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호 칼럼>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을 일단 멈추자

약 450여 년 전, 明宗 10년(1555년)의 을묘왜변(乙卯倭變)을 알고 계시리라. 한국사에서는 대규모의 왜구가 전남의 영암, 강진, 진도 등지를 침략했던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이때 제주에도 이 왜구들이 침입하여 많은 피해가 있었던 사건이다.

기록에 의하면, 왜구 1000여명이 화북포구로 상륙하여 제주성 동쪽 언덕(ᄀᆞ으니ᄆᆞ루)에 포진하여 3일간 공방하던 중에, 결국 70명의 특공대 등에 의해 퇴각시킨 ‘제주대첩(濟州大捷)’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이 을묘왜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성의 방어능력을 새삼 고려하여, 10년 후인 1565년에 東城부분을 산지천 넘어 동쪽언덕 중간까지 증축하고 옹성(甕城)형태의 東門을 설치한다.

여기서, 눈을 감고 초가지붕만이 빼곡하던 당시의 제주성을 상상해 보자.
지금의 동초등학교 지경에서 제주성을 바라보면 성안이 훤히 내려다보였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방어를 위한다는 성곽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을묘왜변 당시에는 제주성곽의 동쪽 경계는 산지천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산지천을 천연의 해자(垓字)로 삼아, 산지천의 서안에 성을 쌓았던 것 같다.

1780년 당시 목사 김영수가 ‘옛 성터를 따라 간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현재 산지천 서안을 따라 확인되는 間城의 자취가 조선시대 제주읍성의 최초의 성곽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간성의 위치는 지적도 상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산지천을 건너는 “光齊橋”다리와 칠성로를 출입하는 “受福門(후에 重仁門으로 개칭)”의 위치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일제강점기 이전(북신작로 개설 이전)의 산지천 하류 상황(필자의 복원)※ 적색 띠 : 間城※ 청색 이중원 : 重仁門 터

이렇듯, 조금만 상세하게 관찰하면 산지천 주변에는 제주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보하는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시의 여전한 중심지역인 제주읍성은 산지천과 병문천 사이에 자리 잡았다가 성안사람들의 생활용수를 해결하기 위해 성곽을 확장하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제주성의 모습이 되었다. 다시 말해, 산지천을 성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산짓물과 가락쿳물 등 생활용수를 보다 편리하게 얻게 된 것이다. 산지천은 제주읍성의 젖줄로서 처음에는 해자와 같은 방어수단의 물줄기로서, 나중에는 성안사람들의 생활용수로서, 제주읍성이라는 도시의 형성에 필수불가결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또한, 東門에서 성안으로 연결하는 주요도로는 목관아로 연결되는 북쪽도로인 ‘칠성로’가 있고, 제주판관이 근무하던 ‘貳衙’와 연결되는 남쪽도로인 ‘이아로’가 있다. 이 주요도로가 산지천과 만나는 위치에 ‘산짓물’과 ‘가락쿳물’이 있고, 간성(원래의 동쪽 성곽)의 북쪽문인 ‘수복문’이 있고, 남쪽문인 ‘소민문’이 있었으며, 또 산지천을 건너는 ‘광제교’와 ‘가락교가 각각 있었다. 또 동문에서 칠성로로 이르는 도로 주변에는 바다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정자들(공진정, 쾌승정, 영은정)이 있고, 삼천서당, 북수구 등 도시공간을 형성하는 중요시설이 분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내용은 1996년 발간된 “濟州市의 옛터”에 실린 ‘제주읍성 내 옛터’ 도면을 보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옛터’를 까만 점으로 표시하고 있다. 지금의 목관아 주변에 많은 옛터들이 밀집하여 분포하는 한편, 산지천의 하류(적색 타원 안)에도 많은 수가 밀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산지천 하류지역(적색 타원 안)은 탐라문화광장의 대상구역이다. 탐라문화광장이 조성된다면 이 많은 문화유산의 옛터들은 어찌 될 것인가?

이 문화유산들의 역사성이나 가치에 대한 고려와 검토를 충분히 하여 광장조성계획이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들 옛터에 정확하고 신중한 검토와 점검 없이 깔아뭉개고 새로운 구조물이나 시설을 설치한다면, 그것은 곧 제주성의 역사성을 깔아뭉개는 행위와 다름없다. 2000년 古都인 제주성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깔아뭉개는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이라면 당장 멈추어야 한다. 제주성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것인가?

또한,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도심 활성화를 위한다면 지금의 도시정책과 도시패러다임의 면에서 훨씬 근원적인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제주에 상륙해서 평균 8시간 정도를 머무는 크루즈선 관광객들이 과연 이 광장을 방문하고 이곳의 카페와 음식점을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수요조사도 필요할 것이다.

▲ 양상호 제주국제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이렇듯,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은 탐라시대 이후의 옛터들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탐라(제주)와 전혀 무관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역사적인 검토나 연구도 없고 다양한 의견수렴도 없이 섣부른 디자인으로 호도하려는 듯하여 문화적이지도 않으며, 도시공간의 맥락과 관계없이 생뚱맞은 기능과 공간을 강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도시광장으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섣부른 조성계획을 바탕으로 실시될 토지매입은 중지해야 하며, 조성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점검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일단 훼손된 문화유산의 복구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양상호 제주국제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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