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칼럼] 국민의 인권·민주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의 지배가 필요한 시점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그래서 법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법에 구속되는 정치가 요구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국가(또는 지방)권력을 행사하는 경우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그 범위 안에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특히 공직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선출직 공무원일지라도 자의적 판단을 내세워 단순히 법의 형식만 빌려 통치라고 우겨대는 것 또한 법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단순히 법의 형식만을 빌린 통치행태는 전제(專制)왕정국가나 독제국가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 민주 법치국가에서의 법치와 통치 불가분의 관계이다

국민이 기대하고 헌법이 요구하는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마도 실질적 법치를 숭상하고, 법의 이념에 따라 국가질서가 형성되도록 하는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국가(또는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집단적 이익을 우선하는 국가적(또는 지역적)공공성보다는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 하는 민주적 공공성의 가치가 높게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이런 통치가 되기 위해서는 정의(正義)에 부합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법, 국가(또는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생활에 안정성을 배가시켜줄 수 있는 법, 적용해석에 있어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설정된 법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법의 예측 가능성은 정의와 더불어 법치의 가장 핵심적 요소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어떤 법을 지키고 그에 복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정당해서 국민이 그 법집행에 대하여 당연하게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당한 법일지라도 국민이 그러한 법이 있다는 것과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면, 국민이 그 법을 지키는 것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법치의 출발은 당연히 입법기관에서의 민주적 입법과정을 전제로 한다. 즉, 국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입법기관이 법을 만들고 그런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법이 시행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투명하게 모든 국민에게 공개될 때에만 법의 예측 가능성은 그에 비례하여 더욱 투명해 질 수 있다.

#  법치와 정치 이중적 관계이다

입법기관이 비정상적인 기능적 혼란 속에서 국민은 법에 대해, 그리고 그 법과 얽혀 있는 정치에 대해 어떠한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는 누구도 확실히 그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이른 상황은 국민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서 평소 느끼는 거리감과 거부감에 기인한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이나 범주를 벗어나 정치권이 사고하고 통치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인 각자의 정치적 주장이 실제로 옳은지 그른지 여부를 떠나서 보편적 사고로는 예측할 수 없고 일반적 이해력으로는 통찰 할 수 없는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 그 주된 이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떻든 우리나라 정치가 법치의 근간으로서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민주적 공공성 확장에 혁혁한 기여를 하여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기여에 대한 국민적 평가를 통해서 민주적․실질적 법치국가 실현에 정치가 그 존재가 각인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정치권은 헌법과 국회법 등 이미 정해진 룰(rule)에 따라 움직이면서 예측 가능한 정치를 국민에게 일상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예측하지 못하는 수단이라도 동원하겠다는 정치인들의 안이한 입법 활동 등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게다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에 의해 펼쳐지는 예측 가능한 정치를 통해서, 가능하다면 국민 편에서 민주적 공공성을 최대한 극대화하려는 입법자로서의 본분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즉, 이렇게 하는 것이 공직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 스스로가 주장하는 법치의 출발점이자 민주적 공공성 실현에 봉사하는 정치인의 본분임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민주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치주의 아직도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법치주의는 순항하고 있는가? 각자 주어진 관점에 따라서 달리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순항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국회도 지방의회도 형식적 법치 실현을 법치의 본질인양 하며 무수한 법률이나 조례 등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는 정파 간의 타협을 통한 입법을 무시하거나 특정 정파의 일방 의사결정을 국민의 총의로 간주하여 날치기로 만들어진 입법도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런 사례들은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일련의 각종 개혁조치나 공약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경우에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우 대개는 정당한 입법절차가 무시되기 일쑤이다. 아울러 이런 경우  힘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이든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실질적 법치주의가 실현되기를 원한다면 입법기관은 다음의 몇 가지를 감안하여 입법하는 것을 그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첫째로 입법기관은 우리나라가 왜 자유민주주의국가 이어야 하는지를 되짚어 봐야 한다. 둘째로 입법기관은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 하에서 국가권력도, 헌법과 법률도 인간,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최대한 신장에 봉사하는 하나의 핵심적인 수단들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로 입법기관은 왜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어야 하는지를 되물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정부가 각종 개혁조치나 치적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권력자의 자의적인 지배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법과 정의의 지배 하에서 국민전체에 대하여 봉사하여야 하는 권력자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에 기여하여야 하는 책무에서 불가피하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원칙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입법에 따라 권력기관은 국민과의 관계에서 정당한 목적 범위 안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신의 권한을 정정당당하게 행사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권력기관은 국민의 인권과 정의의 편에 서서 민주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의 지배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사실적 지배보다 우위에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의 중앙정치권력기관이나 지방권력기관의 권위적인 행태에 비추어 이런 중요한 이치가 통치과정이나 행정과정에서 전혀 무시되거나 방치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민주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의 지배를 자신의 업적과 치적을 쌓아가는 데는 전혀 불필요하고도 성가신 제도 정도로 폄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례들을 보게 된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법치는 보다 성숙되지 못한 채 아직도 위기상황에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형식적 법치를 내세운 과도한 권력 작용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집단이익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통제되지 않은 채 남용되고 있는 사례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 제주개발에 있어서 법치주의 위기상황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제주개발에 있어서 민주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치주의는 어떤가? 현실적으로 속단할 수 없으나 제주자치도의 지위ㆍ조직 및 행정ㆍ재정 등의 운영에 대하여 정하고 있는 제주특별법상 제도의 내용과 그에 따른 개발사례 등에 비추어 심각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첫째로 제주특별법상 제도들은 주로 도민의 직접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보다는 행정의 권한강화와 그 절차의 편이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점에서 제주특별법은 집단적 이익을 우선시 하는 지역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제주특별법상 예컨대 토지비축제도, 제한적 토지수용제도 등은 투자자 이익을 우선 고려하는 제도들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집단적 이익을 우선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제주개발을 계획목표년도에 기대가능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투자자를 우선 배려하고 이들을 위한 투자여건을 보다 바람직한 상황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수 있다. 더욱이 국내외 자본가들의 투자를 통해서 지역총생산규모(GRDP)을 크게 함은 물론 도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왜 잘 못인가라는 문제제기 또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필자가 민주적 공공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우려하는 것은 행정이 주장하듯 고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광서비스산업분야에 투자하는 국내외 자본가들에게 제도상 특혜적 배려를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기대하는 만큼 지역경제여건이 호전되거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관광산업이 꾸준히 성장하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관광수입의 역외유출 등이 지속되는 경우 특혜를 입은 자본가들의 사업을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반드시 순기능적으로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 강정해군기지 건설 사업의 경우 법치행정을 준수하는 입장에서 제주자치도는 처음부터 엄격하고도 신중이 대처했어야 옳았었다. 사실 강정해군기지 건설사업 문제는 행정의 잘못된 자의적 판단을 지방의회의 정당절차와 방법을 무시한 채로 표결로 받아들인 결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이다. 또한 그 추진과정에서“지역 주민의 민주적 공공성과 국방이라는 국가적 공공성”이 충돌한 국가적 갈등사건 중 하나이다. 게다가 제주개발에 있어서 법치라는 관점에서 민주적 공공성이 크게 훼손된 대표적 사례 또한 강정해군기지 건설 사업이라고 할 것이다.

