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2만, 원숭이 2만,사슴 2만...인구는 6만
사람 2만, 원숭이 2만,사슴 2만...인구는 6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을 걸으며 길을 묻다] (13) 생명(生命)과 정령(精靈)의 섬 야쿠시마를 가다

  일본 큐슈의 남단 가고시마에서 남쪽으로 60km 떨어진 보석 같은 섬, 야쿠시마. 일본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을 다녀오면, ‘당신의 인생관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곳.

  야쿠시마 섬의 면적은 504.88 km², 해안선 둘레 127Km로 오각형 모양, 다네가 섬, 구치노에라부 섬 등과 함께 오스미 제도를 이룬다. 야쿠시마 사람들은 ‘사람 2만, 원숭이 2만, 사슴 2만, 도합 6만이 야쿠시마의 인구’라고 한다. 교통 신호등이 딱 5개뿐일 만큼 여유롭고 자연친화적이다. 사람과 동식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명의 섬인 셈이다.

 

▲ ⓒ송재호

 

▲ 야쿠시마 해안. ⓒ송재호

 

▲ 야쿠시마 곳곳에서 원숭이와 노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송재호

 

▲ 야쿠시마 곳곳에서 원숭이와 노루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송재호

야쿠시마에는 연간 8천mm가 넘는 비가 온다. 아열대 기후에 풍부한 강우량, 울창한 숲을 이룰 조건을 잘 갖춰 있다. 게다가 습한 기운으로 나무의 표면에는 이끼가 가득하다. 나무가 많은 산은 나무끼리 부딪혀 자연발생적으로 산불이 나게 마련이지만, 이곳 야쿠시마는 단 한번도 산불이 나지 않았다. 나무에 붙은 이끼의 물기 덕분이다. 

 

▲ 수령 수천년의 야쿠시마 삼나무. ⓒ송재호

 일만년 이상의 세월동안 한번도 산불이 나지 않는 곳, 그래서인지 나이가 1천년이 넘는 삼나무들이 부지기수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그중 7천200년이나 된 삼나무가 ‘조몬스기’라는 이름으로 흡사 영혼을 간직한 것처럼 서 있다.

  안내판에는 뿌리 둘레 43m, 나무 둘레 16m, 높이가 30m, 수령 7200년이라고 적혀 있다. 조몬이란 석기시대를 의미하는 말. 빗살무늬토기 시대부터 살아왔다는 뜻이니 이 나무는 긴 세월의 영고성쇠를 지켜보면서 이제 숲을 지키는 신령(神靈)이 되어 있다. 긴 시간을 품고 있는 거목 앞에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은 참으로 찰나, 아니 시간이 잊힌 듯 멈추었다. 영(靈)은 시공을 넘어선다고 하지 않는가.

 

▲ 조몬스기(사진 이와스키 호텔 제공). ⓒ송재호

  ‘조몬스기’를 만나려면 큐슈지방의 최고봉, 바다의 일본 알프스라고 불리는 미야노우라다산(1936m)을 올라야 한다. 산행코스는 총 24km,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요도가와 등산로입구(1,360m)를 출발해 하나노에고, 미야노우라다케정상(1,936m)을 거쳐 조몬스기(1,280m)를 만난 후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600m)로 이어지는 게 가장 대표적인 코스다. 

  분명 야쿠시마에서는 사람과 나무, 그것을 둘러싼 하늘과 땅이 서로 기(氣)와 영(靈)을 흐르게 하는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모든 생명체에 영이 있고 그 영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각각의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느낄 수 있다’는 존재의 4차원 법칙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바로 야쿠시마(시라타니 계곡)인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 인 듯 했다. 환경과 생명을 끊임없이 파괴해가는 현대 개발문명에 대한 성찰을 야쿠시마는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빠르고 크게 가는 것을 멈추고 다시 느리고 작게 가는 원시의 방식을 접목해야 할 때다.

 

▲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등산로 입구. ⓒ송재호

 

▲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등산로 안내도. ⓒ송재호

일본 슬로우 라이프 운동의 중심 야마오 산세이(1938~2001)는 그래서 야쿠시마를 자신의 삶의 무대로 삼았나 보다. 시인이자 농부이자 철학자인 야마오 산세이는 서른 아홉에 현대문명의 상징 도쿄를 떠나 야쿠시마 폐촌으로 이주, 개발문명에 대항해 원시부족민들처럼 자연과 하나되기를 바라는 대안문화공동체 운동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야마오 산세이의 저서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 다시 일본열도를 사로잡고 있다. 일본 센다이 대지진과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로 인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대안으로 야쿠시마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정령의 기를 느낄 수 있는 삼나무 숲. ⓒ송재호

 

▲ ⓒ송재호

 

▲ 정령의 기를 느낄 수 있는 삼나무 숲. ⓒ송재호

 

