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건물과 쓰레기 더미, 경제성장 그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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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의 중국횡단기] 20 거대한 충칭벼룩시장 한 바퀴

가볍게 숙소 주변 시내모습을 구경할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얼마안가 큰길 옆 골목길 계단에 몇몇 사람이 좌판을 벌여놓은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런 좌판이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골목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이르러 사방으로 뻗어 있는 좁은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 충칭의 거대한 벼룩시장 풍경. ⓒ양기혁

 

▲ 충칭의 거대한 벼룩시장 풍경. 좌판엔 온갖 물건이 가득했다. ⓒ양기혁

 

▲ 충칭의 거대한 벼룩시장 풍경. ⓒ양기혁

길 양쪽에 늘어선 좌판에는 옷가지와 구두, 시계와 중고 핸드폰, CD, DVD, 카메라와 망원경, 오래된 책들과 동전, 팔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지고 나와 파는 것처럼 온갖 종류의 물건들이 물상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생선과 미꾸라지 파는 가게, 철망 안에 들어 있는 닭과 거위를 파는 가게에선 즉석에서 도살처분할 뿐만 아니라 그 피를 그릇에 담아 함께 팔고 있었다. 청결이나 위생 같은 개념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고 오직 물건을 팔고 돈을 받는다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개념의 거래가 있을 뿐이었다.

시장통 안에는 군데군데 마작방이 들어서 있어서 성업 중이었고 길 한편에 현찰이 오가는 카드게임판을 벌여 놓은 곳도 있었다. 전혀 누구의 감시나 제재를 받거나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도박판에 몰두하고 있었다.

 

▲ 불을 밝히고 마작과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들. ⓒ양기혁

‘牙科’라는 간판을 내건 시장통 안의 치과진료소, 채소와 과일 행상들, 그리고 기나긴 벼룩시장의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저마다 하얀 종이를 앞에 놓고 계단에 앉거나 손에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큰 도로로 나와 다시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자 고층건물이 늘 어선 번화가에 이르게 되었다. 언덕 아래의 후미진 골목에서 본 초라하고 남루한 모습의 벼룩시장과 대비되는 화려하고 번듯한 상가들이 이어져 있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도로의 번화가를 벗어나 골목으로 다시 들어갔다. 꾸불꾸불 이어진 인적이 없는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벼룩시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고, 처음 들어왔던 길을 찾아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충칭의 밤하늘엔 푸른 광선 줄기가 이리저리 옮겨가며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문득 충칭의 밤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신발을 고쳐 신고 카메라를 들고 다시 어두워진 밖으로 나왔다.

낮에 걸었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멀리 장강 너머의 고층건물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얼마 못 가서 도로는 고가도로로 이어지면서 인도가 없어지고 옆 골목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어두운 골목길은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어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어디선가 칠흑 같은 허공 속으로 쏘아대는 몇 줄기 푸른 광선 아래 대형건물들이 환히 불을 밝힌 화려한 야경 속에서 악취를 풍기는 뒷골목의 쓰레기더미 속을 헤쳐 나가다보니 마치 오늘의 중국이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장 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기간 이루어낸 놀라운 경제성장의 그늘 속에 피폐하고 고단한 대다수 인민들의 삶이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더미와 같이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둠이 깊어가는 데도 환히 불을 밝힌 마작방에 가득 찬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져 있고, 길거리 곳곳에 몇 명씩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엔 카드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낮에 왔던 번화가로 들어섰는데, 한 대형 쇼핑몰 앞의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한 병 주문했다.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이 붐비고 광고판은 현란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쇼핑몰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소란스러운데 잠시 맥주 마시고 일어서서 길 건너 불이 밝혀진 곳으로 걸어갔다. 큰길에서 조금 들어가자 골목에 포장마차 술집들이  이어진 것을 발견하여 거기에 진열된 음식들 중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 시장 내 포장마차. 안 파는 것이 없었다. ⓒ양기혁

 

▲ 계란의 흰자위가 투명한 피단(皮蛋)과 족발 비슷한 돼지손(猪手). ⓒ양기혁

흰자위가 투명한 계란이 있어서 물어보니 아주머니는 ‘피단’이라고 한다. ‘지단(계란)’은 알겠는데 피단은 또 뭔가? 중국에서는 썩힌 계란을 먹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피단(皮蛋)이었다.

그곳에서 파는 것을 조금씩 맛볼 요량으로 투명한 피단과 돼지족발처럼 생긴 것, 그리고 골뱅인지 우렁인지를 조금씩 섞어서 맥주 한 병과 함께 주문했다. 처음 피단 한 접시가 나와서 맛을 보니 괜찮고 입맛에 맞았다.

