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길을 묻다] 16 걷는다는 것은 실존의 기쁨이요, 진리(우주)와의 소통

일본의 천년고도(千年古都), 정신수도(精神首都), 교토(京都 Kyoto).

8세기부터 1868년 메이지유신과 함께 도쿄로 천도하기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 잘 간직되고 보존된 문화유산과 전통으로 연간 5천만명이 찾는 문화관광도시.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교토의정서, 교토협약 등으로 더 잘 알려진 녹색도시. 일본인의 정신고향 교토가 문화와 유산의 자존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교육, 그리고 녹색환경이 어우러지는 인간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 교토시내에서 일상으로 만나는 물길. ⓒ송재호

교토시내를 이틀만 돌아다녀도 자신도 모르게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여유로와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쁘고 빠른 현대문명의 스트레스에 찌든 관광객들이 그래서 5천만명씩이나 이 도시를 찾는지 모른다.

2천개가 넘는 사찰과 신사(神社),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 찾기쉽고 잘 갖춰진 관광인프라. 현대도시로서의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투박한 전통미와 깨끗한 정경이 나그네의 마음을 한없이 편하게 어루만져 준다. 교토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지이다.

교토 걷기의 시작은 여행자들이 도착하는 교토역에서 출발한다. 교토의 유서깊은 이미지와는 달리 교토역은 첨단기술로 설계된, 포스트 모던한 현대건축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 교토역 내부모습. ⓒ송재호

교토역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걷기를 십여분, 일본 정토신앙의 본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와 히가시혼간지 그리고 1천2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도지(東寺)를 만난다. 1292년 창건된 니시혼간지는 교토역에서 북서쪽으로 10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와는 10분 거리.

▲ 교토 니시혼간지. ⓒ송재호

교토의 도로는 중국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을 모방하여 만든 것. 동서로 9개의 대로가 있고 남    북으로 다른 도로들이 교차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히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고 명소들을 찾기가 쉽다. 교토의 길은 동쪽 히가시야마(東山)의 시로카와도리(白川通), 히가시오지도리(東大路通), 가와바타도리(川端通), 가와라마찌도리(河原通), 카라스마도리(烏丸通), 호리카와도리(堀川通), 센본도리(千本通), 니시오지도리 (西大路通)등이다.

그리고 동서로 난 길은 북쪽에서부터 기타오지도리(北大路通), 이마데가와도리(今出川通), 마루타마찌도리(丸太通), 오이케도리(御池通), 시조도리(四條通), 고조도리(五條通), 시찌조도리(七條通), 구조도리(九條通), 쥬조도리(十條通) 등이다. 이 큰길 사이사이에 많은 작은 길들이 연결되어 있다. 길을 둘러싸고 일본 전통 양식으로 지은 사찰과 신사,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 교토. ⓒ송재호

 

▲ 교토. ⓒ송재호

 

▲ 교토 시내거리. ⓒ송재호

다시 더 북동쪽으로 길을 재촉하면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 1164년 창건되고 1266년 재건된 천태종 사찰로 지상 16미터, 깊이 22미터에 남북 120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크기의 본당이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아홉개의 얼굴과 천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음좌상을 중심으로 1001체의 천수관음 입상이 안치되어 있다.

 

▲ 교토 산주산겐도. ⓒ송재호

동쪽으로 길을 더 가면 교토의 명물 `오토와산 언덕길`을 오른다. 여기에서는 교토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산 중턱에는 세계문화유산 명찰 기요미즈데라(清水寺)가 자리하고 있다. 기요미즈데라 법당은 139개의 굵고 튼튼한 나무 기둥 위에 세워져 있다. 본당 아래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그 밑으로는 샘물이 흐르고 있어 낭만적 분위기. 기요미즈데라로 올라가는 언덕길은 그 자체가 명소이다. 좁은 언덕길 양편으로 전통 찻집과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으며 작고 아담한 일본의 옛 가옥들과 조화를 이루어낸다.

▲ 교토. ⓒ송재호

 

▲ 교토. ⓒ송재호

이 산책길을 따라 계속해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기온(祇園)에 다다르게 된다. 기온은 천년 고도의 분위기와 함께 교토의 다양한 문화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오밀조밀하게 이어진 골목길 양편에는 아주 오래된 식당들과 찻집, 그리고 기모노 차림의 게이샤들이 출입하는 술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밤이 되면 고급 주점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히고 거리를 오가는 게이샤들이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 교토 기온. ⓒ송재호
▲ 교토 기온. ⓒ송재호

 

▲ 교토 기온. ⓒ송재호

교토에는 특별한 길이 있어 눈길을 끈다.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을 거쳐 더 북동 방향으로 올라가면, 나무들이 길을 따라 심어져 있고 작은 수로가 흐르고 있는 소담스러운 길이 나타난다. 이 길이 바로 ‘철학의 길’. 1.8Km에 이른다. 철학의 길은 에이칸도(永觀堂)를 거쳐 긴카쿠지(銀閣寺)까지 이어진다. 길을 따라서는 교토의 민가들과 전통적인 상점, 찻집, 잡화점들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상점에서 교토의 기념품을 사거나 찻집에서 지친 다리를 쉬어 가도 좋다.

 

▲ 교토 철학의 길. ⓒ송재호
▲ 교토 철학의 길. ⓒ송재호

 

▲ 교토 철학의 길. ⓒ송재호

 

▲ 교토 철학의 길을 나서서 은각사 입구. ⓒ송재호

1950년대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무대로 유명한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도 '철학의 길'을 걸을 수 있다. 하이델베르그 구시가지 마르크트 광장을 지나 고성이 올려다 보이는 붉은색의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 20분쯤 언덕을 오르면 괴테, 헤겔, 야스퍼스 등 쟁쟁한 독일 철학가들이 걸으며 사색(?)했다는 '철학의 길'이 나온다.

▲ 하이델베르그 마르크트 광장.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구시가지 거리.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구시가지 성당.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구도심에 바라다본 고성.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카를 데오도르 다리. ⓒ송재호

 

▲ 카를 데오도르 다리를 건너 바라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서면 '철학의 길'로 들어선다.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로 올라가는 돌계단.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로 올라가는 돌계단.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표지.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표지.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송재호

 

▲ 하이델베르그 '철학의 길' 표지. ⓒ송재호

 

▲ '철학의 길' 걷는 중 바라본 하이델베르그 구시가지 카를 테오도르 다리와 고성 전경. ⓒ송재호

 

▲ '철학의 길' 걷는 중 바라본 하이델베르그 전경. ⓒ송재호

걷기여행은 일상을 탈출하는 것이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순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오래된 미래’에 온전히 녹아드는 것이다. 여행에도 기술이 있다면 ‘걷기야말로 가장 고전적이고 세련된 여행기술’이다.

길을 걷는 것은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의 기쁨이다. 일찍이 동양의 명의 허준도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 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하여 걷기의 효용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걷기는  무위(無爲), 이른바 길을 걸으면 그냥 걸을 뿐이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로 청정한 무심(無心)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직관의 형태로 우주와 진리와의 접촉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소요(逍遙) 철학’의 이름으로, 또 성직자들이  ‘순례(巡禮)’의 이름으로 길을 걸었는지 모른다.    

실존의 기쁨, 우주와의 컨택(contact)을 원한다면 걸을 일이다. 걷고 또 걷고, 마음에 희열이 차오를때까지. / 송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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