▲ 나이 2년 정도된 삼나무, 이 어린 것이 수천년의 생명을 키운다. ⓒ송재호
▲ 삼나무 숲 이끼위에 핀 철이른 동백꽃이 아름다운 여운을 던진다. ⓒ송재호
야쿠시마에는 또 하나의 신비가 있다. 바다거북의 산란과 부화가 그것이다. 바다거북이 산란을 위해 해안으로 올라오는 때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다. 밤이 되면 산란을 하기 위해 모래 해변으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모래를 파낸다. 산란 시간은 1시간 정도며 보통 100~15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은 태양열과 백사장의 열기로 60일 후에 부화한다.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의 생존율은 8% 정도뿐. 바다로 가는 도중에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

  야쿠시마에서 바다거북의 산란을 볼 수 있는 해변은 나가타(永田), 잇소(一湊), 쿠리오(栗生) 세 곳의 모래사장이다. 이 중 바다거북이 산란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나가타다.

  매일 밤 바다거북의 산란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긴 밤 언제 어느 시간을 택해서 올지 혹은 아예 안올지는 온전히 '바다거북의 마음'에 달려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오는 경우도 많다고.

 

▲ 야쿠시마에서 만난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독특한 트레일 길. ⓒ송재호
▲ 야쿠시마에서 만난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독특한 트레일 길. ⓒ송재호
모든 걸 운에 맡기고 호텔에서 기다렸다. 운이 좋았다. 바다거북이 산란을 위해 나가타 모래 해변으로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다.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산란장소로 향했다. 인기척도 불빛도 금물, 바다거북이 놀라서 산란을 접고 바다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살금살금 조심조심 모래사장을 즈려 밟고 가니 직경 1m가 넘는 어미 바다거북이 이미 산란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단 알을 낳기 시작하면 온 신경을 산란에 집중하느라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도 알아채지 못한다. 온 힘을 다해 어미 거북은 탁구공 크기의 알 1백여 개를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몹시 힘에 부친 지 쉬었다가 다시 하나씩 하나씩 내놓았다. 산란을 끝내자 모래로 알들을 파묻고 온몸으로 그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나서는 바다로 돌아갔다.

  여기 야쿠시마 나가타 해변 모래사장에서 부화한 새끼 바다거북은 3-4년을 헤엄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간다고 한다. 거기에서 20여년을 살다가 산란할 때가 되면 다시 태평양을 또 3-4년 건너 이곳으로 온다고.

▲ 바다거북의 산란장으로 유명한 나가타 모래 해변. ⓒ송재호
▲ 바다거북의 산란장으로 유명한 나가타 모래 해변. ⓒ송재호
▲ 바다거북의 산란장으로 유명한 나가타 모래 해변. ⓒ송재호
▲ 바다거북의 산란장으로 유명한 나가타 모래 해변. ⓒ송재호
  갓 부화한 새끼의 몸으로 야쿠시마 바다를 뒤로하고 힘겹게 긴 해역을 건너고 기나긴 세월을 만리타향에서 보내다 다시 산란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바다거북의 힘과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다거북으로 하여금 그 긴 여정을 항해하게 하는 동력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 과학의 시대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의 사고체계야말로 위대하다는 이 이성의 시대에 이에 대한 해답은 나와 있지 않다. 생명은 회귀하고 윤회하면서 이어진다는 우주의 법칙과 자연의 질서만을 확인시켜 줄 뿐,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 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없다. 아마 인간보다 ‘위대한 힘’이 있어 바다거북의 DNA에 ‘너의 삶 동안 어떻게 하라’는 거부할 수 없는 자국을 새겨놓았을 거라는 ….

 

▲ 정류장 등 알림표지판도 바다거북으로 이미지 통일화. ⓒ송재호
▲ 정류장 등 알림표지판도 바다거북으로 이미지 통일화. ⓒ송재호
모든 생명은 - 인간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 서로가 보이지 않는 끈, 일종의 영(령)에 의해서 이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설령 오늘 그 종말을 맞는다 하더라도 참으로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생명 모두의 DNA에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일정한 목표와 과정이 ‘위대한 힘’에 의해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것, 이것이 원시 생명과 정령의 땅 야쿠시마 섬이 던지는 메시지였다. 
▲ 야쿠시마에서 맛이 일품인 날치 구이. ⓒ송재호
▲ 비가 많은 야쿠시마에는 폭포도 많다. ⓒ송재호
▲ 가고시마와 야쿠시마를 오가는 토피 쾌속 여객선. ⓒ송재호
/송재호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3
복수초 2013-01-13 13:16:53
아름다움,감동,,,,,,,,,,,,
형언할수 없는 자연의 이치와 삶의 가르침을 느끼고 깨다를 수 있을꺼 같아
걷고품의 갈증이 몰려옵니다.
203.***.***.101

안봉수 2013-01-12 11:08:47
사람 2만, 원숭이 2만, 사슴 2만 도합 인구 6만이라는 말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같이 살아가는 곳인것 같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175.***.***.105

낚시꾼 2013-01-02 17:14:05
긴꼬리 벵에돔은 안드셨나봐요~ 낚시꾼의 로망인곳인데~
11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