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연재 칼럼> ⑨ 공직사회 개방, 측근정치·괸당정치 끊자   

   2012년은 전 세계 29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 ‘글로벌 선거의 해’였습니다. G2체제 양축인 미국은 오바마 2기 체제를 열었고, 중국은 시진핑 10년을 출범시켰습니다. 일본은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해 극우파 아베 신조를 총리로 선출했고, 러시아에선 푸틴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한민국과 함께 한반도 주변 6개국 모두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2013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격동의 해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 중심이자 아주 작은 섬 제주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새해 벽두에 <제주의소리>는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자 합니다. 이 글은 고운호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가 6개월에 걸쳐 준비해 온 원고지 819장 분량의 방대한 제언으로, <제주의소리>는  매주 1회씩 10여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다소 논쟁적일 수도 있지만 민선 자치단체장 ‘20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는 제주사회가 한번은 반드시 넘어야 할 ‘도전과 응전’의 담론을 독자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아홉번째, 지사 후보자 주변 인사들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역대 정부를 보면 도덕 불감증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대대적 인적 쇄신을 통해 국면을 수습하고자 했다. 이는 도덕 불감증과 인사와의 상관관계가 높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사에 대한 공정하고 엄격한 잣대는 집권 세력의 도덕성 논란에서 벗어나게 한다.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다시 묶고 합치게 할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을 지니고 있어야 할 지도자는 공직자를 등용하는 과정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개입시켜선 안 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 공직사회는 무엇보다 사람을 제대로 써야 한다. 그렇다면 제주도정은 어떤가. 새 도정이 들어설 때마다 충성심을 잣대로 이른바 ‘우리가 남이가’ 그룹이 중추권력을 장악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충성심보다 더 중요한 건 업무 역량이다. 역량은 모자라는데 충성심이 넘치다 보면 무리수를 두게 된다. 충성심 강한 사람들이 모이면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 크다.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보스에 대한 왜곡된 충성은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총체적 난관에 빠져들게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역대 제주도정의 실패는 자신과 4년을 함께 할 공직자를 선택하는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순간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지도자들이 정실인사에 눈이 어두워 전임도정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새로운 제주사회를 그리는 지도자의 자세는 무엇일까. 무능한 아마추어 도정 이미지를 털어내고 도민사회에 희망을 주는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하기 위해선 선거 공헌도 등 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도덕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인사를 발굴하고 중용해야 한다. 임기를 보장하는 풍토를 정착시켜 우수 인재가 몰려 경쟁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우선 제주 공직사회에 개방의 폭을 대폭 확대해 인재 풀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이를 통해 우수 전문인력의 외부수혈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혈연‧지연‧학연 등 전통사회의 특징적 가치였던 연고주의를 공직사회에서 몰아내 ‘끼리끼리 인사’의 틀을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 공직사회 개방 폭 넓혀 ‘측근정치-연고주의’ 끊고 우수한 인재 발굴해야
 
역대 도정이 한결같이 선진화를 표방하고 백년대계를 외쳤다. 그러나 부패와 유착, 지도층의 모럴해저드, 정실인사 울타리를 벗어나질 못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그릇된 연고주의 문화에 기인한 바가 컸다. 도정 중심에 자신의 측근만을 등용함으로써 인적 지평의 축소를 자초하고 소통 생태계를 위축시켰다. 충성도와 유권자 표수를 의식한 정실이 능력인사를 가로막았다. 선거캠프 참여 인사, 지사의 지인(知人)그룹 등 한정된 인재 풀에 의한 ‘코드 인사’를 답습해온 데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최근 제주도의회가 공무원 947명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6.2%가 ‘학연·지연 등 특정인맥 관계’가 승진의 제 1요인으로 꼽아 ‘코드인사’가 횡행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사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45.6점으로 전년도(2011년도)에 비해 3.7점이 더 떨어졌다. 공무원 직무만족도 역시 이전 조사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주 도정의 인사관리가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불공정하게 이뤄짐으로써 공무원의 사기가 추락하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남이가’ 그룹의 고질적인 유착과 담합구조는 공정한 경쟁기회를 박탈함으로서 공정사회의 정착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퇴행적 관행이 고착화되면 우리 젊은세대들은 제주 사회에 대해 좌절감과 이반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제주사회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젊은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기회는 공정하게 제공돼야 한다. 연고가 아닌 실력으로 경쟁하는 사회임을 보여줘야 한다.

