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홍강민.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강민이는 매사에 느리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저학년 때는 그 정도가 정말 심했다. 초등학교 1 ~ 2학년 때는 학교급식시간에 밥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다. 밥 먹는 속도가 너무 느려 주어진 시간 안에 다 먹지 못했던 것이다. 빠른 아이들은 한 번 먹고 또 떠다먹기도 하는 시간에 자기 양의 반도 채 먹지 못했을 만큼 느렸다.

1학년 때는 글씨쓰는 속도가 느려 받아쓰기 시험성적이 형편없었다. 글자를 쓸 줄은 아는데 글씨가 느려 미처 다 받아쓰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림장은 친구들이 대신 적어주었다.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린탓에 강민이만 혼자 못 적고 있으니까 답답한 친구들이 대신 적어 준 것이다.

학습속도도 매우 느렸다. 수업시간에 과제물을 제대로 완성한 적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다 하지 못한 나머지를 집으로 가져와 해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집에서도 느리긴 마찬가지였다. 아침에는 늘 늦잠을 잤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늦잠을 잤다. 엄마가 소리소리 질러가며 겨우 깨워놓으면 굼벵이 기어가는 속도를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겼다. 그러다 보니 늘 학교에는 지각이었다.

학교와 집 사이의 거리는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학교 후문에서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도로만 건너면 집이다. 느림보 강민이는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는 학교를 거의 매일 지각을 하며 다녔다. ‘느림’이 몸에 배이고 일상화된 상태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강민이가 이러한 상황을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당연히 학교에 지각하고, 급식시간에 밥을 다 못 먹고, 수업시간에 주어진 과제를 다 마치지 못하고 남은 부분은 집에 와서 하는 걸로 알았다. 그리고 느리다보니 매사에 소극적이게 되고 자신감이 없었다.

강민이 엄마는 아들의 이런 ‘느림’병을 고쳐보려 나름 애를 썼다. 유명한 자녀 교육서들을 사서 읽고, 거기에 조언된 방법들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큰 효과는 없었다.

   
그러던 강민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강민이가 4학년이 되면서 도저히 고쳐질 것 같지 않던,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을 것 같던 강민이의 ‘느림’병에 변화가 일어났다. 강민이가 학교에 지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준비물을 챙기고 가방을 싸는 속도도 빨라졌다. 어쩌다 시간이 늦어지게 되면 “지각하면 안 되는데...”하면서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나갔다.

이렇게 조그마한 변화들이 쌓여가던 어느 날, 마침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미술시간에 왕 느림보 강민이가 사고를 크게 치고 말았다.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한 것이었다. 강민이 엄마의 말에 따르면 정해진 시간 안에 뭔가를 완성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생애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과제물을 완성한 강민이에게 상을 주셨다. 강민이 엄마의 말에 따르면 강민이가 상을 받은 것은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닐 것이란다. 처음으로 수업시간에 그림을 완성한 강민이가 기특해서 선생님이 상을 주신 것이라는 게 강민 엄마의 생각이다.

강민이는 이후로 느린 증상이 많이 나아져 지금은 큰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 가끔씩 이런저런 상도 받아온다. 어제 저녁, 4학년 때 강민이네 반 아이들이 만든 ‘학급 문집’을 보던 중 옆에 있던 강민이 엄마에게 물었다.

“강민이가 4학년 때 들어 ‘느림’병이 좋아진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 질문에 강민이 엄마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강민이를 늘 격려해 주셨기 때문이죠. 늘 강민이를 격려하시면서 강민이 스스로 하게 만드셨어요.”

강민이 엄마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강민이의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느림보 강민이를 늘 격려하시고 동기부여를 하시면서 강민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게 하셨다고 한다.

강민이 엄마가 볼 때 교사가 천직이라는 강민이의 4학년 담임 선생님. 약하고 느린 아이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신 선생님. 한 아이의 인생에 소중한 변화를 주신 선생님. 엄마가 몇 년간 애써도 못 한 일을 몇 개월 만에 해내신 선생님.

강민이 엄마의 감사한 마음을 제가 대신 글로 전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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