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15 올레길 조례, 올레꾼들이 주체가 되어야

 

▲ 걷는 일이 축제가 되고, 사람들이 흐르는 멋들어진 길이 되었다. 콘크리트 아스콘 포장도로 없이도 사람들이 길을 가게 만들어 준 제주올레. 신기한 길이다. 처음에 제주사람들은 갸우뚱했다. 방향표만 걸어놓아도 사람들이 걸을까 하고 말이다. 근데, 올레개장 5년 만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제주도의회는 지난달 26일 ‘제주특별자치도 올레 등 관리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런데, 이 조례에 대해 올레꾼들과 도민들의 염려가 크다. 특히, 사단법인 제주올레재단은 민간 스스로 길을 만들며 지켜온 제주올레의 철학과 올레길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고 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례는 법테두리 내에서 올레를 보호하고 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모양인데, 정작 그 수혜의 일차적인 대상이 되어야 할 올레재단과 올레꾼들이 크게 염려하며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례안의 내용을 보면, 이들이 크게 반발할 이유가 충분한 것 같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2조(정의) “올레길 등”이란 제주올레, 한라산둘레길, 종교 순례길 등 제주의 자연과 생태, 문화 등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코스로 개설된 자연생태적인 길을 말한다.

제5조(종합관리계획의 수립) ① 도지사는 올레길 등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하기 위하여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자치도”라 한다.) 올레길 등 종합관리계획(이하 “종합계획”이라 한다)을 3년마다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② 제1항의 종합계획에는 다음의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올레길 등 관리 운영 기본방향 2.올레길 등 이용자의 안전대책 3. 올레길 등의 환경보전 및 정비 방안 4. 올레길 등 활용방안 5. 올레길 등 지역주민 이용 및 소득연계 방안 6. 그 밖에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제7조(위원회 설치) ① 올레길 등의 효율적 관리 운영 및 정책에 대하여 심의 및 자문을 위하여 도지사 소속으로 제주자치도 올레길 등 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제9조(관리체계 및 부서) ① 올레길 등의 총괄관리는 도 청정환경국으로 하되, 편의시설 및 코스별 관리에 따른 행정지원 업무는 행정시(제주시 자치행정국, 서귀포시 지역경제국)와 행정시 관할 읍․면․동에서 추진한다. 다만, 청정환경국에서는 올레길 등의 원활한 관리와 지역발전을 위하여 올레길 등과 연계되는 관련부서장으로 하여금 행정지원 T/F팀을 구성할 수 있다. 행정지원 T/F팀에 참여하는 부서장은 소관업무와 연계한 올레길 등의 행정지원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제11조(위탁) 도지사는 올레길 등의 효율적인 관리 운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길 관리, 환경정비 등을 「제주특별자치도 민간위탁 조례」에 따라 비영리법인 또는 민간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

이 조항들 이외에는 전반적으로 올레의 안전문제에 관한 것들로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면 앞의 조항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제2조(정의)의 경우, 제주올레의 특성을 일반적인 트레일로드와 같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는 규정이다. 오히려 올레의 특성을 희석시켜버리는 것이다. 한라산둘레길, 종교 순례길 등은 다 그 나름의 취지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제주올레는 태생부터 다르다. 그러므로 조례를 통해 올레길과 다른 길들을 일반화시켜버려서 그런 원칙 속에 다룬다면, 제주올레만의 특성이 간과되기 쉽다. 더욱이 그 관리가 행정으로 이루어진다면, 천편일률적으로 흐를 확률이 높다.

제5조(종합관리계획의 수립)의 경우는 종합관리계획을 3년마다 수립 시행하고 있으며, 2항에서는 올레길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 결국 이 조례에 의하면, 올레는 제주도가 소유 관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올레길 등 활용방안” 조항은 아예 올레길을 도가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제7조(위원회 설치)의 경우, 도지사 소속으로 제주자치도 올레길 등 관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올레길을 개척하고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올레재단 이외에 다른 주체들의 참여를 허용함으로써 더욱 큰 문제를 남길 소지가 있다.

그동안 제주도에서 설치한 위원회 위원들의 수준과 활동상을 보면, 올레재단을 능가하는 철학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뜬금없이 도지사와 가까운 선거공신들이 위세용으로 참여하기도 하는 게 제주도 산하의 위원회들이며, 지금도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한둘인가?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제9조(관리체계 및 부서)의 경우,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 행정에 또 다른 일거리를 던져주는 꼴이 되고 만다. 도의 실국과 행정시의 읍면동까지 동원된다면 행정력 부담이 큰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특히, 민간의 거버넌스를 더욱 확장시켜나가야 하는 세계적 추세에서 볼 때, 오히려 퇴행적인 ‘행정독식주의’를 낳을 뿐이다.