최근 지역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새로운 정부 차원에서 1조원 규모의 지역개발자금 지원을 조건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원안대로 궁색한 이유를 내세워 소위 민·군 복합 항을 건설하는 것으로 귀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전망이 기정사실화 될 경우 무엇보다도 당초 해군기지 조성에 따른 제주자치도의 섣부른 개발사업 승인에 대항하여 줄기차게 발설되었던 해당지역 주민들의 주장은 경험에 비추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정부차원에서 보듬어지게 되는 민주적 공공성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제주역사는 아마도 강정해군기지 건설 사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할지 모른다. “국가적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중앙정부가 지역개발명분으로 하사한 1조원 정도의 집단이익을 학수고대하고 우유부단하며 탐닉하였던 2010년대 제주자치도와 도의회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곧바로 개발사업 추진을 승인하였다. 물론 그 추진과정에서 다소의 지역주민에 의한 논란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도민이 합심하여 국방이라는 국가적 공공성 강화를 염원하였기에 이에 정부는 도민의 이런 높은 뜻을 받들어 여기 강정에 해군기지를 세우다.”로 기록할지 모른다.

▲ 백승주(고려대 지방자치법학연구회 회장)C&C 국토개발행정연구 소장

60여년이 지난 후에야 도민들은 겨우 4.3평화공원 전시실에서“해방 정국에서 국정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반공에 입각한 국가적 공공성 강화를 위하여 4.3은 불가피했다.”라는 요지의 구체적 사실을  읽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도민들은 앞으로 강정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진 해군기지기념관에서 4.3평화공원 전시실에서 느꼈던 처절함으로 강제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재차 읽어 나갈 운명을 맞게 될지 모른다. 게다가 미래세대는 언젠가 개발문제를 사람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물질(돈)의 문제로 보았던 기성세대의 경솔했던 행태를 나무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기록하고, 역사는 미래에 현재를 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백승주(고려대 지방자치법학연구회 회장)C&C 국토개발행정연구 소장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