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26) 동문시장 채소가게의 희망 파는 할망 / 정신지

 

▲ 이렇게라도 나와서 장사를 하니 세상도 보고 돈도 버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방에서 병치레나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할망은 말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해 질 무렵 부슬부슬 비까지 내린다. 춥고 어두운 바깥세상과는 달리, 시장 안은 저녁거리를 마련하러 온 사람들과 일과를 정리하는 상인들로 제법 북적인다. 날씨가 어떻고 계절이 어찌 되었건, 밥 세끼가 걱정인 사람들은 어김없이 시장에 모인다. 물건을 팔아 밥을 먹는 사람들과 물건을 사서 밥을 지어 먹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곳, 그곳에 장이 선다. 

 “나는 이름도 엇고(없고) 성도 엇따(없다). 그냥 이디 고만히 아장(여기 가만히 앉아서) 노물 포는 소름이주(채소 파는 사람이지).” 동문시장(제주의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재래시장) 한편에서 20년간 채소장사를 하고 계신 할망의 말씀이다. 정정한 모습에 장사도 야무지게 하시는 그녀에게 연세를 여쭈니 올해 일흔일곱. 하지만 놀라지 마라신다. 건너편에서 채소를 파는 할망은 아흔, 또 그 옆에 앉은 할망은 나이가 여든다섯이라니, 그녀는 아직 젊은(?) 현역이다.

할망은 모슬포에서 태어나 열여덟이 되던 해에 홀몸으로 제주시로 건너왔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지만, 그녀의 집은 유독 가난했다. 집이 해변에서 먼 곳에 있는지라 물질을 배우지도 못했고, 남의 밭을 소작하고, 남의 집에 얹혀살던 찢어지게 가난한 집.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한평생 ‘가난’이 얄밉기만 하다. 지긋지긋한4.3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또 나라에 전쟁이 터지고, 마음 둘 곳 없이 겁에 질려 살아온 그녀의 어린 시절이지만,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공허함 속에서 그녀의 젊음은 씩씩하게 꽃을 피웠다. 제주시에서 맞이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때 잘도 재미나서(너무 재미있었어). 촌에만 살당(살다가) 시에 오난게(오니까). 나는 빵 공장에서 한 몇 년 일했주(일했지). 서문통에 ‘서울빵집’이라고, 서울서 온 소름(사람)이 공장을 차령이네(차려서) 당시에 빵집은 거(그거) 하나라서(하나였어). 일은 많이 했주만(했지만), 고될 것은 베랑(별로) 어서났주(없었지). 빵공장에서 숙식허멍, 혼 열 소름 고치 일해나서(한 열사람 같이 일했었어). 제주시가 고향인 아이덜(아이들)도 있어났주만(있었지만), 여기 아이덜도 집이(집에) 안 가고 공장에서 자나서(잤었어). 친구들 많이 이시난(있으니까) 웃으멍(웃으면서) 재미진(재미있는) 이야기들 허멍(하면서). 혼 삼사 년(한 삼사 년) 일해났주.”

 

▲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할망은 장에 나온다. 날씨가 추워도 겨울이 좋다는 그녀는 작은 난로 하나에 몸을 녹이며 오늘도 장사를 하신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양파를 깎아 비닐봉지에 넣어 파시는 할망. 요즘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좋아해서 이렇게 깎아 두어야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그런데 할망의 행복했던 청춘의 기억은 해피앤딩이 아니었다.
“옛날 돈으로 내가 110만원을 모아나서(모았었어). 삼사 년 지름땀(기름땀) 흘령(흘려서) 번 돈. 겐디(그런데), 다노모시(지금의 ‘계’) 들렌 행 드난(들라고 해서 드니까), 혼 지집년이(한 여자가) 나 돈을 들러강 몬딱 설러분거라(내 돈을 전부 가지고 도망간 거야). 오늘이난 고람지(지금이니까 말하지), 나 성질에 이런 말은 잘 내치치도 안 헌다(잘 내뱉지도 않는다). 죽도록 벌어뒁이네(벌어두고) 놈 먹인 생각허민(남에게 줘버린 생각하면), 처음엔 잘도(너무) 가슴 아팠주게. 그때는 진짜 큰돈이라. 그 돈으로 밭도 사고 시집도 가젠 해신디(가려고 했는데). 그거 촞으레 돌아댕기멍(찾으러 돌아다니며) 차비만 들곡. 그 지집년(그 여자) 얼마 전까지도 둥그려댕겸서만은(돌아다니더니만). 허이고, 그거 베려가민(보고 있으면) 누게(누군가의) 말마따나 참 무시거로(무언가로) 쏴불고(쏴버리고) 싶은 심정이주만…. 빌빌 놀멍(아무것도 않고 놀면서) 공짜로 살젠허민(살려고 하면) 그추룩이라도 해사 밥을 먹었주, 가이도(그렇게라도 해야 밥을 먹지, 그 사람도). 허이고….”

