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새해, '일념돈탕진'이라는 요술봉을 쥐기 위해선

새해다.
새로운 해, 새해를 맞아 장한 결심을 해야 되겠다고 잠깐 잠깐 비장해하는 사이에 새해가 와버렸다.
사실 새해라야 별로 다를 바 없는 어제와 오늘의 반복인데 왜 새해라는 말에 커다란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
가볍게 생각하니 단순한 결론이 나왔다.

언제부턴가 삶의 나날들이 행여 오늘과 다른 내일이 될까봐 두려워 진다는 것. 따라서 새해라는 말에 의지해 다시 한 번 희망과 행복을 꿈꾸어보고 싶은 것이다. 결론은 단순하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점점 복잡해지니 아주 오랜만에 깊은 생각을 해보기로 한다. 바야흐로 때는 결심하기 아주 좋은 새해 첫날이 아닌가.

▲ 서랍이 달린 미로의 비너스.

오래전 부산 벡스코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전시회를 보았다. 달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흐물흐물한 시계 연작 시리즈를 쑤욱 지나가며 보다 딱 발길을 멈추게 한 작품이 있었다. 몸 곳곳에 서랍이 달려있었다. 아주 예쁜 비너스의 몸에. 서랍이 달린 미로의 비너스다. 작품 해석을 보니 심오한 뜻들이 많았지만 내 가슴에 다가온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아! 저 서랍. 내 머릿속에도 있었으면 좋겠네. 하나는 내 서랍 , 하나는 가족 서랍, 일의 서랍, 지난날의 서랍....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나에겐 꿈의 서랍인데. 가령 아들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지난날 서랍을 열어 사례를 살펴보고 가족의 서랍을 열어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면 끝. 출근 후에는 일의 서랍만 열어 업무처리를 하면 그야말로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되지 않을까?

물론 머릿속 서랍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세월이 준 지혜로 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열쇳말을 발견했다.
그 말은 천수경에 나오는 일념돈탕진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백겁동안 쌓아온 죄도 한 생각으로 다 없어진다.)

물론 능력 없는 내가 여기서 불경강의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 말이 왜 머릿속 생각 서랍의 열쇳말 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을 해야겠다.
( 어떤 근거도 , 필요도 없는 나의 생각이므로)

일념돈탕진은 아주 매력적인 말이다. 한 생의 삶도 아닌 백겁에 걸쳐 지은 죄를 한 생각에 다 없앨 수 있다니... 그렇다면 그냥 내키는 대로 막 살다가 간혹 일을 잘못 하더라도 한 생각으로 죄 사함을 받으면 될 꺼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일념돈탕진은 맞는데 그 일념돈탕진을 하기위해 오랜 세월 마음수련을 해야 하는 게 문제다. 마치 요술공주가 요술봉이 있어야 휘리릭 요술을 부릴 수 있는 것처럼. 마음수련이라는 요술봉 없이 일념돈탕진이라는 요술은 일어날 수 없다.

즉 오랜 훈련이 있어야 기대했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들은 어떤 강연에서 강사가 말해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전 세계인의 애창곡인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단 십분 만에 작곡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십 분의 이면에는 아주 오랜 무명밴드 시절의 연습이 있었다고. 결과는 한 순간에 드러나지만 그 과정은 결과의 무게만큼 묵직하다는 얘길 거다.

그렇다면 에이, 벌써 김새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도 튀어나옴직 하다. 그런데도 왜 일념돈탕진인가?
,
내 생각의 서랍을 여니 이런 답이 나온다. 일념돈탕진은 우선 시작하라는 것이다. 혼자 미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일념돈탕진을 믿고 아주 맑은 마음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시작은 경쾌하였으나 과정에서는 적어도 스스로에게 아주 엄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엄격한 통제 역시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놀랍게도. 끝이 일념돈탕진이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드디어 서랍과 일념돈탕진이 만난다. 자신의 삶을 몇 개의 서랍으로 정리한다.
이때 일념돈탕진을 단지 죄를 사함으로 생각하지 말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한다고 생각하자. 일념돈탕진이라는 요술봉은 모든 서랍의 어지러운 생각들을 깨끗하게 정리해줄 것이다.

생각들이 정리되니 길이 보인다. 그러면 그 길을 향해 의심하지 않고 가면 된다.
여러 서랍들의 생각을 정리해 가는 그 길, 당연히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행복 하고 싶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일어나서 가야 한다.
김수영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바짝 누웠다가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라고.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김수영 '풀' 중에서

▲ 지난 가을, 윗세오름에 등반하며 찍은 사진. ⓒ홍경희

다시 새해다로 돌아온다. 새해는 한해가 간다는 것과 꼭 맞물려있다. 우리가 지금 맞는 새해도 365일 뒤엔 가는 한해다. 간다는 것은 또 새로운 해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하지만 반복은 아니다. 조금 거창하게 얘기하면 비코의 의견을 빌어 저마다의 나선형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 방향이 발전인지 유예인지에 대한 논쟁은 접어 두자. 변화는 변화니까) 되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삶이 스스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두 눈 똑바로 뜨고 자신의 삶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모습이 때론 너무 누추해도 ‘너도 나야’ 라고 꼭 안 안아주면서. 그러면서 자신만의 생각 서랍을 만들어 일념돈탕진으로 정리해보자.

그리고 결심하자. 결심하고 열심히 실천하자. 생각만 하지 말고 움직이자.

결심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으면 아예 아무것도 없다.

▲ 바람섬(홍경희). ⓒ제주의소리

덧붙임:
그간 어설프게 시작한 숨,쉼이 두 계절을 넘겼습니다. 나의 아주 오랜 인사말로 새해 인사 올립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일이 이루어지시거나 혹은 한 발 더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길 마음 다해 기원 합니다" /바람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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