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고가 아니라 거의 차고수준. 오토바이 경운기 모두 그녀가 직접 타고다니는 것들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30) 일흔여섯 양배추 밭 여사장님 성공한 삶, 그 비결은…

"추운디 고치 노인정 갈탸(추운데 같이 노인정 갈래)?"
길을 걷다 만난 일흔여섯 할망과 길벗이 되었다. 감기에 걸리셨는데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산책을 나오셨단다. 말동무를 하며 걷다가 잠시 지쳐 버스정류장에 앉아 숨을 고른다. 인적 드문 한라산 북서쪽 끝자락의 중산간 마을, 다른 건 몰라도 공기 한 번 참 좋다.

그녀를 따라 노인정에 도착하니, 옹기종기 모이신 할망들이 훈훈하게 수다를 떨고, 하르방 한 분이 그 옆에서 홀로 화투를 치고 있다. 그 틈에 끼어 나도 한창 깔깔거리고 있는데, 할망 한 분이 "나 이제 집에 가사켜(가야 해), 다들 글라(일어나라)."하셨다. 그러자 순식간에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열쇠를 거머쥐신 그 할망은 사실, 노인정의 (비공식적인)보스이시다. 올해 나이 86세라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즉각 ‘일동, 해산!’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뜨끈뜨끈한 노인정의 방바닥을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대장께서 철수를 명하시니 하는 수 없다.

"지비 강(집에 가서) 감저나(고구마나) 먹고 갈탸(갈래)? 혼자 사는 집이난(집이라) 아무것도 없주만은(없지만)…." 오는 길에 길벗이 된 할망께서 말씀하셨다. 얼싸 좋다 대답하고는 느릿느릿, 그녀와 나란히 집을 향해 걷는다.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무언가 보여줄 것이라도 있는지 나를 창고로 데려가신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할망이 허름한 창고 문을 열자, 그 안에는 반짝이는 경운기와 사륜, 이륜 오토바이가 멋지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창고가 아니라 거의 차고수준이다. 그리고는, “저거, 다 나가(내가) 타는 거라.” 하시며 씩 웃는 할망.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언제나 할망의 집에는 늘 이런 반전이 있다. 우리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녀들만의 보물이 어딘가는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조그마한 체구에 말 수도 없는 그녀는 누가 봐도 평범한 시골 할망이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보통이 아닌 그녀. 부모에게 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30년 전에 돌아가신 하르방이 부자였던 것도 아니라는데, 홀몸으로 자식 여섯을 길러 모두 성공시켰다. 그뿐만 아니다. 부지런하고 대범한 성격 덕분에 남자들이 하는 일도 모두 당신이 직접 배워 일해 왔다. 경운기로 밭을 갈고, 넓은 밭에 비료도 그녀가 직접 뿌린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밭의 규모가 커져, 이제 그녀는 어엿한 양배추밭의 여사장님이시다. 하지만 자식들의 성화에 농사는 작년으로 막을 내리고, 이제는 500평 정도의 ‘작은 텃밭’(?!)만 가꾸며 사실 거라고.  흥미진진한 할망이시다. 그러나 제아무리 멋진 양배추밭 여사장님이라도 고생 한 번 안 했을까?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다.

▲ 돌담 사이로 보이는 양배추 밭. 할망이 직접 경운기를 타며 농사를 지은 양배추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성공하는 사람의 발. 부지런하고 남을 위해 살아온 할망의 딱딱한 발.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나추룩 행 고생 한 사람도 엇쪄(나처럼 고생 한 사람도 없어). 자식 여섯 살리려고 고생 하영(많이) 했지. 요새 사람들은 아기 하나만 나앙(낳아) 살아도 힘들댄 햄저만(힘들다 하지만). 그땐 아기 낭(낳고) 삼일도 조리 못해서(못했어). 일해사 살주(일해야 살지). 무사 그추룩 세상이 가난해신지(왜 그리 세상이 가난했었는지)…. 이제추룩(지금처럼) 양배추 부로꼴리(부로콜리) 농사도 안 허곡게(안 하고), 보리영 조영 해가민(보리하고 조농사랑 지어서) 어디 돈이 나와? 돼지 질렁이네(길러서) 새끼 내왕(내어) 팔고, 그걸로 아기들 공부시켰주.”

