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행정절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자

9일 열릴 예정이던 특별자치도 특별법 공청회가 서울지역 등에서 내려온 전국병원노조회 소속 조합원들의 강력한 저지에 의해 무산됐다. 제주시공청회는 아예 개시도 못했고, 서귀포시 공청회는 중간에 중단됐다.

그렇지 않아도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 폐지 문제로 제주사회가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자치도 공청회마저 '무산'됐다는 점은 그 이유야 어쨌든 심히 유감일 수밖에 없다.

양비론일 수밖에 없지만 공청회를 물리력으로 저지한 측이나, 공청회에 수백명의 공무원들 동원해 '관제 공청회'로 만들려고 했던 제주도 당국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공청회를 실력으로 저지한 측은 내용적으로는 '영리병원 허용' 반대였지만 그들은 특별자치도 공청회와 입법예고에 대한 행정절차법 위반을 전면에 내걸었다. 행정절차법상 공청회는 14일전에 개최공고해야 하고, 입법예고는 20일 이상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게 핵심이었다.

공청회와 입법예고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특별자치도 공대위는 입법예고 이전인 지난 2일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행정절차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터진 사안이 아니었으며, 공청회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를 간과했다. 공대위가 2일 문제제기를 한 후 일주일이 되도록 아무런 준비도 없다가 공청회가 무산되고 난 후에야 "공청회와 입법예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공청회와 입법예고 과정에서 보여준 제주도 당국의 모습은 너무나 서툴렀고 어색하기까지 했다. 정말 제주도가 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 사례1> 특별자치도특별법은 행정절차법 대상이 아니다?

공청회 문제가 제기될 당시 제주도는 "공청회는 행정절차법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심지어는 10일 오전까지만 해도 당담부서에서는 기자실에 '행정절차법' 조문까지 들고 와서는 "국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법률은 행정절차법 대상이 아니며, 공청회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사항'은 아니나 도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중요한 법률인 만큼 임의적 성격의 공청회"라고 밝혔다.

행정절차법 대상도 아니며, 법적 구속력을 지니고 있는 공청회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절차법이 정한 공청회 예고기간과 입법예고기간에 구속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제주도가 제기한 근거는 행정절차법 제3조(적용범위) 2항 1조로 '국회 또는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치거나 동의 또는 승인을 얻어 행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절차법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 조항을 해석하는 데 오류를 범했다. 이 조항은 지금의 특별법처럼 국회의 심의 의결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법안이 아니라 이미 국회의 '의결'을 거친 법안에 대해 적용되는 조항이었다.

제주도는 이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민주노동당 차원에서도 '행정절차법을 무시했다'는 내용의 성명서가 발표되자 이번에는 '제주특별자치도법안 공청회 관련 검토'란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보도자료에는 이날 오전에 제기한 '특별법은 행정절차법 대상이 아니다'라는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법조문을 검토해 본 즉 특별법 공청회와 입법예고는 행정절차법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뒤늦게 파악한 것이다.

# 사례2> 법 38조를 준용하도록 했기 때문에 14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제주도는 이날 오후 배포한 자료에서 이번에는 행정절차법 제45조 (공청회)의 '준용(準用)'이란 표현을 들고 나왔다. 45조는 "행정청은 입법안에 관하여 공청회를 개최할 수 있다. 공청회에 관하여는 제38조, 제39조 및 제39조의2의 규정을 '준용'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준용'이 적용되는 조항은 38조로 '공청회 14일전 개최공고'하도록 한 내용으로 이를 '당연적용'이 아닌 '준용'인 만큼 반드시 14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했다. 

그리고는 준용의 사전적 의미(어떤 사항을 규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규를 그것과 유사하나 성질이 다른 사항에 대하여 필요한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적용시키는 일)까지 설명했다. '약간의 수정을 가해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14일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게 논리였다.

제주도가 제시한 이 사전의 본문에는 "법률상 명문으로써 지시되어 있는 점에서 단순한 해석상의 유추적용(類推適用)과 다르며, 같은 종류의 규정을 되풀이하는 번잡을 피하기 위한 입법기술의 하나이다. 준용의 주요 목적은 중복을 피하고 법문을 간소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필요한 수정의 유 ·무나 정도에 관하여 의문을 남기기 쉬운 결점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주도 한술 더 떠 "법제처에 문의해 보라"며 친절하게 전화번호까지 알려줬다. 그러나 법제처는 "준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으며, '준용'이란 표현을 놓고 14일 이내로 단축해도 된다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또 법제처가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기는 곤란하다. 필요하다면 유권해석위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아쉽게도 제주도와는 다른 해석을 내렸다.

# 사례3> 지방선거 법률은 행정체제특별법이지 특별자치도특별법이 아니다

제주도는 이와 함께 행정절차법상 입법예고 기간을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행정절차법 제43조(예고기간)는 "입법예고기간은 예고할 때 정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일이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으며, 법제업무운영규정은 특별한 사정 요건을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제주도는 이 규정을 들어 특별자치도 특별법안은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된 규정 정비 시급 등으로 인해 연내 입법이 필요하다"면서 긴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하면서 "입법예고기간을 20일 이상에서 11일간으로 단축시키는데 하등의 문제될 게 없으며, 행정상 입법예고기간 동안 공청회를 하는 경우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가 공청회에 부친 사안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이며,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된 법률은 '제주도 행정체제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특별자치도 특별법과는 별개의 법률이다.

또 내년 지방선거에 차질이 빚지 않도록 시급을 요하는 법률은 '제주도 행정체제 등에 관한 특별법'이지 현재 제주도나 국무총리실에 공청회에 부친 특별자치도특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특별자치도특별법도 연내에 통과되면 좋기는 하지만 제주도가 밝히는 것처럼 지방선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법이다.

때문에 행정체제특별법과 특별자치도특별법을 혼동해 해석하는 것 역시 제주도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인 셈이다.

사실 이 같은 논쟁은 무의미하다. 법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공청회 개최공고기간을 늘이면 어떻고 또 입법예고기간을 줄이면 어떤가. 하지만 이는 원칙이다. 먼저 원칙을 밝힌 후 "전후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어떨 수 없이 이렇게 가고 있다"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 조문을 들면서 '구렁이 담 넘어 가듯' 가려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제주도 당국이 너무나 법조문이 어쩌구 저쩌구 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려 하기 때문에 지적하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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