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16 도대체 우리가 지난 선거 때 무슨 일을 한 거야?

“국민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 19일 대선에서 당선되는 차기 대통령의 단선 제일성(第一聲)이었으면 하는 말이다. 힐링(healing)이 대세라는 이 시대에 지난 5년간 고통받고 절망했으며, 좌절해야 했던 모든 국민들에게 전하는 국가수반의 위로와 희망의 힐링 메시지였으면 하고 바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5년 동안 참으로 고생 많았기 때문이다. 1%의 대한민국 국민은 잘 살았고, 99%의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나 힘들었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를 선택하는 대선이 코앞이다. 투표일을 빼고 나면 2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정말 코앞이다. 2012년 12월 19일. 투표를 통한 선거에 의해 최고의 정치권력자를 선출하는 선출제도를 정치시스템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다. 향후 5년 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정치권력이 탄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날 누구를 뽑느냐 어떤 정치집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5년이 결정된다. 다음 대선인 2017년에 다시 “국민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연설하는 대통령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난 5년, 99%의 일반국민들은 참 많이도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 전국의 현장마다 생존을 위한 사투가 있었다. 용산참사가 그랬고, 김진숙의 타워크레인 농성이 그랬고, 힘겹게 싸워 온 강정주민들의 고통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99%의 국민복지를 위한 22조의 예산은 대한민국의 산하를 흐르는 4개의 큰 강을 천지개벽 이후 가장 크게 난도질하는 데 소진되었고, 천혜의 자연은 철저하게 파괴당했다.

하천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녹차라떼’ 강물의 끔찍한 풍경은 MB정부의 핵심정책이었던 ‘녹색성장’의 실체였다. 또한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정치와 정치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실명과 실체로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부의 ‘국민’의 개념에는 단지 1%만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기업프렌들리의 친구들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골목상권은 애초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점차 드러났다. 철저하게 대결로 치달은 대북정책은 명분과 실리 모두 실패한 역대 최악의 대북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성과라고 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신화마저 철저하게 훼손되었다. 산업화의 신화는 MB정부의 747정책의 추락으로 무색해졌다. 각종 경제지표들과 서민경제의 상황들은 최악의 상태다. 한국사회의 세계적 지표들은 모두 곤두박질쳤다.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민주화의 성과 또한 마찬가지다. 현 정부기간 동안 현대사에서 어렵게 진전시켜온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훼손되고 망가지는지를 보여주었다. 인권은 크게 후퇴해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졌다. “도대체 우리가 지난 선거 때 무슨 일을 한 거야?”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5년 전 바로 그날, 우리가 행한 한 표 한 표가 민주정부 10년을 송두리째 퇴행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였을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이제 다시, 우리들에게 선거가 다가왔고, 누군가를 선택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5년의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분노하라

2010년 프랑스를 강타한 책 한 권이 있었다. 출간 후 7개월간 200만 부 이상이 팔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 책은, 2010년 6월 한 달간 국내에서도 약 3만 부 가까이 팔리며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바로 프랑스의 93세 노인인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의 《분노하라》(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이다.

나치에 맞섰던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유엔인권선언문을 기초하는 데도 참여했던, 오랜 외교관생활을 끝내고 은퇴한 후 글쓰기와 사회활동으로 지내는 93세의 프랑스 노인이 쓴 이 책은,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찾기 바란다.”며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분노하라며 젊은이들을 선동한다. 이 책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분노’라는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 만에 무너지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프랑스가 처한 작

   

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뜨거운 호소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상륙해서도 초판 3만 부가 한 달 사이에 팔려 나가면서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프랑스의 노인이 프랑스 젊은이들에 던진 ‘분노하라’가 한국에서도 통한 것이다. 역사적 경험이 다르고 사회적 환경의 차이가 매우 큰 두 나라의 젊은이들과 독자들이 공감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분노가 힘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분노는 힘의 원천이다. ‘스테판 에셀’은 그러므로 먼저 ‘분노하라’고 권한다.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동영상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바로 이 에셀의 말과 같은 무게로 선연히 기억하는 장면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휠체어에 탄 채, 상기된 얼굴로 “국민 여러분, 행동하는 양심이 되십시오. 우리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행동하는 양심, 각성한 시민이 되어야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에셀의 문구 위로 선연히 겹친다.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프랑스’ 투쟁의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 달라.”라고 하면서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요구한다.

이번 선거의 시대정신은 우리나라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진전시켜온 가치들을 역사적 유산으로, 총대를 넘겨받는 것이다. 물론, 오늘의 현실에서 분노할 그 무엇을 찾은 당신에게서 시작되는 일이다.

저항하라

에셀은 대담에서 저항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단정하고 체념하는 것,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거부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자본주의 종주국에서, 바로 그 자본의 심장, 상위 1%의 영토인 월가에서 벌어졌다. 바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였다.

2011년 9월 촉발돼 6개월간 전 세계를 강타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는 삽시간에 미국 국내의 여러 도시들은 물론 전 세계로 번져 나갔다. 이들은 경제를 무너뜨리고도 합당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1% 경제·엘리트’의 탐욕을 비판하면서, 월가 점령시위가 “1% vs. 99%” 의 대결이자 금융위기 이후 1%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해 저항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99%의 자각임을 일깨우며, 99%가 일어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시위가 큰 호응을 얻자 10월 5일을 ‘국제행동의 날’로 지정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이용해 전 세계로 타전했다. 그 결과 이날 세계 82개국 900여 개 도시에서 점령하라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효과는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 월가의 시위 장면.

