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 (27) “우리 어릴 적엔…” 삼춘들 이야기 / 정신지

더웠던 날씨가 추워지고 사람의 체온에도 변화가 생기듯, 마음의 온도 역시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날이 추우면 난롯불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어 체온이 따스해지거늘, 마음의 온도가 떨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길에서 연이 닿은 어르신들의 집에 들어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곳에는 십중팔구 자식 손주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손주들의 발가벗은 돌 사진, 자식들의 빛바랜 결혼사진, 졸업사진 등. 그것들을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풀어놓는 기억의 이야기들. 여기저기 아픈 구석 투성이라는 어르신들이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는 그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난다. 그들의 따스한 자식자랑에 잠시나마 시린 마음이 녹는다.

 

▲ 하르방은 하루에 한 번씩 액자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느긋하게 사진들을 보신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좋은 의지로 지난날을 기억하는 자세가 있어 겨울이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학습한다. 춥고 배고팠지만 흥겹고 정겨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 힘들게 길러온 자식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오늘은, 내가 만나 온 할망 하르방들이 고생고생하며 키워 오신 우리네 삼춘(남녀를 통틀어 손위 어른을 일컫는 제주어)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자.

“웃긴 이야긴데, 나 초등학교 때는 아기를 업고 학교에 갔어. 가족들이 다 바쁘니까, 내가 아기를 봤거든. 학교서 아기 업엉(업어서) 공부하다가, 애가 울면 나도 같이 엉엉 울멍(울면서) 교실 밖으로 나오는 거라. 하하. 완전 영화의 한 장면이지?
…학교 다니기 전부터 낭불을 솔앙(땔감을 태워서) 밥을 했는데, 어머니가 보리쌀하고 물을 맞춰주면 그걸 놓고 솥에서 부글부글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밥이 끓어서 거품이 나오면 옆집 아줌마를 불러. 게민(그러면) 아줌마가 와서 거기에 좁쌀을 넣고 다시 물하고 불을 맞춰주고 나가. 그냥, 나는 허랜허는(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그러고 이시민(있으면) 밥이 돼. 그때 내 나이가 한 일곱 살?”

아이가 아이를 기르고 소꿉놀이처럼 집안일을 돕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삼춘은, 지금 일흔을 훌쩍 넘긴 떡집 사장님이다. 작은 화로를 앞에 두고 떡을 빚던 그녀는, 바쁜 손을 멈추고 환하게 웃으며 옛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나뉜다. 삼춘들은 이렇게 자랐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할망 하르방의 집에는 십중팔구 자식들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남들은 학교 끝나고 고무줄놀이를 하며 노는데, 삼춘은 집안일을 돕느라 방과 후의 놀이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다. 가난해서가 아니다. 되레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들은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모여 신이 나게 논다. 하지만 밭도 있고 소도 있는 집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가진 게 많은 만큼 할 일도 많았다. 그것이 억울해 하루는 집으로 곧장 오라는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방과 후 고무줄놀이의 유혹으로 빠져들었다. 물론 엄한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맘껏 놀지도 못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며 늦게 왔다고 욕을 하셨다. 한 십여 분 밖에 안 늦었을 터인데, 화를 내시는 어머니가 참 얄밉다. 집에 시계도 없고, 시간을 보는 방법이란 뜨고 지는 해를 살피는 것밖에 없던 그 시절, 어머니의 정확한 시간 감각에 삼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부터 삼춘에게는, ‘어머니는 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아는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겼다.

그런 삼춘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한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그녀를 찾아왔다. 당신의 고장 난 손목시계를 들고 와서는 그것을 고쳐다 달라고 부탁하시는 삼춘의 어머니. 그 바람에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모녀는 한참을 함께 웃었다. 그러자, 주방에서 떡고물을 만들고 있던 삼춘의 남편도 말을 꺼내신다.