제11조(위탁)의 경우, 도지사가 마음만 먹으면, 혹은 「제주특별자치도 민간위탁 조례」에 부합되기만 하면, 올레관리 운영을 어느 단체에든 위탁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되는 꼴이 된다. 이는 아무도 창안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았을 때, 최초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길을 개척해 완성한 올레 주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상 짚어 본 문제들은 이 조례가 제정되고 나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자칫 제주도가 운영하는 공적인 구조로 옮겨가면서 올레길 본래의 취지와 정체성, 사업 특성이 증발할 여지가 크다. 특히 그동안 행정 중심으로 접근했을 때 문화는 증발하고 절차와 기계적 관리행위만 남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도의회의 입법예고안은 “품격 있는 걷기 길을 만들어 생태관광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이용자에 대해 수준 높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제주올레길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기 위함”이라고 제정 취지를 밝혔는데, 오히려 이 조례가 현재 누리고 있는 올레길의 명성과 수준을 떨어뜨릴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올레길 만들기는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대자본이 투자되어 이루어진 사업이 아니다. 그야말로 민간의 상상력과 노력에 의해 스스로 발굴하고 성장시킨 제주의 가치로서 제주관광의 뉴 컨텐츠로서 자리 잡게 했으며, 뉴 모델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 온 섬을 빙 돌아 속도의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해준 제주도의 해안도로. 유럽에서 해안도로를 걷어내 원래의 조간대를 복원하는 사업을 벌이는 동안, 우리는 NGO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길을 깔았다.(사진: 다음 블로그 씨제주).

온 섬을 빙 돌아 천혜의 해안조간대를 절단 내고 파헤치면서 콘크리트 해안도로를 깔아 온 경관파괴의 주범이 그동안의 행정이었다. 낚싯배 몇 없는 포구에 콘크리트 더미를 쌓아 경관을 망친 것도 행정이었다. 홍수방지 하천정비 한다고 용암건천의 바닥을 도로처럼 만들어버린 것도 행정이었다.

그런데 올레는 그렇게 깔아버린 콘크리트 길을 에둘러 피하면서도 남아 있는 흙길, 소로를 찾아, 천혜의 제주자연의 속살을 곱게 드러낼 수 있는 올레길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그 길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엄청난 환경파괴를 동반한 대규모 관광개발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자연친화형 관광이 가능함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다.

제주관광개발의 연대기에서 관광의 질적 변화를 나누는 분기점은 제주올레의 대역사(役事)가 될 것이다. 즉, 제주관광의 시대 구분은 올레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창발성은 행정관료집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그야말로 민의 힘을 보여준 쾌거였기도 하다.

자칫 중소기업 특허기술 빼가는 대기업 소리 들을 수도

그런데, 이 조례가 그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장한 올레길의 순항에, 이제 겨우 섬 전체 둘레를 온전히 두른 코스 개발을 마친 ‘올레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담고 있다면, 이는 조례를 제정하려는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례를 발의한 김승하(새누리당) 의원은 “올레길 살인사건 때도 관리·감독 주체가 없어 대처에 애를 먹었다.”며 올레길에서 범죄나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조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5조(종합관리계획의 수립) 6개 항 중 이 취지에 부합되는 것은 “2. 올레길 등 이용자의 안전대책”뿐이다. 나머지 “올레길 등 관리 운영 기본방향 / 올레길 등의 환경보전 및 정비 방안 / 올레길 등 활용방안 / 올레길 등 지역주민 이용 및 소득연계 방안 / 그 밖에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은 안전한 올레길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따라서 이 조례는 올레길에 관한 전권을 보장하게 되므로 이는 올레길 보호의 취지를 넘어서서 자칫 올레길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올레꾼들이 지적하듯이 올레길은 제주올레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기업 후원으로 만든 것인데, 이를 행정이 맡게 되면 허가·보상 등의 절차가 필요하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올레길 부근의 지가 상승도 초래할 수 있다. 자칫 자연친화적인 올레길을 개발이익의 게임이 악순환되는 개발길로 변질시킬 소지도 크다.

새로운 시대다. 올레가 관광에 대한 새로운 시도에서 시작된 것처럼, 올레를 더욱 지속 가능하게 하고, 더욱 육성하기 위해서는 올레의 본질과 특성을 잘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조례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법이란 없어서 좋은 것이며, 만들더라도 그 법의 선한 의도를 헤쳐 악용될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조례안대로라면, 올레꾼들이 우려하듯이 제정의도와는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 올레재단에서는 올해도 걷는 축제를 개최해, 단순히 걷는 일만으로도 삶의 재미와 행복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길 걷기 축제에 참여하게 해서 제주를 알리는 알리미 역할도 충분히 하고 있다.

