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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10년... 방 안에 갇혔던 그의 삶을 바꾸다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꾼다 - (4) 장애인들에게 직업을 소비자에게 건강을, 에코소랑

                                               

최근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는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함께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제공하는 동시에, 매주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사회적기업-마을기업-자활기업 등을 차례로 탐방할 계획이다. 특히 이들이 우리의 삶과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고, 우리와 직접 연관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점보롤 기계를 다루고 있는 강석현(32)씨. 그는 이제 이 기업의 에이스다. 처음에 그가 기본적인 작업도 못했다는 걸 이젠 믿기 힘들다. ⓒ제주의소리

강석현(32)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1년 예상치 못한 큰 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중상을 입게 된 것. 이 사고는 순식간에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머리에 큰 손상을 입어 뇌병변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고통이었다. 재활치료를 하면서 본인과 가족들 모두 사회생활을 위해 노력했지만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었고, 사소한 편견들이 계속 쌓여 벽을 만들고 그를 방 안에만 머물게 했다. 허무하고 아픈 시간이 10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던 2011년, 그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 한 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강씨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가 어디서 들었는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처음엔 별로였습니다”라고 말한다. 24일이면 이 직장에 다닌 지 딱 2년이 되는 그에게 지금은 어떤 심정이냐고 물었다. 그가 웃으며 답한다.  “그런데 지금은 재미있고... 괜찮아요”

그가 처음 직장에 들어올 때부터 지켜봤던 원장 박경숙(45)씨는 그의 말을 들으면 흐믓하다. 처음 몇 달간은 화장지의 지관을 끼우는 기초적인 작업도 잘 하지 못해 옆에서는 한숨을 쉬며 답답해했단다. 그래도 조금씩 기다렸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점보롤 기계를 다루는 고급인력이 됐다.

“처음에는 엄마가 깨워주고 태워다줘도 제 시간이 오기도 힘들어했어요. 쉬운 일도 하기 힘들어하고...그런데 이젠 에이스예요 다른 직원 지도, 감독도 하고 기계도 다뤄요” 박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회사가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을까?

 

▲ 원장 박경숙(45)씨는 사회적기업으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정부로부터 3년간 지원이 나오기는 하지만 인건비 일부이고, 결국은 '징징거리지 말고 품질로, 혁신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제주의소리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이던 사회복지법인 정혜원이 지난 2011년 만든 기업이 바로 에코소랑이다. 40여명의 직원 중 32명이 장애인이다.

장애인들이 지역에서 제대로 취업을 하지 못하고, 또 취업을 하더라도 일용직에 제대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염려하던 이들이 뜻을 모아 지난 2011년 3월 이 기업을 만들었다. 장애인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직업재활공간인 동시에 화장지를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장애인들이 직장에 대한 욕구는 강하죠. 하지만 하루종일 집 안에서 무료하게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 분들에게 일거리를 한 번 만들어보자 해서 설립한 게 에코소랑이죠”

당연히 시작이 쉽지 않았다. 기계를 들이고 기업을 설립하고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은 말 그대로 치열한 시장경쟁이었다. 말 그대로 봐주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행동과 판단이 느린 이들을 작업에 숙달되게 훈련하는 데 몇 갑절 시간이 많이 투자된 것이다. 이제야 막 생긴 기업인 만큼 경영하고 마케팅하는 것도 힘든데 직원 훈련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고된 일이었다. 과연 의도한 대로 될 수 있을지, 기업이 유지될 수 있을 지 걱정이 쌓여갔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을 거라고 저희도 생각한 적 있죠. 중증이라서 지금처럼 일하시게 하는데 엄청 어려웠거든요. 이렇게 잘하게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사실 처음엔 과연 거기에 서서 가만히 자기 업무를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육개월 1년이 됐는데... 깜짝놀랐어요. 방금 공장에서 일하는 거 보셨죠? 다 능숙하잖아요. 정말 저희도 기적처럼 생각해요”

강석현씨 역시 처음엔 기본적인 업무도 힘들어 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깨워주고 데려다줬는데, 일 하고자 하는 의지도 높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기다려주니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강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주말에도 여기에 오고 싶어 종종 이 앞을 맴돈다고 한다.

박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을 기쁘게 하는 점은 더 있다. 단순히 일을 잘하는 사회인이 됐다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일상 자체가 변했다는 것. 박 원장은 “졸린 눈을 비비던 그가 이젠 옷도 잘 차려입고 누가 봐도 핸썸하게 잘 꾸민다”고 웃으며 말했다.