그녀의 남편은 술병에 걸려 일찍 돌아가셨다. 생전에 할망이 하르방 때문에 흘린 눈물은 헤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참고 참으며 살았다. 그래도 돌아가신 하르방이 영 밉지만은 않으신지, 분위기를 바꾸려고 내가 던진 엉토당토 않는 질문에 박장대소하시며 친절히 답해주신다.

“할머니, 첫날밤 이야기 해주세요.”
“하하하, 무사, 막 좋은 얘기 들어질 꺼 닮지(왜, 좋은 이야기 들을 수 있을 거 같지)? 게민(그럼), 비밀 하나 고라주크라(말해줄게). 옛날사 지금이영 다르난(옛날에야 지금이랑 다르니까), 전부 중매로 결혼하는 거 알지? 나는 스물에 시집을 와신디(왔는데), 그때는 어린 색시 데려오곡 허민(데려오면) 막 부치럽주게(정말 부끄러웠지). 새신랑도 무시걸 어떵(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거라. 겨난(그래서), 나 결혼 한 첫날밤에는, 나영(나랑) 신랑 사이에 우리 시누이가 고치 누웡 자서(같이 누워서 잤어)! 셋이 얘기도 하고, 경 놀당보민(그렇게 놀다보면) 그냥 돌라젼 고치 자는거주게게(그냥 가까이 누워서 같이 자는 거지). 경행(그렇게 해서) 혼 삼일(약 삼일) 넘으난(넘으니까) 시누이가 솔짝하게 가 불드라고(슬쩍 가버리더라고). 하하하,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

‘신혼 첫날밤에 남편의 시누이가 내 곁에 누워있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다. 생판 모르는 남자와 하루아침에 혼사가 이루어지는 것도 믿기지 않는 마당에, 할망의 비밀은 웃기다 못해 어이가 없어 헛기침이 날 정도다.
파란만장한 할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그들은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상황에 백 퍼센트 순응하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

▲ 노인정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노인정의 보스할망도 함께 가다 이내 딴 길로 사라지셨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할망은 어린 시절 ‘풀새각시’라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밭에서 나는 대를 꺾어다가 그것을 조물거려 사람을 만든다. 머리를 땋아 예쁘게 새각시를 만들고, 튼튼한 대를 잘 다듬어 새신랑을 만든다. 그러고는, ‘너는 어멍(엄마), 나는 아방(아빠)’ 하면서 흙으로 밥 짓는 척도 하고, 풀새각시가 아기를 낳으면 대를 짧게 꺾어 만든 아기들을 데리고 새신랑과 새각시는 함께 소풍도 갔다. 그렇게 단란한 가족을 꿈꾸며, 평화롭게 사는 상상을 하며 꼬마들은 자란다.

하지만 할망의 ‘풀새각시’는 살면서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만났다. 많은 일들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아야했다. 4.3사건이 나고 전쟁이 나고, 사랑하는 이가 예상치 못하게 내 곁을 떠나더라도, 오로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온몸을 바쳐 사는 삶. 그것이 바로, 풀새각시를 하며 놀던 소녀의 미래이자, 할망의 과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냥 다 그런 거다’, ‘살당보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게 된다)’, 하며 자신을 위로하며 산 것도, 백발백중 자식들을 위해서다.

그렇게 살았더니 할망은 어느새 드넓은 양배추 밭을 경운기로 활주하는 여사장님이 되어있다. 성공은 그렇게 뒤늦게 그녀를 찾아왔다. 여든을 바라보며, 이제는 그저 건강하게 살다 가는 게 꿈이라는 할망. 그녀와 마지막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 할머닌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어요?”
“사람은 죽으면 끝. 다시 태어나면 무시겄도(무엇도) 안 되어.”
“저는, 사람 말고 큰 낭(나무)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이신디(있는데)….”
“낭? 큰 낭은 인내하는 거주게(거지). 가지 끊어당(끊어다가) 사람 살리는 거 아니가? 좋은생각이다만, 다시 태어날 생각 말고 지금부터 겅(그렇게) 살라. 그추룩 베풀고 살당보민(그렇게 베풀고 살다보면) 부자 되곡 성공헌다. 경허고(그리고) 결혼은 꼭 허라이(해라). 나 하나로 세상에 나온 사람이 스물이라, 손주까지 합쳥이네(합쳐서). 촘으멍 살당 보민(인내하며 살다 보면), 다 살아지는 거라. 이녁 그림자만 이녁이 잘 만들엉 살암시민 돼.(자신의 그림자만 스스로 잘 만들고 살면 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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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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