올레는 그동안 올레코스의 불미스런 사고로 인해 위기가 닥친 적도 있지만, 여전히 자연 속에 인간의 자유로운 걷기 문화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트레일코스로서의 명성을 지속하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처럼, 불미한 사건으로 인해 올레문화 전체를 경직되게 만들거나, 민간에서 만들어 낸 올레길의 자유로움과 올레문화의 생동감을 관치(官治)로 옮겨가는 것은 올레길의 생명력을 죽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한 이런 기회를 이용해, 민간에서 시작하고 공들인 사업을 관이 무임승차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올레길의 안전보장과 예산지원 근거가 정말 문제라면, 그러한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례를 만들면 될 것이다. “올레길 한 바퀴 완성 이틀 만에 이런 조례가 나왔다는 게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올레꾼들의 볼멘소리와 우려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이 조례가 올레가 처한 현실에 더욱 부합되어야 하고, 올레꾼들의 주체성과 올레길의 철학과 의미가 올곧게 보장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자칫 중소기업들이 어렵게 발명한 특허기술을 대기업들이 공동사업을 하자고 하면서 결국 특허기술까지 빼가는 것처럼, 애써 공들여 민간에서 시작한 올레길을 공공이란 이름으로 빼앗는 것 같이 보인다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올레 거버넌스

민간에서 시작해 잘되는 일은 민간에서 더 잘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행정의 할 일이고, 도의회가 할 일이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세계적 추세다. 거버넌스는 행정력의 부담을 줄이면서 행정이 갖고 있지 못한 다양한 사회적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발달하는 협치(協治)이다. 민주국가일수록 관과 민이 공동의 노력을 통해 제도를 함께 운영해나가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는 영역이다.

여기에 더해 ‘로컬 거버넌스(Local Governance)’는 지방정부와 지역기업, 학계, 비정부기구(NGO), 언론 등 지역사회 구성인자 간 협력적 네트워크 구축을 의미하는데, 지방정치나 행정을 지방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운영하는 방식과는 상당한 차별성을 갖는다. 이러한 로컬 거버넌스는 이미 올레재단에서 실행하고 있는 모델이다. 각 마을들이 스스로 올레코스가 자신의 마을로 지나가길 바라며 유치하려고 하고 있고, ‘제주올레 친구기업망’을 구축하여 전국의 기업들의 참여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도하고 있으며, 아직은 미미하지만, ‘간세인형’ 등 올레 문화상품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주민소득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미 올레를 매개로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방정부인 행정이 필요예산과 안전대책에 대한 지원을 받쳐주는 역할만 해도 올레는 새로운 로컬 거버넌스의 모델로 정착될 것이다.

하지만, 입법 예고된 조례안에는 이러한 현재의 자생적 거버넌스시스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도의회에서 만들어질 조례는 이 거버넌스의 관계망을 강화하고 육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으면서 방문객들의 안전은 철저하게 강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2007년 9월 성산읍 시흥초등학교~성산읍 광치기 해변까지 제주올레 1코스를 개장한 지 5년 만인 지난 8월 24일 구좌읍 하도리~성산읍 시흥초등학교 구간의 제주올레길의 마지막 코스인 21코스를 개장함으로써 제주올레길이 온전히 완성되었다.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은 21코스 기념행사인 ‘제주올레 이어 걷기’ 행사와 관련, “제주올레는 지역민과 자원봉사자, 올레꾼, 친구기업 등 이 길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열정과 힘을 보태며 오늘까지 왔기 때문에 제주 해안을 잇는 정규 코스 완성의 기쁨을 그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제주올레 이어 걷기 행사’를 마련했다.”면서 “이 행사를 통해 모두 함께 이어가는 제주올레 길의 정신을 다시 한 번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제주올레 마지막 코스인 21코스 개장식 날 행사장의 현수막.

제주올레 길의 정신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쾌히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늘 새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이미 정립되었다. 민간에서 주도해 나라와 세계를 흔들어댄 사업이라는 가치 말이다. 나랏돈 끌어오거나, 외부자본 유치가 잘하는 정치라는 시대에, 전화비 크게 안 써도 제주의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었던 쾌거는 동시대를 같은 섬에 사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흐뭇하게 한다.

부디, 길을 만든 사람들이 계속 길을 만들고,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제주올레를 온전하게 걷게 해주자.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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