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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커피, 보이지 않던 그들을 불러내다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꾼다 - (6) 장애인이 만드는 화원과 카페, 일배움터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꾼다 - (6) 화원에서 카페까지, 장애인이 만드는 일배움터

                                              

최근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는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함께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제공하는 동시에, 매주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사회적기업-마을기업-자활기업 등을 차례로 탐방할 계획이다. 특히 이들이 우리의 삶과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고, 우리와 직접 연관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한 기회가 될 것이다.

 

▲ 일배움터의 화원. 여기서 가꿔진 꽃들은 직접 만든 도자기 화분에 식재돼 쇼핑몰에서 판매된다. <사진=일배움터 제공>

“그냥 시설복지만 하시지 왜 시장에 나오셔서 이걸 하십니까?”

제주의 장애인고용기업 일배움터가 2007년 처음 본격적으로 원예사업을 시작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들은 냉소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되묻는다.

“장애인이 왜 직업을 가져야 하냐구요? 그럼...지금 당신은 왜 직업을 갖고 일을 하죠?”

장애인사회복지시설 애덕의 집을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 제주카톨릭사회복지회는 2005년 12월 중증장애인들 재활에 도움을 주기위해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순히 한 시설 안에서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 역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으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일배움터의 시작이다.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장애인들이 수강하던 원예치료는 이제 직접 꽃을 키우고 이를 판매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수혜자나 이용자가 아니라 어떤 직업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원예치료와 함께 도자기를 굽던 것에 착안해 도자기 화분에 꽃을 심어 판매에 들어갔다.

2007년 본격적으로 꽃과 도자기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증장애인들이 화원에서 직접 키운 꽃을 직접 만든 도자기 화분에 심은 뒤 판매하기 시작했다. 꽃배달 사업도 시작했고, 이와 함께 친환경 농산물 사업도 시작했다. 비장애인 100% 혹은 규모 있는 일반 영리기업도 쉽지 않은 일을 장애인들이 주축이 된 사회적기업으로 도전했으니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3년 이제 이들은 원예-농산물-카페까지 범위를 넓혔다. 직원 수 35명에 비영리재단임에도 연매출 4억원이 넘는 알짜배기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에 기뻐하는 사람은 단순히 이 곳의 대표인 최영열(44)씨 뿐만은 아니다. 

모두가 함께 만든 곳, 모두에게로 돌아가다

 

▲ 최영열(44) 대표와 일배움터의 플라워카페 '플로베'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 카페 안에는 실제로 일배움터에서 키운 꽃들이 도자기화분에 심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최 대표는 처음엔 막막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모델에 공감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최 대표는 대학원에서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은 사회적기업 위캔의 김동주 사무국장에게 찾아간다. 지체장애인이 만드는 웰빙 쿠키를 판매하는 위캔은 대한민국 사회적 기업 1호로, 현재 연매출 13억이 넘는 것은 물론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새로 오픈하게 되니까 걱정이 많았죠. 어떡해야 할 지 아무도 모르는데. 제주도에 만들어낸 사례도 없고... 저도 생각해보면 우리도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그녀의 고민을 들은 위캔은 그녀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한다. 기업인과 사회복지재단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또 처음에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하는 지 훌륭한 멘토가 됐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원예와 농산물 사업에 이어 지난해 플라워카페 ‘플로베’를 제주시에 오픈할 때도 그녀의 뜻에 공감하는 많은 이들이 손을 모았다.

정원회사 푸르네는 카페의 컨셉을 함께 기획했고,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부원장은 일배움터의 음식 메뉴 개발을 도왔고, 닐모리동동을 만든 NXC의 김종현 제주본부장은 지역문화를 담은 공간을 만들려 시도했던 그들의 과정과 생산된 콘텐츠를 공유했다. 제주시 지역 카페 커피코알라와 신비의 사랑의 바리스타들은 플로베 직원들에게 핸드드립을 비롯해 커피 교육을 도왔다. 

많은 이들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일배움터는 이처럼 시작부터 지역사회와 함께했다. 