몇 점 먹고 나니 족발 같은 것이 채소에 버무려져 커다란 접시 하나 가득 나왔다. 나는 아차 싶어 황급히 아직 나오지 않은 우렁이를 취소시켜야했다 .“헌둬, 워츠부리아오.(너무 많아서 먹을 수 없다.)” 내가 주문한 것은 여러 가지를 조금씩 해서 한 접시 정도를 생각한 것이었는데 그들은 각각의 음식을 한 접시씩 내오려고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 말을 이해하여 아주머니는 주방에다 우렁이 요리를 취소시켰다.

그러나 이미 나온 돼지 족발처럼 생긴 것은 뜯어먹을 수가 없었다. 옆에 서 있는 직원에게‘차이단(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내가 주문한 것을 찾아보니 ‘香味猪手’라고 쓰여 있었다. 청년은 메뉴판에 한 접시 40원이라고 적혀 있는데 30원어치 나왔다고 친절하게 덧붙인다. 그런데‘猪手(저수)’라고 하면 ‘돼지손’이라는 뜻인데 앞다리를 말하는 건가? 우리말에는 돼지는 발만 네 개이고 손은 없는데 중국에는 돼지가 손이 두 개고 발이 두 개인가? 어쨌든 나는 몇 번 뜯어먹으려고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족발을 좋아해서 소주 안주로 자주 먹는데 돼지손은 전혀 뜯어먹을 수가 없었다.

피단에 맥주를 몇 모금 마시는데 기타를 멘 젊은 아가씨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종이에 쓴 뭔가를 내밀며 노래를 한 곡 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잠시 서 있다가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냥 지나갔는데 얼마 안 있어 똑같이 전자기타를 메고 등에는 앰프 같은 것을 짊어진 다른 여자가 와서 다시 노래를 한 곡 하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녀가 내미는 것은 아마도 노래곡목이 적혀 있는 것으로 거기에 있는 곡으로 신청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밑에 ‘一首10元(노래 한 곡에 10원)’이라고 쓰여 있다. 주변에는 기타를 메고 서성대는 몇 명의 여자들이 더 보였다.

 

▲ 한 곡에 10원인 노래를 청해 듣고 있는 필자. ⓒ양기혁

그녀에게 나와 사진을 한 장 같이 찍는다는 조건으로 그녀가 잘 부르는 곡으로 한 곡 부르게 했다. 그녀는 여행에 지친 나그네를 위해서 감미로운 중국가요를 불렀는데, 잘 훈련된 솜씨로 매끄럽게 부르는 노래 속에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 같은 몽환적인 기분이라고 할까. 충칭의 밤, 포장마차에 앉아 잠깐 동안 나는 그렇게 애절한 노랫가락 속에 빠져들어 갔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가고 나자 처음에 왔던 여자가 다시 와서 자기도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토라진 표정으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직 노래를 한 곡도 부르지 못한 모양이다. 이미 시간이 늦어서 일어서야 했다. 여자를 달래서 보내고 돼지손은 고스란히 남긴 채 포장마차를 나왔다.

그런데 숙소로 가는 길을 알 수가 없었다. 낮에도 이쪽에 와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고 헤매기 시작했다. 시간은 밤 11시가 가까워가고 있었다. 혹시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골목길로 들어섰다. 낯선 도시의 어두운 골목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골목 곳곳에 등대처럼 불을 밝힌 곳에는 마작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긴 골목길을 나오니 강을 따라 이어진 도로가 나와 다시 강변도로를 걸어가는데 아무래도 숙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다보니 반대편 고가도로 위 교통표지판에 ‘종싱루’라고 쓰여 있고 화살표로 방향표시가 되어 있었다. 유스호스텔의 주소가 종싱루 146호였다. 길을 건너 다행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택시기사에게 표지판을 가리키며 종싱루로 가자고 말했다. 택시는 고가도로로 들어서서 얼마 안 가 도착했다. 10원 지폐를 꺼내주며 잔돈을 달라고 말했다.

“게이워 링치엔(잔돈 주세요).”
“링치엔 메이요우(거스름 돈이 없다).”

택시기사는 요금이 10원이라고 했다. 아주 짧은 거리를 탔을 뿐인데…. 그러나 그 시간에 말도 안 통하는 택시기사와 다투고 있을 수 없다. 택시를 내려서 낯익은 거리에 안도하며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입구부터 로비 안까지 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다.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행객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활기에 차 있다. 잠시 숨돌리기 위해서 맥주 한 병을 들고 테라스 카페로 올라갔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빛줄기는 없어졌고 고층건물의 불빛도 다 꺼져 있어 충칭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양기혁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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