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여행가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21)

어제 맥주도 좀 마시고, 많이 걸었던 탓에 피곤했는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리모콘으로 TV를 켜니 중국CCTV의 뉴스가 나오고 있다. 아나운서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지만 밑에 중국어 자막이 있어서 대충 알 수 있었다. 배추를 비롯한 채솟값 폭락이 주요뉴스였다. 중국에 온 첫날 칭다오에서 본 신문에서도 배춧값 폭락이 주요뉴스였는데 이젠 전국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일본 지진과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뉴스와 리비아 사태를 전하고, 콜롬비아에선 산사태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재해를 당했다고 한다. 중국 연예인들의 대마초 사건이 터지고….

7시가 넘어서 컵라면과 가이드북을 들고 옥상 테라스카페로 나왔다. 날씨는 맑고 아침공기가 상쾌하다. 가이드북을 들춰보며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그리고 오늘 가야 할 창사와 창사에서 멀지 않은 마오쩌뚱의 고향 사오산, 그리고 장강유람을 포기한 대신 동정호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창사에서 우한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위에양을 들러서 그 유명한 동정호와 악양루를 보고 하루 머물러야겠다고 작정했다.

어제 빨아 널었던 양말과 속옷들이 아직 덜 말라 눅눅했지만 배낭속에 챙겨넣고, 하룻밤 신세진 유스호스텔‘노가객잔(老街客棧)’을 나왔다.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어제 봤던 벼룩시장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 발길을 옮겼다.

8시가 좀 넘었을 뿐인데 시장은 벌써 좌판이 가득 들어서 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제 무심코 지나쳤던 좌판의 물건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훑어보며 골목을 따라 내려갔다. 어김없이 마작방도 문을 열어 아침부터 성업 중이다. 계란을 파는 곳에 검정색으로 된 커다란 계란이 있어서 중년의 여인에게 물었다.

“쩌스썸머(이것이 뭡니까)?”
“피단, 피단(皮蛋).”

▲ 상점에 진열된 피단. 썩은 계란이라는 뜻이다. ⓒ양기혁

 

▲ 상점에 진열된 피단. 썩은 계란이라는 뜻이다. ⓒ양기혁

피단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지 이름이 조금씩 다르게 분류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옆에는‘옌단’이라고 쓴 것도 있는데 계란을 소금에 절였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어제 포장마차에서 맛있게 먹었던 피단이 이 시커멓게 썩힌 계란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골목의 끝에 이르러 구직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갔다. 한 청년에 게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자오 꽁줘(일을 찾고 있다.)”하고 대답한다. 그는 요리사인 모양이다. 카메라로 그가 들고 있는 종이를 찍자 다른 사람도 와서 자기 것도 찍어달라며 내민다.

▲ 우연히 만난 중국 청년이 구직을 희망하는 팻말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양기혁
▲ 우연히 만난 중국 청년이 구직을 희망하는 팻말을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양기혁

큰길로 나와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충칭항에 들렀다 터미널로 가자고 했다. 어제 장강유람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바람에 근처까지 갔다가 정작 충칭항은 보지도 못했다. 기사는 충칭항이 바라다보이는 강변에 택시를 세워줘서 아침 안개에 쌓여 희미하게 보이는 장강의 항구를 잠깐 바라다보았다.

다시 택시에 올라 터미널로 향하는데 택시기사가 나에게 관심을 나타내며 물어본다. 그의 발음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단어 몇 가지로 추정컨대 다음은 어디로 여행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나는 창사로 간다고 말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워씨왕칸마오쩌뚱짜이창샤(창사에서 마오쩌둥을 만나고 싶다).”
“웨이썸머?”마오쩌둥을 만나려면 베이징에 가야지 창사에는 왜 가느냐고 묻는 것이다.
“짜이창사 마오쩌둥 추셩러, 타더 꾸샹.(창사가 마오쩌둥의 고향이다.)”마오쩌둥의 고향은 창사에서 조금 떨어진 사오산(韶山)이란 작은 마을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그의 반응을 살폈다. 마오쩌둥 얘기에 호의내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별 감흥이 없는 듯 덤덤한 표정이었다.

충칭역에 도착해서 그는 나를 돌아보며“알알.”하고 말했다. 20원으로 알아듣고 돈을 건네주니 그가 다시“알알.”하며 2원을 더 달라고한다. 22원을‘알스알(二十二)’이라 하지 않고‘알알(二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 아침 안개에 쌓인 충칭항. ⓒ양기혁

택시에서 내려서 터미널로 들어가는데 시간은 9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었다. 역광장의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가이드북엔 중국의 곡창지대이며 공업도시인 창사는 인근의 마오쩌둥 고향인 사오산 외에는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다는 이유로 외국 관광객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고 쓰여 있는데 나는 마오쩌둥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그곳을 꼭 방문해야 했다.

신중국의 탄생 이후로 마오쩌둥의 카리스마는 중국 인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왔는데, 사후 35년이 돼가는 지금 그의 고향 사오산에서 마오쩌둥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창사에서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고, 초기 공산주의 혁명활동의 근거지이며 세력을 키워갔던‘징깡산’과‘루이진(瑞金)’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사오산에서 마오쩌둥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창사까지 가는 고속버스는 내부가 앉아가는 좌석이 아니라 누울 수 있게 침대로 되어 있었다.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에서는 버스 좌석도 침대로 만들어 누워서 긴 여행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아래위가 2단으로 된 침대가 버스 안에 세 줄로 놓여 있어서 통로는 몹시 비좁았다. 배낭을 메고 차에 오른 나는 어깨에 멘 배낭이 걸려서 통로를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배낭을 벗어서 머리 위로 올리고 겨우 통로의 짐들을 헤치고 지나갈 수 있었다.

청두에서 충칭까지 버스가 네 시간 남짓 걸렸으니까 지도상으로 두 배 조금 더 멀어 보이는 거리인 충칭에서 창사까지는 10시간에서 12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그래서 12시 출발이니 창사에 한밤중에 도착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다.

▲ 좌석이 침대인 고속버스. ⓒ양기혁

창사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아침 6시, 동이 터오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청두에서 충칭까지는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린 반면 충칭에서 창사까지는 처음에 조금 고속도로를 달리다 포장이 잘 되지 않은 시골길과 울퉁불퉁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갔던 게 아닐까. 덕분에 한밤중에 호텔을 찾아가야 하는 염려는 덜었지만 어둠이 깊어지고 잠이 들 무렵에는 비포장 길을 달리는지 버스가 덜컹대며 흔들려서 모진 고문을 하는 듯이 온몸이 함부로 난타당하는 느낌이었다. /양기혁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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