. ‘자파리’, 순 제주말이다.

손장난, 헛된 장난 등의 육지말로 번역될 이 말은, 사실 수많은 실패를 상정한 시도이자, 예술적 실험을 이르는 말이기도 한다. 자파리 없이 예술이 탄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도의 수준을 지닌 장인도 애초에 ‘자파리’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가 극중 영화감독을 통해 던진 이 자파리는 그의 영화 전부를 표현하면서 그의 예술적 태도 전부를 웅변한다. 길게 보면, 인생 자체가 자파리 아닌가? 그 안에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인생은 그 자체가 자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예술 역시 자파리다.

 

   

그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아웃사이더들이다. 그런데, 그의 아웃사이더들은 아웃사이더에서도 아웃사이더인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촌것들이 만드는 촌것들의 아웃사이더성은 도시나 시대의 아웃사이더를 다룬 미디어에서는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모하고 무료한 실패한, 황당무계한 인물들, 그리고 새로운 자파리를 벌이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포기해버린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과 패자부활을 허용치 않는 승자독식사회의 바깥 존재들이다. 그는 사실 무서운 전략가이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보다 긴 듯 보이는 그의 예술을 통한 인생의 전략, 즉 영화라는 장르에서의 아웃사이더, 섬이라는 공간, 지역이라는 지리적 위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성, 저예산에서 고예산으로 가는 영화제작 내부 환경의 여건들, 자파리독립영화에서 작품예술영화 또는 본격 극영화감독으로의 긴 여정 말이다.

‘글로칼리제이션 에이지(Glocalization Age)’. 우리 시대를 표현하는 영어로 된 신조어다. 육지말로 세방화라 번역되는 이 단어는 일면 모순적이다. 세계화와 지역(방)화가 동시적인, 피카소의 입체파작품 같은 이 신조어는 그 자체가 패러독스다.

 

▲ 묘한 교차감과 등치감. 영화 <뽕똘>의 ‘감독 주인공’과 쌈마이폼의 스타일 ‘싸이’.

최근 세계를 휩쓰는 ‘싸이 열풍’은 바로 전지구적 인터넷인프라가 만들어낸 이 세방화의 열풍이자 그 최초의 세계성을 띤 성과이디도 하다. 특히 원더걸스로 상징되는 미국시장 진출 시도 작업이 크게 효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주류문화의 변방인 아시아의 대한민국에서 발신된 ‘유튜브’에서 터질 줄이야. 한때 한국가수가 일본에 진출하면,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어로 불러야 했다. 그리고 미국에 진출하려면 미국식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에이전시를 만나야 가능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경로로, 소위 인터넷시대를 맞아서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런데, 그 콘텐츠가 강남스타일을 촌놈스타일로 대치한 역설법이다. 쌈마이스타일로 바꾼 싸이스타일로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약간은 양아치스타일인 싸이스타일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양놈들의 입에서도 ‘갱남스타일’이라는, 또박또박하지만 전혀 다른 어감의 글로벌스타일로 재편되면서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

필자는 오멸 감독을 보면서 또 그의 작품들 중 촌놈스타일의 작품들을 보면서 왠지 싸이가 떠오른다. 싸이 역시 대단한 투자를 이끌어 내어 블록버스터급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닌데, 전 세계를 강타할 줄 생각도 못했겠지만, 그게 통한 것이다. 오멸 감독의 작품이 그와 등치시켜 비교될 것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주류 영화계의 메이저 영화사들과 개봉관을 꿰차고 있는 대자본은 신예감독이나 독립영화계에 큰 도움이 못 되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김기덕 혼자 그 외로운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하지만, 그의 쌈마이 같은 물 건넌 마을의 촌놈의 감수성과 테마들은 그를 뭍에서 성공해서 귀환하는 제주 출신의 인물이 아니라, 영화의 변방이자 문화의 불모지인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종으로서의 존재감을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동병상련을 느낀다는 것이다. 필자는 소위 ‘동네심방 안 알아준다’는 촌동네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지내오면서, 제주 출신이 아니라 제주도의 예술가가 세계에 통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강요배도 현기영도 기실 ‘제주 출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제주 출신이 아닌 제주도 예술가들이 세계에 통하는 사례들이 늘어날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대열에서 첫 단추를 열어젖힌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 오멸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뽕똘>의 GV에서 그를 만난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그를 “경쾌한 외피를 두른 영화의 인상과 달리 진중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창조시대를 준비하지 못하는 제주도정과 지역인프라

