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넙빌레 바닷가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여름 저는 고향에서 들려오는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주 화순항 해군기지 건설이 지역 주민반대로 추진이 어렵게 된 틈에 제 고향마을 주민들 중 일부가 해군기지를 제 고향마을에 있는 '넙빌레' 바닷가에 유치하겠다고 신청했다는 겁니다.

▲ 넙빌레 바닷가
제 고향마을은 서귀포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져 있는 위미(爲美)라는 마을이고, '넙빌레'는 위미 바다의 서쪽 끝에 위치한 해안지명입니다. '빌레'는 제주도 사투리로 '자갈', '돌' 등을 뜻하는 말이고, '넙'은 '넓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넙빌레'는 '넓은 자갈마당'이나 '넓은 돌무더기 터'를 의미합니다.

▲ 넙빌레에는 돌과 바위가 많습니다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넙빌레'에 카메라 들고 가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넙빌레에서 바라본 지귀도(地歸島)의 모습입니다. 지귀도는 위미리 산 1번지로 지정된 섬으로서 일찍이 미당 서정주 시인이 다녀가면서 '정오의 언덕에서'라는 시를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며 마을 해녀들에게는 풍부한 해산물을 안겨주는 보고이기도 합니다.

▲ 넙빌레에서 바라본 지귀도의 모습입니다
넙빌레에는 그 지명이 암시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주도 문양이 새겨진 돌입니다.

▲ 제주도 문양이 새겨진 돌입니다.
이 돌은 볼펜을 꽂으면 좋은 만큼 구멍이 패여 있습니다.

▲ 구멍이 패여있는 돌입니다.
이 돌은 구멍이 관통해있고, 구석구석에 세파(世波)에 시달린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 이 돌은 구멍이 관통했습니다. 오랜 세파의 흔적을 느끼게 했습니다.
물가로 가 보니 파도와 수 만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훌륭한 조각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습니다. 간조와 만조사이에 밀물, 썰물의 드나듦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낸 깊은 물계곡이 바위 위에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계곡으로 물이 드나들고, 고동, 게 등이 미끄럼을 즐깁니다.

▲ 밀물과 썰물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바위 위에 만들어낸 계곡입니다.
제주도에서는 '보말'이라고 부르는 팽이고동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두 팽이고동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고, 다른 고동이 그 광경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 두 마리 보말(팽이고동)이 서로 애정행각에 여념이 없습니다. 다른 한 마리가 쳐다보는 모습이 측은하기만 합니다.
팽이고동과 소라게의 모습입니다. 소라게가 고동의 껍질을 빌려 생활하기 때문에 외관상 매우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생물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소라게는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몹시 경계하는 눈치였습니다. 소라게가 더듬이와 다리를 내미는 것을 촬영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라게를 제주도 사투리로 '개들락지'라 부릅니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것은 '참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멍에 숨어서 나올 듯 말듯 망설이는 모습입니다.

▲ 팽이고동(왼쪽)과 소라게(오른쪽)의 모습입니다. 소라게가 이방인을 무척 경계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난하고 배가 고플 때 우리는 늘 상 바닷가에서 팽이고동과 게를 잡아서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많은 이들이 위미리를 떠나도 저들은 늘 상 '넙빌레' 바닷가에서 주인노릇하며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들은 무심히 떠난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을 어르신들, 형제자매들, 조카님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드립니다.

넙빌레 바닷가에 돌들과 고동, 게, 소라게, 따개비가 수십만 년간 이곳을 지켜왔는데 우리가 몇 년 잘 먹자고 이곳을 파헤치고 망가뜨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넙빌레를 기억하고 사랑하겠습니까? 모두 넙빌레에 더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세요.^^

※ 장태욱 시민기자는 제주시내에서 '장선생수학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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