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우선 지자체와 지역농협의 책임을 물어야한다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농민들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며칠 전 전용품씨가 농촌 현실에 절망감을 드러내며 스스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농민들이 쌀 나락을 서울 명동성당 앞에다 쌓는 시위가 진행 중이다. 우리 농촌이 위기에 직면해 있고, 농민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절망감이 극에 달해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무색하기만 하다.

이런 폭발하는 농민들의 분노에 힘입어 농민단체에서는 농촌과 농민의 위기를 '노무현 정부의 살농정책(殺農政策)'에 있다고 주장하며 '정권퇴진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농촌의 어려움을 새삼 말해서 뭐하랴? 농번기가 되면 일손이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루기 일쑤다. 가끔 찾아오는 가뭄과 홍수로 다 키운 농작물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할 때도 있다. 애써서 수확한 농산물을 대도시 공판장에 출하하면 중매인들의 농간으로 자신도 모르게 헐값에 낙찰되어 생산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애쓰게 수확한 농산물이 과잉생산되는 바람에 가격이 폭락해서 산지에서 갈아 엎어버릴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다보니 농촌 가계마다 전답이 담보로 잡혀 있고, 수확해도 밀린 농약 값과 부채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정신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 지역 일꾼들에게 우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지에 몰린 농민들의 절망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농민단체에서 '정부의 살농정책'으로 인해 농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우선 밝혀야겠다.

난 현재의 농촌경제 파산에 대한 책임이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 특히 기초단체와 지역 단위농업협동조합이 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다.

지방자치단체는 스스로 경쟁력 있는 작물을 발굴 육성하고, 농촌의 소득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지역의 단위농협도 마찬가지다. 지역에 있는 단위농협은 지역현실에 맞는 운영을 통해 농민들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해 역할을 다하라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지역 기초단체장들과 지역 단위농협의 조합장이 고소득 작물을 발굴 육성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들 농산물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판단하는가? 자치단체장은 지역 경조사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의 차기 공천을 확보하기 위해 로비하기에 바쁘다.

농업협동조합은 대부업(貸付業)이나 농약, 비료판매상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대도시 공판장에서 농민들이 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이 경매사들과 중매인들의 농간에 헐값에 낙찰되어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게 우리 단체장들이고 우리 농협 조합장들이다.

지금의 자치단체와 단위농협을 바꾸지 않고 중앙정부의 책임을 묻는 일이 농촌 경제의 회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면 망한다

그런데 우리 농촌에 들어가 보면 지자체 문제나 농업협동조합 문제를 농촌과 농민문제 해결과 연결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4년에 한 번 단체장을 뽑고, 4년에 한 번 조합장을 뽑지만 이 시기에 농민들이 후보들에게 제대로 정책요구를 하거나 정책검증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작 지역 일꾼 선거 시기에는 지역감정이나 자신과의 혈연·근친관계로 일꾼을 뽑아놓고, 갈수록 추락해가는 농촌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중앙정부로 표출하는 방식은 농민 혹은 농민 운동가들이 스스로 무책임함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유럽의 농업선진국인 덴마크의 경우를 보더라도 농업이 스스로 활력을 되찾는 일은 중앙정부가 농업보조 정책을 포기한 이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지역농민들이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음을 상기하길 바란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리고 농민들뿐만 아니라 도시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할 것 없이 모두 치열한 경쟁을 강요받는 비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아무리 분노를 표출해 봐도 우리 농업의 회생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노를 표출할 에너지를 농촌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전념하고, 지역의 나태한 일꾼들을 지역을 책임질 수 있는 일꾼으로 바꾸는 일에 힘쓰길 바란다. 15년 전 우루과이라운드라는 광풍이 우리 농촌을 강타했다. 그런데 그 15년 간 우리 농업은 무엇이 변했는가? 아마 변한 게 있다면 '정부를 비판하는 능력'이 발달했다는 정도일 것이고, 농협 대부계에서 돈 빌리기가 종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것일 텐데 정작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은 부족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은 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최근 우리 주부들 사이에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품질 좋은 농산물은 시장에서 차별화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파동으로 외국산 농산물이 값이 싸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우리 농산물을 찾겠다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농산물 수입개방의 파고에도 우리 농업에 다가온 기회다. 경북 성주군에서는 이미 참외농가들이 도시 근로자들 못지않은 소득을 올린다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빈사 직전의 상태에 있는 농업이 개방 압력을 받고 있는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농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국민들의 농업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가고 있다. 이 시기에 농민들도 스스로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피해갈 수 없음을 상기하고, 각고의 노력을 통해 생존의 활로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길 기대한다.

※ 장태욱 시민기자는 제주시내에서 '장선생수학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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