영화 ‘지슬’의 부산국제영화제 개봉 이후, 이제 제주도의 시스템을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 이 영화의 상영문제를 계기로 문제화되고 있다. 고 김경률 감독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4·3의 제사이기도 한 영화이기에, 이 영화만큼은 제주에서 개봉하고 싶어 하는 오멸 감독의 바람과 달리, 제주 첫 개봉의 꿈이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이기에 대형 극장에서의 개봉은 홍보비 등의 문제로 엄두도 못 낸다. 그의 영화 <어이그 저 귓것>은 제주에서 상영되긴 했지만, <제주 CGV>에서 오전 8시 30분에 상영됐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본격 상영관에서 개봉한다는 의미야 찾았지만, 독립영화를 그것도 아침 첫 시간대에 내건다는 것은 ‘극장 비는 시간에 놀리느니 돌리라는 심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리라. 어쨌든 그 슬픈 개봉을 했던 감독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시간대에 좋은 상영관을 확보한다는 일은 얼마나 절실한 문제일까?

현재 제주에도 영상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고, 그 산하에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가 있다. 한 때 코리아극장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극장으로, 상영관으로서는 아직은 물좋은 칠성통 금강제화 골목에 연해 있어 매주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새로 문을 열며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안락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좌석도 잘 구비되어 있다. 1관은 무료영화상영관으로, 2관은 대관공연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관에는 대부분 철 지난 영화들을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인터넷 다운로드서비스로 감상이 가능한 영화들이다. 이곳에서 트는 영화들 역시 대부분 디지털파일로 트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 센터는 하드웨어는 잘 갖춰진 반면 소프트웨어는 부실하기 그지없다. 최근 영화는 디지털로 촬영하는 고화질 시스템이다. 디지털 영화는 디지털 상영용 영화 파일인 DCP(Digital Cinema Package)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센터에는 DCP를 구동할 프로그램이 없다고 한다. 그저 DVD나 일반 디지털파일 수준의 영화만 틀 수 있는 것이다. 그 좋은 상영환경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이곳의 현재 시스템으로는 제대로 된 질 좋은 본격적인 영화를 볼 수 없다. 이번 ‘지슬’의 후원회원을 위한 시사회에도 서울에서 시스템을 공수해 와 겨우 상영했는데, 그것도 A급은 아니었다.

그동안 영상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여러 가지 지적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또 하나가 추가되는 시점이다. 영상위원회의 위원장은 도지사다. 도지사가 위원장이고 부위원장이 일상적인 집행업무를 위임받아 총괄하고 있는데, 도지사가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비싼 임대료 주고 리모델링해서 운영하는 센터인데, 그저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접근 가능한 영화를 꼭 이 장소에서 틀어야만 하는가? 

제주도에도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전용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이들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는 영화배급구조와 상영관 문제 등으로 쉽게 영화를 틀 수 없다.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영화들이기 때문에 상영관 개봉이 힘든 것이다. 설사 영화를 겨우 내건다고 해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도둑들>처럼 국내 대자본이 투자된 영화들의 상영 일정이 잡히면 그 즉시 내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김기덕이 화를 내는 지점이다.

