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진의 제주음식이야기] 제주의 명절음식 '떡'

'떡'이라는 음식이 한국 음식과 제주의 전통음식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불교와 유교적 사회 통념이 복합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용 음식으로 첫 손 꼽는 것이 바로 떡이다.

특히 떡은 수확을 의미하며 가장 중요한 수확의 결실인 곡식을 조상님께 또는 신에게 바치는 방법으로서 떡의 조리방법을 개발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대로 농경사회를 지속해온 우리민족에게 곡식은 그 어떤 수확물보다 소중할 수밖에 없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대표 격인 쌀을 치대고 농축해서 만드는 떡은 소중함 그 자체로 인식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 양애떡. ⓒ양용진
▲ 지름떡. ⓒ양용진

결국, 떡은 우리의 소중한 전통음식임에 틀림이 없으나 쌀이 귀한 시기에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음식이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 음식이라 하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관혼상제 등의 통과의례에는 반드시 떡을 괴어 놓아야만 했기 때문에 경제적 빈곤을 안고 살아가는 서민들은 제사와 명절 차례 등을 치르기 위해 쌀 계를 조직하거나 매끼에서 조금씩 떼어 모아두는 지혜를 발휘하곤 하였다.

이처럼 소중하게 대접 받던 떡의 역사는 밥, 죽과 함께 곡식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곡식을 익혀먹기 시작한 시기를 기원전 2-3천년 경 신석기시대로 추정하는데 이시기에도 곡식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서 ‘지지는 떡(전병)’으로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기원전 1천 년 전 유적에서 떡시루가 발견되어 본격적으로 쪄서 먹는 떡 문화시대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철기 문화시대에 이르러서는 농업기술이 발달하여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지진 떡(부꾸미, 화전, 지름떡 등), 찐 떡(시루떡, 송편, 설기 등), 친 떡(인절미, 절편), 빚는 떡(송편, 경단), 찍는 떡(절편) 등 다양한 떡이 존재했다고 전한다.

▲ 중과. ⓒ양용진
▲ 송애기떡. ⓒ양용진

또한 국제적으로 살펴보면 떡 문화는 아시아 3국(한국, 일본, 중국)이 가장 발달했다. 중국은 밀가루를 이용한 떡이 발달하여 밀떡과 쌀떡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일본은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여 쌀과 앙금을 결합한 떡이 발달하여 ‘화과자(和菓子)’라는 자기들만의 전통 떡 문화를 이어가고 있고 한국은 멥쌀을 주로 이용하면서도 찹쌀과 밀가루까지 고루 이용하고 제조방법에서 다양성이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표기방법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전병’에서 떡을 뜻하는 ‘병(餠)’이라는 단어가 떡을 뜻하고 ‘절편, 송편’ 에서처럼 ‘편(䭏)’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오직 ‘밀떡’만을 ‘병’이라 표기하고 쌀떡은 떡‘이(餌)’자를 써서 “까오”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떡을 만들었던 전통은 지역 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큰 맥락에서 전국 공통의 유사한 풍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선 새 생명이 태어나면 삼칠일이 지나서 신성한 의미를 갖는 백설기 떡을 돌려 자축하고 백일잔치에는 백설기 떡과 함께 붉은 팥고물을 묻힌 수수경단을 만들어 액을 막고 만물의 조화를 의미하는 오색 송편을 만들어 백 집과 나누어 먹어야 아기가 무병장수 한다는 전통이 있었다. 첫돌에는 액막이 떡으로 수수경단을 만들어 먹거나 시루떡을 쌓아 진설 하는데 과거에 손이 귀한 집에서는 10살까지 매년 만들어 먹었다고 전한다.

서당을 다니면서도 책례(책거리, 책씻이)를 치를 때는 오색 송편을 만들어 훈장님과 학동들과 나누어 먹었고 결혼을 할 때는 예단을 주고받을 때 양가가 모두 시루떡을 찌는데 이것을 봉치 떡, 봉칫시루라고 하고 부부금슬이 좋으라는 의미로 찹쌀 석 되와 액막이 붉은팥 한 되를 고물로 만들어 쓴다.

▲ 솔변. ⓒ양용진
▲ 메밀물떡. ⓒ양용진

혼례 예식 때는 흰 절편을 둥글게 빚어 달처럼 둥글게 살라는 의미로 달떡을 21개씩 두 접시로 쌓아 올리고 두 가지 색 절편을 같이 담아 부부의 화합을 나타내며 회갑 상에는 갖은 편이라 해서 백편, 꿀편, 화전, 주악, 오색단자, 부꾸미 등 온갖 떡을 차려 마을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렇다면 제주에서는 어떤 떡을 만들어 먹었을까? 제주의 떡은 집안의 제사나, 생일, 혼례등의 대소사에 만들어 먹는 일반떡과 명절때 차례상에 올리는 제례떡, 그리고 무속신앙인 굿판에서 쓰이는 무속떡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면 은근한 재미가 있고 이채롭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명절 차례상에는 땅과 하늘과 해와 달과 별을 의미하는 떡을 한 접시에 차례로 담아 올린다. 상가집에서 만드는 오편(五䭏)인 침떡, 절병, 곤떡, 새미떡(혹은 지름떡), 은절미 등은 인체의 모습을 상징하며  제례떡도 일, 월, 성, 운, 무(日, 月, 星, 雲, 霧)의 상징을 나타낸다. 제편, 메밀 은절미, 절변, 솔변, 우찍 등이 땅과 밭, 해, 달, 별로 표현되고 있어 나름대로 우주 삼라만상을 뜻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떡들도 모두 다 나름대로의 상징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등절비. ⓒ양용진
▲ 방울떡. ⓒ양용진

더 재미있는 것은 동서남북 지역별로 또는 집안 별로 같은 떡의 이름이 다른 것이 많으며 같은 이름의 다른 떡도 많다는 것이다.