먼저 측근을 앉히기 위해 편법으로 악용되고 있는 공공기관장 공모제부터 혁신하자. 공공기관장 공모제가 도입된 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도지사가 일방적으로 임명하던 시절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기관장 공모 절차 시작 전부터 “누가 어느 자리에 낙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그리고 결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지금까지 수년 동안 해 온  기관장 공모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엉터리 공모제는 인사권자에게 책임을 회피할 핑계거리만 제공해 왔다는 점에서 임명제와 공모제의 나쁜 점만 조합한 결과가 됐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전락시킨 지금의 공모제 최종 피해자는 바로 도민이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이 제도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 임명제로 돌아가 지사가 원하는 인물을 임명하고 인사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지는 게 백번 떳떳하다.

공공기관장 인사는 능력있는 내부 출신 발탁을 늘려나가야 한다. 외부 출신을 뽑을 땐 전문성과 추진력, 경영능력을 갖춘 전문 경영인을 선임하는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색과 특정 정치성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된 실질적인 공모를 통해 적임자를 물색해야 한다.

최근에도 도지사 최측근인 어느 기관장이 공적 업무로 위장해 업체 후원을 받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가 하면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도민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게다가 업무추진비가 부족하자 직원들에게 돈을 거두기까지 했다니 할 말을 잃게 한다. 과연 이들에게서 제주의 미래를 염려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까. 오로지 개인의 영달에만 집착하는 일그러진 공인의 얼굴만 확인될 뿐이다.

제주가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위한 도민적 성찰과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지금 제주사회가 당면한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 부정부패 기생하는 괸당문화...제주 공직사회 청렴도 ‘꼴찌’ 이유 있었네
 
열한번째, 공직사회의 혁신과 부패척결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많이 깨끗해졌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이 정도나마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 청렴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만큼 개선되면 매년 경제성장률을 0.6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으며 4% 내외 잠재성장률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우리를 절망케 하는 뉴스가 여전히 너무 많다. 정치권력과 재벌권력, 공직사회의 부정과 부패에 관한 뉴스가 우리의 일상을 점령한다.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이란 말이 과장된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과 금융 부문은 쓰라린 구조조정을 거친 덕분에 투명성과 건전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글로벌 기업과 대형은행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정치와 공공부문은 우리사회 특권층으로 자리 잡으며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 철옹성이 된지 오래다.

지난해 말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1년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OECD 30개국 평균을 크게 밑도는 부패후진국으로 낙인 찍혔다. 우리나라 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인식지수는 지난해 세계 183개국 중 43위로 전년도 39위에서 오히려 하락했다. 한국 경제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지만 부패 수준은 세월의 변화에도 요지부동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모든 부처, 모든 직급에 부패 곰팡이가 무한 증식되고 있고 비리의 유형도 뇌물수수, 정책왜곡, 업체유착, 정책정보 유출, 예산 유용과 남용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공직자의 비리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나 2011년에는 4년 전의 5.7배 수준에 이른다. 이러한 공직사회 부패의 증가추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더욱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006년~2011년 7월 비리사범 건수; 중앙부처 공무원 929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1646건).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2012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제주도는 전국 시․도 중에서는 유일하게 청렴도 최하위인 5등급을 기록했다. 공직사회의 부패는 도정에 대한 신뢰 저하와 함께 서민들의 일할 의욕을 박탈한다. 지역사회의 쇠락을 초래하는 암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비리와 반칙이 판치는 불공정 게임에 승복할 패자는 없다. 도민 대다수가 인정할 정도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현재 제주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라는 시한폭탄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 선진사회로의 도약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는 제주발전의 기본을 바로 세울 수가 없다. 부정부패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부패 비전을 제주 정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이유다.

 # 생선은 꼬리보다 머리가 먼저 썩는다...제주사회 부패는 ‘지도층’ 부패 방증

그렇다면 부패를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척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① 제주 공직사회의 부패를 철저하게 혁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우리 삼춘’으로 상징되는 연고주의, 괸당문화와 관료주의는 공직사회에 부패친화적 환경을 쉽게 조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끼리끼리’의 폐쇄적 문화와 인간관계는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의 최대 걸림돌이다. 이 같은 장애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지속적인 제도적·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화이트칼라층에 대한 창조적 혁신이 시급하다. 블루칼라층의 생산성은 끊임없이 상승해왔던 반면, 화이트칼라층의 생산성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다는 분석이다. 제주 경제가 다시 성장 궤도에 올라서려면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한 화이트칼라들의 살신성인의 자세가 없으면 안 된다.