그렇게 단신으로 제주시에 건너와 악착같이 모은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그녀는 모슬포 고향으로 돌아갔다. 돈이 없어진 통에 어떻게 시집을 가느냐고 모두가 걱정했지만, 중매로 만난 청년과 스물둘에 결혼을 한다. 큰아들이 네 살 되던 해에 그들 부부는 다시 제주시로 거처를 옮겨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았다. 하르방은 68세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몸이 아파서 갈 곳으로 떠난거라 말씀하시는 그녀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생전에 사이가 참 좋았다던 하르방을 떠올리며 그녀가 잠시 침묵한다. 그러고 있는데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삼춘~’, 하고 부르며 사람들은 다가와 그녀의 야채들을 골라간다. 빠른 손놀림에 계산도 척척, 인심 좋게 많이도 얹어주신다. 그러다가 장사 망하겠다고 그녀에게 핀잔을 주자, 할망이 웃으며 장사는 이미 망한 지 오래됐다 하신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자신은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오셨다는 말을 반복하며 그녀는 몇 번이고 고개를 떨구었다. 벌어도 벌어도 돈은 날개가 달려 도망이나 가듯 그녀 곁을 떠나갔다. 집세를 내고 자식들을 교육시키느라 바빴고, 잠을 잘 새도 없이 그녀와 하르방은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새벽부터 몸을 움직였다. 용역이란 용역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란다. 무슨 일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할망은, “고랑(말해서) 뭐 할 거? 고르민 알아지크냐(말한들 알 수 있겠느냐)?”며 짜증을 내신다. 해보지도 않은 것을 알아서 무엇하냐며, ‘알 필요도, 할 필요도 없는 모진 일들’이라고 말을 맺는다.

 

▲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물건의 가격을 암산하시는 할머니. 하지만 할망 자신은 요즘 머리가 점점 나빠져서 계산 실수를 할 때가 많은 것이 불만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이것저것 얹어주는 것이 일인 할망. 그러다 망하겠다고 하니 이미 장사는 망한 지 오래라 하신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할망의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새벽 6시까지는 장에 와야 하기에, 늘 아침은 분주하다. 이른 새벽 도매상에 가서 물건을 하고, 야채를 진열하고 팔고 처리하는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한다. 팔다리,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는 할망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빠듯하다. 물론 자식들이 용돈을 주기도 하지만, 그 돈으로는 병원에 가고 약을 산다. 특별한 용무가 있는 날이 아니면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장에 나온다. 공기가 제법 쌀쌀하고 바람도 부는데도 그녀는 겨울이 좋다고 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야채가 썩지 않아 손해가 덜하기 때문이다.

“살암시민(살다 보면) 좋은 일도 싯고(있고), 나쁜 일도 싯고 허는 거주게(하는 거지). 너무나 힘들게 살아서(살았어). 힘든 건 다 돈이주만(돈이지만). 그래도 일이 이시난(있으니) 매날(매일)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보고. 경 안해시민(그렇지 않았으면) 집에 박아졍 아팡(박혀 지녀며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자(그저), 이것저것 하당 보민(하다보면) 좋든 싫든 세월이 가는 거라.”그녀가 말했다.

대형마트가 생기고 인터넷쇼핑이 보편화되면서 재래시장은 점점 활기를 잃어간다. 하지만 노장은 죽지 않았다.  70세가 되고 90세가 되어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물건을 파는 할망 하르방이 그곳에 계시는 한, 우리가 아는 시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건을 더 빨리 더 많이 살 수 있는 편리함을 향해 우리의 소비성향은 나날이 변하지만, ‘시민(市民)’의 ‘장(場)’이기에 시장이 아니던가. 이야기가 있고 만남이 있고, ‘싸게 달라, 많이 달라’ ‘본전도 안 남는다, 야박하다’, 등의 소통과 접촉이 있는 시장.

가난을 원수로 살아오신 채소가게 할망에게는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다고 하지만, 그런 할망과의 만남이 나에게는 희망이다. 콩나물 한 봉지 사니 양파 하나 얹어 주시던 할망의 주름진 손길, 커다란 팽나무 그늘 같은 그 손길 밑에서 우리는 자랐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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