또한 제주 떡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주재료의 다양성이라 할 수 있겠다. 워낙 쌀이 귀했던지라 넉넉지 않은 쌀을 대신하여 메밀과 보리, 조, 밀, 고구마 등의 재료로 떡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점이 오히려 떡의 맛을 다양하게 만들고 또한 전국 어느 지방보다 다양한 떡을 만드는 효과를 보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 재료는 쌀과 다른 재료의 성질 때문에 쫄깃거리는 특유의 치감을 느낄 수 없어서 사실상 떡으로서의 품질은 우수하다고 할 수가 없겠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다양한 재료의 사용은 새로운 경쟁력으로 제주 전통 떡의 가치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겠는데 특히 메밀을 이용하는 떡은 다른 지방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조리법이며 차조로 만든 오메기 떡은 이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 빗상외떡. ⓒ양용진

 

▲ 벙것떡 . ⓒ양용진

위의 표에서 일반떡으로 분류한 떡도 사실상 특별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사실상 행사떡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 그리고 일반떡도 제례용 떡으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에 그 용도 분류는 무의미 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강정, 요애, 과질 등은 떡이 아닌 한과로 분류되지만 다른 지방처럼 한과가 다양하게 존재하지 않고 또한 용도가 떡과 매한가지이므로 별도로 분류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떡 가운데 특이한 제주의 떡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빙떡을 필두로 메밀로 만든 납작한 사각형의 은절미, 보리빵의 원조로서 상웨라는 밀가루와 누룩으로 만든 단술(막걸리)로 반죽해서 부풀린 상웨떡, 기름에 지지는 떡으로 가장 달콤한 지름떡, 조와 고구마를 이용해서 만드는 시루떡인 조침떡, 고구마 빼대기 가루와 팥으로 만드는 감저 침떡, 수수와 팥으로 만드는 대죽침떡, 차조로 만들어 팥고물을 듬뿍 묻혀 먹는 오메기떡, 쌀로만 만들어 그 색이 하얗고 고우며 경단을 눌러 놓은 듯 한 곤떡, 절간 고구마로 만든 빼대기떡, 그리고 타 지역과 달리 보름달 모양으로 만드는 송편 등이 있다.

그 이름도 생소하고 재료도 생소한 떡들이 참으로 다양함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이 가운데 극히 일부의 떡 만이 만들어 지고 있는데 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 가정의례 간소화 정책을 펼치며 집안 대소사에 떡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십여년 정도의 기간 동안 떡을 만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간 것이 원인이라 하겠다.  

▲ 간저침떡. ⓒ양용진

  
일부 지방에서는 간혹 주술적 의미 외에 간식으로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저자거리의 떡 장사들이 바로 간식으로서의 떡을 판매하였고 때로는 밥을 대신한 별식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쌀이 귀했던 제주의 떡은 오로지 행사를 위한 음식으로서 아무 때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집안의 대소사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만큼 쌀을 비롯한 곡식의 중요성은 어느 지역보다 높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표에서 보다시피 다양한 떡이 존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제주사람들이 기원의식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또 한 가지 제주 떡의 특징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제주의 전통음식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기교도 찾아볼 수 없고 호사스런 재료도 없는 매우 단순하고 담백하다는 것이다. 다른 지방의 경우 찹쌀을 풍부하게 이용하고 조청이나 꿀, 설탕 등을 많이 이용하여 달고 맛있는 떡이 많은 반면 우리네 제주 떡은 그런 떡이 별로 없고 심심한 맛이 오히려 매력인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주술적의미가 가장 강한 무속떡은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일체의 다른 재료를 섞지 않고 쌀가루나 메밀가루 단일재료만을 이용하여 만든 것을 보면 이 또한 제조과정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고 또 하나의 문화적 가치라고 하겠다.   

제주 떡의 가치. 우리가 맛있는 떡을 찾아서 궁중의 떡과 경기도의 떡, 강원도의 떡, 경상도의 떡에 우리의 입을 맞춰가는 동안 제주의 떡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거론했듯이 떡은 의미를 가진 음식이었기에 우리의 떡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그 의미도 사라진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간혹 제주 농촌의 몇몇 떡집들이 아직도 몇 가지 전통 떡 들을 계속 지켜오고 있다는 것인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떡집들을 발굴하여 전통 떡 재현 업소로 지정하고 홍보해 주면 계속 이 고유의 떡 문화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듯이 옛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소중한 민속자원이 바로 제주의 떡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용진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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