다른 지역도 열악한 상황은 마찬가지지만, 서울에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전용관이 그나마 몇 군데 있어, 시민들이 자본의 논리를 벗어난 예술&독립영화를 향유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예술성 있고 문제의식 있는 새로운 실험성 있는 독립영화들을 ‘영화’로서 제대로 접할 기회가 완전히 봉쇄당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영화&독립영화전용관으로 현재의 무료영화관을 개편해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또한 이는 제주도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멸 감독과 같은 전국의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는 꿈같은 현실이 제주에도 열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멸 감독은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지역 영화 개봉시스템을 지적하면서 “현재 지역에는 개봉할 수 있는 극장도 없고 개봉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건 영화문화예술센터인데 매표 시스템이 없다. 센터에서는 한 편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다고 하더라. 가능성이 있는 영화가 나왔으니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어떨까 한다.”라고 제안했다. 못 들어줄 이유가 없는 이야기다.

제주도의 예산규모에서 이 정도 시스템은 연말 추경을 이용해서라도 당장 가능한 일이다. 또한 개표시스템 역시 운영규정 변경을 통해, 매표 가능한 제도를 만들면 된다. 오멸 감독도 그렇지만, 향후 제2, 제3의 오멸들을 위해, 이번 기회에 당장 시작할 필요가 있다. 모든 법과 제도는 그 시대의 필요성에 의해서 바뀌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지역의 독립영화관들은 12개소, 부산 2개관, 인천․대구․대전․전주․광주․거제․안동 등에는 1개관이 운영 중이다. 전용관 이외에도 CGV, 롯데시네마, 프리머스시네마, 씨너스와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도 부분적으로 소형관을 예술영화관으로 운영 중이다. 제주에서는 2003년에서 2005년까지 프리머스 제주에서 전용관으로 운영했으나, 2006년부터는 전용관이 도내에 전무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본격적인 DCP 영화 상영을 위한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유료 개봉이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항구적으로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가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전용관으로 완전하게 면모를 일신해, 흘러간 영화나 무료로 관람하는 곳이라는 오명을 벗고, 제대로 된 제주지역 문화향유의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거머쥔 가능성의 감독 오멸.(양정원의 블로그 사진)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이제 낡았다. 이미 <창조산업의 시대>라고 한다. 창조적인 일들이 돈을 굴리고 경제를 살리고 선진국을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산업의 꽃인 영화는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중요한 창조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제주처럼 역사의 변방, 문화의 변방으로 남은 곳(현재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찍은 영화가 제주섬을 넘어서서 세계로 가고 있다. 일개인의 성취로만 본다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이 섬이 문화예술 쪽에서 지녀온 숙명적인 물마루 같은 문화콤플렉스를 넘어서는 문화적 사건으로 본다면, 이번 그의 영화이력은 제주문화사의 새로운 연대기를 쓰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이 섬사람들이 제발 그의 영화와 그가 지닌 이런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읽어주고 힘이 되어줄 때가 되었다. 동네심방에게 투자할 필요가 있다. 제발 고만고만하게 찔끔 지원하지 말고 제대로 밀어주고 환경을 조성해주면, 앞에 언급한 것처럼 제2, 제3의 오멸이 나올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그의 글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조건에서 겨우 영화를 만들어왔던 그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되자 굉장한 역작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그의 작가적 역량을 높이 샀으며, “이것은 영화적 기적이다. 카메라로 해낼 수 있는 최상의 씻김굿이며 눈물과 피로 쓴 위령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지식인의 형식주의가 아니라 세속적 일상의 공기를 끌어안으면서 해낸 것이 오멸 감독의 재능이다. <지슬>은 올해 나온 최고의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며 앞으로도 퇴색하지 않을 불멸의 기세로 가득하다.”고 그의 예술적 성취를 평가했다. 봐라, 최소한의 조건에서 얻은 성과에 대한 평이다. 보다 충실한 조건에서라면 어떤 성과가 나올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그 누구도 진중하게 주목하지 않았던 곳에서 찬란한 비상을 꿈꾸는 그에게 이제 제주도가 나서서 힘을 실어줄 때다.

문득 예전에 그가 이끌던 자파리의 전신(?)인 ‘테러 J’의 선언문을 발견했다. 음미해볼 만해 옮겨본다.

아름다운 섬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영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문화가 필요합니다.
                   - Terror J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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