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며 길을 묻다] 17 영성과 미학의 중세마을 이탈리아 아씨시(Assisi)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영성의 마을 아씨시
성 프란체스코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는 카돌릭 성지이다

 

▲ 성 프란체스코 성당 전경. 성당 뒤로 보이는 이탈리아 움부리아의 하늘이 너무 곱다. ⓒ송재호

언덕위에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마을이 자리잡은 전형적인 중세의 오르비에토
중세에서 시계가 멈춘 듯 그 때의 모습을 아직도 그대로 간직하고 이탈리아 움부리아 평원을 바라보고 있다.

▲ 아씨시 마을 위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과 멀리 펼쳐진 움부리아 평원. ⓒ송재호
▲ 윗 사진을 스케치로 찍은 모습. ⓒ송재호

 

▲ 아씨시 역 표지(로마와 피렌체 사이). ⓒ송재호

 

▲ 코무네 광장을 지난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오르는 길. ⓒ송재호

 

▲ 저기 저만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송재호

 

▲ 성 프란체스코 성당 전경. ⓒ송재호

 

▲ 성 프란체스코 성당 스케치로 찍은 모습. ⓒ송재호

 

▲ 성 프란체스코 성당 스케치로 찍은 모습. ⓒ송재호

아씨시 마을에 열차로 도착하면 언덕위 마을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마을 입구 코무네 광장에 몸을 내려 10여분 걸어 올라가면 프란체스코 성인이 잠들어 있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맞는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 위로하고/이해 받기보다 이해하고/사랑 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에겐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으로 널리 알려진 성인 프란체스코(1181?~1226). 


프란체스코 성인은 부유한 포목상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한때 황야에서 ‘탕아’로 방황하기도. 모든 부귀와 소유를 포기한 그는 명상과 기도, 그리고 청빈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길을 찾는다. 교회의 일그러진 권력과 욕망을 영적으로 새롭게 함으로써, 그가 다미아노 성당 나무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던 중 들었던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고치라”는 주님의 음성을 온 생애를 바쳐 실천했다. 1224년에 그는 손과 발, 옆구리에 오상(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입은 상처)을 받았고, 훗날 카돌릭 최초의 공식적 상흔으로 인정받는다.

전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성인, 성 프란체스코의 삶과 정신은 프란체스코수도회 등을 통해 오늘도 사랑의 메아리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한국에도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카푸친 작은 형제회’ ‘글라라 수녀회’ ‘재속프란치스코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맨발에 누더기로 항상 기쁜 소식을 우울한 세상에 가득차게 했던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종교를 초월해 추앙받는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그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소중한 인물 3명 중 1명으로 꼽기도 했다.

▲ 성 프란체스코 성당 내부 제대. 이 성당 지하에 성인의 묘가 있다. ⓒ송재호

아씨시는 장미 장식으로 가득하다. 마을 골목길에서 만나는 장미도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프라체스코 성인은 세상에 대한 욕망이 생길 때마다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장미덩굴에 몸을 굴려 살을 파고드는 장미가시의 아픔으로 경각했다고 한다. 그런 성인의 모습이 안쓰러워 하느님은 장미정원의 가시를 모두 없앴다고 전해진다.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지금도 외부의 장미를 이곳 성당으로 옮겨 심으면 가시가 자라지 않는다고.

▲ 아씨시 골목 풍경. ⓒ송재호
▲ 아씨시 골목 풍경. ⓒ송재호
▲ 아씨시 골목. ⓒ송재호
▲ 아씨시 골목 풍경을 스케치로 찍어봤다. ⓒ송재호

골목골목 걷는 것은 아씨시의 잊을 수 없 또 하나의 매력.


하루종일 걸어다녀도 지루하지 않을만큼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가득하다. 촘촘한 거미줄처럼 위로 아래로, 오른편으로 왼편으로, 미로처럼 골목들이 이어져 있다. 걷고 또 걸으면 아씨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매력에 기도와 명상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행복감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자기도 모르게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하는 소망이 저절로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 아씨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스케치 사진 모습들. ⓒ송재호
▲ 아씨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스케치 사진 모습들. ⓒ송재호
▲ 아씨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스케치 사진 모습들. ⓒ송재호
▲ 아씨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스케치 사진 모습들. ⓒ송재호
▲ 아씨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스케치 사진 모습들. ⓒ송재호

 

▲ 아씨시 아기자기한 골목길과 스케치 사진 모습들. ⓒ송재호

방문객들에게 문자 그대로 치유(hospitality)를 선사하는 작은 중세도시.
아씨시는 문화와 예술, 환경과 교육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종교마저도 지역경제와 주민생활과 잘 어우러져 서로에게 부담없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융합과 통섭의 살 길’을 말해주고 있었다.

▲ 방문객들에게 문자 그대로 치유(hospitality)를 선사하는 작은 중세도시. ⓒ송재호
▲ 아씨시 골목길에서 만난 기도와 명상의 자리. ⓒ송재호

프란체스코 성인이 선종했을 때, 몇일이 지나도 마을 사람들이 몰랐다고. 지금은 교회가 마을 한켠에 있지만 당시만해도 마을과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성인의 선종을 스스로 종을 울려 세상에 알렸던 교회의 종이 지금도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또 하나의 종소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 마을의 일반장식도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담고 있다. ⓒ송재호


▲ 프란체스코 성인이 선종한 교회와 스스로 종을 울려 선종을 알린 종. ⓒ송재호

‘종소리는 기쁜 소식을 알리는’ 것이라며 ‘성인의 선종이 슬픔이 아니라 기쁨임을 깨우쳐주는 또 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수녀원 기숙사 수녀님이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내 정신과 영혼에 풀어야 할 숙제로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기쁘게(기뻐하고 기쁨을 주며) 죽어갈 것인가?’  /송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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