② 고질적인 비리나 부패 척결의 관건은 투명성이다. 제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투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사회가 투명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조직은 불법과 비리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불투명하고 부패한 사회가 경제발전에서도 뒤처진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생선은 꼬리보다 머리가 먼저 썩는 법이다. 제주사회에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는 건 여전히 제주사회 상층권이 부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러 가지 힘이 이들에게 집중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도정은 특정인에게 재량권이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도록 의사결정 시스템을 협의체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정책실명제를 도입해 공무원이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

③ 도정은 정직해야 한다. 도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제대로 된 공시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도민이 시장 원리 및 공동체적 관점에 따라 도정 전반에 대해 공개적으로 감시·감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제주 사회는 정도(正道)의 리더십에 대해 많은 갈증을 느끼고 있다. 지상파방송 프로인 ‘나가수’의 인기는 특유의 정공법에서 나왔다. 가수들이 노래 실력 하나로 승부를 겨루면서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은 투명하고 담백했다. 제왕적 권력을 즐기면서도 그 파장에 대해선 책임을 회피하려는 제주도정의 태도와는 극명히 대비가 된다. 

이제 도정은 신기루를 좆는 장밋빛 청사진만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좀 더 정직해져야 한다. ‘도민이 행복한 국제자유도시, 자치의 파라다이스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비전’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사실도 도민 앞에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도정 현안에 대해 도민들에게 정직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순간만 회피하면 된다는 생각에 미봉책을 좋아하면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④ 싱가포르 정부 관료나 정치 지도자들의 근본적인 부패척결과 일벌백계 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자. 구태의연한 수사적 선언이나 솜방망이 처벌로는 공직비리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도자가 먼저 깨끗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의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투명하게 보여야 한다. 지도자를 둘러싼 각종 설(說)이 난무해선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없다.

 # 스페인 경제위기 출발점 지방정부 ‘선심행정’...실패한 트램에 집착한 제주

⑤ 정치인과 공무원이 야합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고 도 무용지물이 돼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지방공항이 단적인 사례이다.

제주도지사는 제왕적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에 정치권과의 야합 없이도 독단적인 사업이 가능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도민들의 집중적인 지탄을 받아 포기한 ‘트램’ 사업이다.

공무원은 법으로 신분보장을 받는다. 불법한 일을 하지 않는 일을 잘하고 못함을 떠나 해고가 없어 ‘철밥통’이란 말을 듣는다. 그러나 여기엔 눈치를 보지 말고,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지 말고 본분에 충실하라는 의미도 있다.

제주 공직자들은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진정한 도민봉사 집단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공직자들은 사익편취를 추구하는 정치인에 앞서 도민들과 이마를 맞대 제주사회 발전의 백년대계를 그려 나가야 한다.

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대중은 공짜 점심을 원하고 정치인들은 표를 위해 공짜 점심을 제공하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이 파괴된다”고 말한다.

제주도 재정은 국가 지원이 없으면 독자생존이 안될 정도로 너무 취약하다. 2011년도 재정자립도는 24.9%로 전국 지자체 평균(51.9%) 절반에 불과하다. 게다가 2006년(29.9%)에 비해 5%포인트나 하락했다. 하락폭이 같은 기간 전국평균(2.5%포인트) 2배에 달하고 있다.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무분별한 대형 투자사업 추진으로 가용재원마저 크게 감소하는 데다 지방세 체납이 꾸준히 늘면서 제주도 곳간의 빈구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특혜를 몰아줬던 강원도 태백과 인천광역시가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뭘까. 채산성을 따지지 않은 채 선심·과시성으로 방만하게 각종 개발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왜곡된 장밋빛 보고서와 내‧외부 감시의 부족이 재앙을 키운 것이다.

1100억원의 세금을 쏟아 부은 강원도 태백시 은하 모노레일은 한 번도 달리지 못한 채 고철 덩어리가 됐다. 경기도 용인시는 공사를 완료하고도 흉물로 방치돼 있는 경전철 때문에 용인시 전체 예산 40%에 육박하는 엄청난 돈을 세금으로 물어내게 됐다. 제반 타당성을 외면하며 ‘트램’에 집착했던 제주 도정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지자체 빚더미가 중앙정부 목을 조여 위기를 맞고 있는 스페인의 사례도 좋은 반면교사다.  스페인은 2007년까지만 해도 국가부채의 GDP대비 비율이 36.3%로 독일 65.2%, 프랑스 64.2%보다 훨씬 낮았다. 그런 나라를 재정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지방정부의 천문학적 부채다.