“어디 거뿐이라게(그것뿐이겠어). 어멍아방이 바빠서 밭에 가민(가면), 옛날에는 아이들이 쇠 맥이fp(소를 먹이러) 갔거든. ‘모시(짐승) 초례(차례)’랜 행이네(라고 해서) 당번을 정해서 쇠를 몰러 가. 어른하고 아이 주로 둘이서 가는데, 어른은 뒤에서 솔솔(살살) 쇠를 몰암시민(몰고 있으면), 아이덜(아이들)은 앞으로 옆으로 뛰멍(뛰면서) 이래 강(이리 가서) 막고 저래(저리) 강 막고. 양치기 소년처럼 온종일 쇠 숫자만 세는 거라. 까먹엉(까먹어서) 다시 세고 또 세고. 하하하.
…우리 어멍은 학교서 소풍 가는 날이면 꼭 그날로 내 당번을 맞췅(맞추어서) 미리 모시초례를 신청해. 게민(그러면) 나는 소풍도 못 가고 모시 곡끄래(소를 몰러) 가는 거라. 아이고, 귀신같이 우리 어멍이 나를 부려 먹었주(부려 먹었지).”

 

▲ 여기저기 아픈 곳 투성이라는 할망도, 자식이야기 손주이야기에 힘이 펄펄 넘쳐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떡집 안의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을 때 즈음, 손님으로 와 계시던 삼춘 한 분도 질세라 끼어든다.
“허이고, 우리 어멍들, 뼈 빠지게 고생하고 하영(많이) 속으멍(고생하면서) 살았쪄. 아방들은 술 먹엉(먹어) 광질들 허고게(하고 말이야). 하하하. 옛날엔 남자들이 술 먹으민(먹으면) 무조건 광질이라. 경허민(그러면) 어멍하고 아기들은 놈의(남의) 집 쇠막(외양간)에 강 곱고(가서 숨고).
…오로지 자식들, 지(자기) 먹을 것도 안 먹엉(먹고) 자식들 걱정만. 경허난 어멍들이 엄할 수밖에 없주(없지). 어멍신디(엄마에게) 두들겨 맞기도 엄청 맞았어, 나 어릴 때. 뛰어 놀당(놀다가) 실수로 마당에 뱅애기(병아리) 볼랑(밟아서) 죽여불고(죽여버리고), 몽생이(거지)가 집에 오민(오면) 쌀 한 솔빡(바가지) 씩 줘불엉(줘버려서) 혼나고. 주민(주면) 안 되는데 몽생이가 막 무서원게(무서워서). 거뿐이냐 게(그것뿐이야)? 놀당(놀다가) 고무신 혼 짝(한 짝) 잃어버려서 죽싸게(죽게) 얻어맞고. 하하하.”

그러는 사이, 떡집 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몸을 움츠리고 목도리에 얼굴을 묻은 채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삼춘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른다. 할망 하르방의 사진 속에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는 삼춘들은, 이제 세상을 이끌어 가는 커다란 엔진이 되어있다. 그리고 그런  삼춘들을 기르기 위해 오만가지 고생을 해오신 할망 하르방, 그들의 시절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좌절과 고통이 있었다. 시대가 만들어 낸 비극에 속기도 많이 속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한다. 때로는 좋게, 때로는 나쁘게.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수많은 변화의 중심에는 늘 변하지 않는 것들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 특히, 따스한 여름보다는 추운 겨울에, 기쁜 날보다는 무언가가 아쉬운 날에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기억들 말이다.

새로운 정치가 국민대통합을 부르짖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랴. 하지만 국민들의 ‘기억의 대통합’은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할망 하르방이 삼춘들에게, 삼춘들이 나에게 오늘도 기쁘고 슬픈 기억들을 나눠주시는 것처럼. 작은 화롯불 주위에 둘러앉아 나누는 옛 추억의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온기가 된다. 유난히 추운 겨울날엔 흩어져 있지 말고 모여 앉자. 고구마라도 함께 삶아 먹으며, 우선 따뜻해지고 볼 일이다. / 정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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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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