강씨에게 이 곳에 근무하며 제일 좋은 점을 물었다. 당당히 “월급이 받게 돼서 좋다”고 말한다.

월급을 어디에 주로 쓰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랑 술 먹는다”고 답한다. 박 원장이 웃으며 그럼 어떡하냐고 채근댔다. 결혼도 조만간 하고싶다며 여자친구를 찾고 싶다는데 돈을 술 먹는 데 써버리면 어떡하냐고.

그러자 강씨가 여유있게 답한다. “적금 넣고 있어요, 걱정마세요(웃음)”

사회적기업도 기업이다

 

▲ 강석현(32)씨는 이제 이 기업의 에이스다. 처음에 그가 기본적인 작업도 못했다는 걸 이젠 믿기 힘들다. ⓒ제주의소리

이야기를 나누던 박 원장은 살며시 웃다가 매출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다소 걱정어린 표정으로 바뀐다. 모든 중소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사회적기업으로 시장 속에서 생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코소랑은 꾸준한 매출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한다. 장애인들의 처우에 걱정을 하며 만들어진 곳인 만큼 직원들에게 근무 시간 대비 비교적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준수한 기업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투자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익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유통로를 확보한 기존 기업과의 경쟁도 쉽지 않다.

박 원장은 “매출은 충분하지만 영업이익은 크지 않아요. 지속가능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한 달 한 달이 매일 불안한 부분이 있죠”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넌지시 사회적기업이니 이런 부분을 알고 소비자들이 구입해줬으면 좋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졌다. 살짝 얼굴빛이 변한다.

그녀는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사회적기업이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사달라’고 말하는 것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제품 품질이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데다 지구도 구한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하고 가만히 쳐다보자 에코소랑에서 생산한 화장지와 타사 일반 상품 두 개를 가져다 눈 앞에 내어놓는다.

“일반 화장지 제조업체들 중 눈 속임을 하는 곳들이 꽤 많아요. 얇은 원단을 사용해 이익을 남기는 거죠. 그리고 알록달록하게하게 무늬만 예쁘게 만들고, 가운데 화학약품으로 풀칠을 해 이를 보완합니다. 이렇게 하면 안의 이물질 때문에 크기가 커 보이고... 우리 제품 50m 감은 것과 타사 제품 30m 감은 게 크기가 똑같아요.

우리는 점점 이런 제품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면 이게 일단 사람의 인체에 직접 닺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게 아토피나 예민하신 아이들에게는 피해를 주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입을 닦는다던지 그럴 때 나쁩니다. 또 한 가지는 수질오염이죠. 전 국민이 이런 화장지를 쓰고 있다고 보면 환경에 치명적인 건 당연하죠”

손으로 만져보니 풍만하기는 하나 너덜너덜하다. 반응을 지켜보던 박 원장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죠. 너덜너덜해 보기엔 좀 그래도 쓰는 데 불편함은 없고 건강하거든요. 하지만 고민하다가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가자고 했어요. 우리는 사회적기업이니까. 우리가 바라는 거는 이런 것들이 확산되서 타사에서도 이렇게 눈속임하지 말고 정직한 제품을 만들었으면 해요”

취약계층을 고용과 함께 친환경 제품 생산, 그리고 이로 인한 업계의 풍토 개선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고충이 더 생긴다. 건강한 제품이지만 겉보기에 예쁜 제품이 아닌데다가 원료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 광고와 마케팅, 포장에 투자할 여유가 적다 보니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든 것.

 

▲ 에코소랑에는 32명의 장애인들을 비롯해, 취업취약계층과 일반인들이 뒤섞여 생활한다. ⓒ제주의소리

소비자 입장을 생각해 가격도 높이지 않으려다 보니 자연스레 이익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이래저래 고충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사회적 기업이니까 무조건 사야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장이 치열해요. 사회적기업이라고 봐주고 그런 거 없죠. 징징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치열하게 뛰어다녀야 하죠”

편견에 막혀 방 안에만 갇혀있던 이들의 삶에 ‘직업의 권리’를 보장하고 업계의 관행까지 바꾸려는 이들의 행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험이다. 경제적 주체로도 자립을 하게 한다. 흔히 말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전체적으로도 이익이다. 

제주도 내 장애인들이 3만명이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기업이 늘어날 경우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진심으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기업이 늘어날 때 세상이 바뀔거라고 생각해요. 기업활동을 장애인들에게 재분배 양극화나 빈곤이 차차 해결될겁니다. 기업활동을 하면서 환경과 장애인 빈곤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면 이게 사회에 정말 좋은 기업 아니겠어요?”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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