지방정부들은 재정의 67%를 중앙정부에 의존하면서도 무상 의료·교육을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비행기 한대 뜨지 않는 공항을 비롯해 문화예술센터·병원·수영장·철도 같은 선심성 사업에 돈을 퍼부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스페인 경제가 주저앉자 지방정부가 벌여놓은 사업들은 대부분 부실화됐고 중앙정부가 그 책임을 뒤집어 쓴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대한민국의 제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치적 쌓기와 한건주의식 전시행정 아니면 선심행정으로 생각도 없이 그저 뒤쫓아 가고 있는 것이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도정을 넘겨받았다고 이전 도정에 그 책임을 전가시키면서 한쪽에서는 그것을 따라하는 모습은 가관이다.

 # 마이클 텔 회장 “초일류 기업이라도 축배들 시간은 1/1000초뿐”

⑦ 무한경쟁 체제에 들어선 세계화 시대에도 제주도정 운영 시스템은 개발연대의 관료제도와 행정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이 같은 낡은체제에 대한 전면적 혁신으로 공무원 조직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제주사회는 퇴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제주 공직사회의 높은 경쟁력이 경제, 사회, 문화 등 지역사회 발전의 성장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세계적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공무원 사회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① 도정과 도민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 해 민간이 함께 호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도민이 많다면, 어떠한 정책도 도민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없다. 특히 행정 서비스 수요자들의 다양한 정책 의견이 도정에 의해 제대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효과적인 정책추진을 통한 도정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② 눈앞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재 공직사회는 근시안적 단기성과주의가 만연된 게 사실이다. 이 모습으론 미래 경쟁력에 필요한 창조적 혁신과 지역발전 에너지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치밀한 계획하에 장기적 시각의 업무추진이야말로 창조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③ 큰 비전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적절한 중간목표를 설정해 종합적인 시각에서 하나하나 실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더불어 최고 의사결정자에서부터 실무 담당자에 이르기까지 탁상공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현장 확인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④ 수시로 조직진단을 실시해 구성원의 직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조직의 구조적인 불합리와 비효율, 공무원의 근무행태, 각종 회의체의 운영 등 일처리 방식과 업무흐름을 개선하는 것도 뒤로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특히 수직적·수평적으로 업무정보를 공유하는 정보공유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 도정이 효율적이며 합리적으로 운영되면 민간부문에도 그 영향이 파급돼 제주 경제사회의 전반적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게 된다.

아울러 외부의 지식과 인재를 활용하는 휴먼네트워크를 잘 구축해야 한다. 협업적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민관산학 연계 시스템’ 구축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공직자 개인적으로도 부단한 노력과 집중력을 발휘해서 특정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적극적인 자기계발이 필요하다.
 
⑤ 제주 공직사회의 전반적인 개방을 통해 지속적으로 외부의 우수 전문인력 수혈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혈연‧지연‧학연 등 연고주의를 공직사회에서 정리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개방은 연고주의의 서식을 어렵게 한다. 공직자로 하여금 열린 마음으로 외부와의 소통을 원활케 함으로써 경쟁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홍콩과 싱가포르 공무원 수준은 세계적이다. 국제투명성기구 등에서 각 국을 대상으로 매년 조사하는 관료사회의 경쟁력, 효율성, 청렴도 순위에서 이 두 나라는 항상 선두를 다툰다. 이 두 도시국가 공무원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는 요인은 다른데 있지 않다. 개방을 통해 다양한 국적의 인재들을 채용‧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⑥ 현재성과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심각한 위기 징조도 없었고 경영진도 성과에 만족하고 있던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이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를 잘 살펴보자. 현재 성과 착시현상 때문이다.

 

▲ 고운호 전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미래 위기 가능성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선 현재 성과가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비전과 전략, 역량과 자원, 시스템 등이 미래 경쟁력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아무리 초일류 기업이라도 현재 성과를 자축하며 축배를 들 시간은 1천분의 1초밖에 없다(NANO Second Celebration)”는 델 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 회장의 경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운호 전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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