이 점령하라 운동이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나 정치권력의 변화를 바로 끌어내지는 못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월가점령운동이 세계화의 시대정신으로 각국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각국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큰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를 넘어 정치적인 실천을 내포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정치 흐름에 앞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줄 것이라는 점이다. 에셀이 말한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라는 말처럼, 분노하고 참여하니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년 11월 30일, ‘한국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민주화투쟁시기의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안타깝게도 끝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는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이 월가점령운동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를 촉구하는 글을 10월 18일자 그의 블로그에 남겼다.

이 글은 결국 그가 세상에 남긴 유언장이 되고 말았는데, 그 글의 제목이 “2012년을 점령하라”였다. 이 글에서 그는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유언으로 강조한 ‘2012년의 점령’ 프로젝트는 지난 총선과 이번 대선을 앞두고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결과 99%의 국민들이 원하는 권력이 만들어지고 그 권력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이다. 즉, 변화를 원한다면 이번 선거에 참여해서 그 세상을 이루어줄 정치세력에 투표하라는 것이다.

투표하라

스테판 에셀과 고 김근태는 항독레지스탕스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투사들이지만, 그들은 폭력적인 투쟁보다는 무엇보다도 정치에 참여하고 투표에 참여하여 그들이 원하는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즉, 아무리 지금의 정치가 실망스럽다 하더라도 그에 냉소하거나 무관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것이 곧 저항이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투표 독려 현수막 종결자’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이 화제다. 바로 <투표시간 연장 대전공동행동 대전시민아카데미>가 내건 투표독려 현수막인데, “투표하지 말고 쭉 이렇게 살아요”라고 적혀 있다. 이 사진은 온라인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확산되며 누리꾼들의 눈길을 모았다. 입담꾼 진중권이 “공포의 투표 독려 현수막. 이건 호러물입니다. 노약자는 보지 마세요.”라고 트윗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투표하지 말고 쭉 이렇게 살아요”는 촌철살인의 역설의 힘이 느껴지는 말이다. 투표하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선택의 주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환기시키는, 평범하지만 고도의 언어미학으로 다듬은 말이다.

▲ 기가 막힌 투표독려문구다. 많은 네티즌이 뒤집어졌다.

이 현수막의 문구 하나가 이번 선거의 전부다. 투표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명쾌한 투표의 해석학이 따로 있을까? 투표하면 다르게 살 수 있지만, 투표 안 하면 쭉 이렇게 사는 것. 투표는 종이 한 장에 묻은 빨간 잉크자국이 아니라, 바로 내일, 미래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일 모레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의 의미다. 이번 선거는 지난 5년간 MB정부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대안정치권력과 세력에 대한 선택이다.

다르게 살 수 있는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대선주자들 중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투표 전 일주일간 선거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한 선거법에 따라, 공식적인 우열의 판세에 대한 정보도 없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박빙의 대결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박근혜당으로서의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MB정부 기간 동안 여당 속의 야당이었던 존재감을 강조하며,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표밭을 누리고 있는 한편, MB정부 5년간의 심판과 참여정부의 성과와 반성 그리고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였던 안철수 현상을 끌어안아 새로운 정치를 모토로 내세운 문 후보와 열띤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이번 선거를 “정권교대냐 정권교체냐”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정권교대가 되었든 정권교체가 되었든 문제는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 동안 분노한 사람들은 이번 선거에 참여해 두 선택지 중 하나의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투표를 통해서 분노의 결말을, 또는 그 분노가 창조하는 새로운 시대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 총 7명의 후보가 출마한 선거포스터. 이정희 후보가 사퇴했다. 박근혜, 문재인 두 유력후보와 4명의 군소후보자가 선택의 길에 있다.

늦봄 문익환 선생은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뽑는 것이다.”라는 선거에 대한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앞의 유력한 두 후보가 모든 유권자들의 바람에 부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단 두 사람이 만인의 요구에 부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민 대부분은 자기가 바라는 최선의 후보가 아니라, 최선의 후보상(候補像)에 가장 가까운 후보를 뽑게 될 것이다. 차악을 뽑는다는 표현은 곧 민주주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신의 영역일 것이므로 인간이 발전시킨 제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하면서라도 최선을 향해 점차 나아지는 내일을 만들어가려는 노력, 그 지난한 합의와 실천의 과정이 민주주의 본질 중의 하나라면, 우리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 한 번씩의 선택들의 중첩을 통해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권력도 학습을 통해, 경험을 통해 발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만이, 아무리 더러운 정치판이라고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시선을 거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만드는 배경이기도 하다.

에셀은 그의 또 다른 글에서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면 이 작은 행성 위의 실존에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곳에 경이로운 지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9일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가 우리를 기다리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평들을 만나기 위한 첫 관문이 될 것이다. 그 관문은 우리가 그날 투표장에 가야 열릴 것이다.

분노하고, 저항하고, 참여하고, 투표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쭉 이대로일 것만 같은 내일이, 오늘과 다른 더 나은 날들로 가는 미래의 문이 말이다.

이대로 쭉 살기 싫은 사람들은
“2012년의 투표장을 점령하라!!!”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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