건조농산물 상품은 일배움터가 자신있게 내세우는 분야다. 제주 서부의 한동과 조천 지역에서 받은 친환경 무로 만든 무말랭이는 현재 아름다운가게 공익상품 중 전체 인기 1위를 차지할 정도다. 그리고 그 혜택은 다시 무를 생산한 농가에게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조금 벌어도 농가 쪽에서 요구하는 값을 다 주려고 해요. 되도록 흥정은 하지 않구요. 저희들이 사회적기업으로 지역사회에 할 수 있는 건, 제 값주고 수매하고 그 로컬푸드로 다시 부가가치 있는 상품을 판매하고, 그리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장애인들을 고용하고...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거거든요”

비영리재단인만큼 이익을 돌려받는 주주나 임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아진 수익은 다시 장애인을 비롯한 취업취약계층을 고용하고, 그들의 친환경 사업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장애인은 왜 직업을 가지면 안된다는거죠?

 

▲ 무말랭이를 만들고 있는 직원. 제주 서부지역의 친환경 무를 통해 만들어지는 무말랭이는 아름다운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공익상품으로 발전했다. <사진=일배움터 제공>

“주변에서 사회적기업을 하면 당연히 지원을 받는 거, 그리고 사회적기업의 상품은 누가 팔아주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처음 재활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원예치료를 상품으로 만들 때 도자기와 결합해 ‘화분 도자기에 꽃을 심는다’는 발상으로 경쟁력을 키웠다. 농산물 역시 친환경을 고집해 부가가치를 높였고, 플라워 카페 ‘플로베’ 역시 주변의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받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회적기업이 안정궤도에 올라선 것은 이런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 말고도 다른 종류의 ‘고민’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카페에서 주스 하나를 만들어도 ‘나 혼자 먹기에 너무 맛있고 건강하니까 다른 사람하고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부가가치가 생겨서 결국 돌아오는 것 같아요. 항상 강조하는게 돈을 우선 벌려고 하는 게 아니고 '나에게도 정말 맛있고 좋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먹으면 정말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간 거죠.

출발부터 지원을 받으려고 마음먹거나, 고민없이 운영한다면...그게 정말 사회적기업가의 정신에 충실했을까를 물어보고 싶어요. 인증을 받아 인지도가 올라가고 상품판매가 촉진됐지만 그전에 우리는 이미 사회적기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세상에 돌려줄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내놓는 상품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동시에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려고 노력했어요”

도자기 화분에 꽃을 심어 상품을 완성하고, 농산물을 가져을 상품으로 만드는 공정에 들어가고, 카페에서 웰빙쿠키와 쥬스를 만들고 서빙하는 것 모두 중증장애인들이 도맡는다.

내심 ‘너무 오래걸려서 힘들었어요’ 혹은 ‘이게 인간승리죠!’ 이런 대답을 기대했던 기자에게 최 대표는 웃으며 “요즘 우리 친구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일배움터에서 일하는 장애인 23명은 직업적중증장애인이다. 자폐성 장애, 지적 장애를 안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1, 2급 중증으로 판정받은 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실제 카페에 앉아 이들이 직접 딸기쥬스를 만들고 서빙까지 받아봐도 별 트집을 잡을 데가 없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 화분과 꽃도 마찬가지다.

일배움터에서 일하면서 이들은 이제 꾸준히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저축을 한다.

사회에서 외부로 여겨지며 배제되던 이들의 인정받게 되는 과정이다. 최 대표는 “일반 사업장에 취직이 안 되고, 누군가에겐 천덕꾸러기로, 누군가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짐이네!’라는 모욕을 듣던 이들이 당당한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기뻐한다.

일배움터의 매일매일은 시설 안에만 놓아두는 것만이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이자 복지라고 생각했던 편견에 날리는 유쾌한 실험이다.

 

▲ 도자기를 직접 빚고 있는 일배움터 직원들. 도자기화분은 이 곳의 꽃이 더 매력을 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일배움터 제공>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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