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0) 가믄장 아기 여성

가믄장 아이는 다양한 영역에 호기심을 가지기 보다는 한 가지 영역에 호기심을 가지고 몰두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학급의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과 생각이 맞는 몇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영역에 열정적으로 탐구하며, 호기심을 보이는 친구들을 선도적으로 모아낸다. 책상 정리가 끝날 때까지 친구를 기다리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가는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는 달리, 그녀는 마음도 행동도 오손도손 하지 않아서 선머슴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버리는 문제들에 끊임없이 파고들어 엉뚱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 야니케 시스타드 야콥센 감독 <너무 밝히는 소녀 알마>.(사진제공, 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 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집중으로 친구들에게 변태로 알려지며 왕따를 당하는 명랑 엉뚱 소녀 알마.

관계가 만들어내는 생산과 창조성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생산과 창조성이 가믄장 아이에겐 쉽다.

이 아이들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들을 잘 해내는 소꿉놀이나 부부놀이보다는 자기에게 집중해서 성과를 내는 만들기나 달리기를 더 잘할 것이다.

학급의 일을 의논하는 데 있어서도 같이 모여 계속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방법을 도출해내는 것보다는 무엇인가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이디어를 가지고 관계 안으로 들어 올 경우가 많다.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옆의 친구들을 자극시키고 추동해내면서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바지만 입고 뛰어다닌다고, 여자아이답지 못하다고 아무리 해봐도 가믄장 아이는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다. 자아가 강한 가믄장 아기에겐 문제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어울리는 방법이다. 형식을 거부하고 본질적인 실천을 중요시하는 딱딱함, 아무도 긴장하지 않는 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날카로움, 확장적 사고력과 같은 가믄장 아이의 위대한 영웅성은 세상을 바로 가게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자신의 선그믓을 주장하다가 쫓겨난 가믄장여신처럼 가믄장 처녀들은 어떤 계기가 있을 때면,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점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보일 것이다. 여자인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제약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일 것이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위해 일과 경제력의 성취는 이 가믄장 처녀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가믄장 처녀는 짧은 머리에 티셔츠를 면바지에 담아 입고, 서류파일을 들고 잠깐만요~를 연발하면서 열심히 뛰어다닐 것이다.

이런 그녀는 사회문화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방향지어 져 온 예쁜 얼굴과 하얗고 긴 손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미 말했듯이 그녀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상냥하고 친절한 모습, 수줍고 약해 보이는 모습, 애교와 웃음을 띠다가도 일견 앙칼진 밀고 당기기의 모습들은 그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가믄장 처녀는 본질적인 가치, 일에 집중한다. 형식과 외형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김정숙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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