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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FTA...볼모로 잡혔던 제주농촌의 반격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꾼다 - (7) 친환경농산물 유통사업단 '생드르 영농조합법인'

                                        

최근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는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함께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사회적경제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제공하는 동시에, 매주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사회적기업-마을기업-자활기업 등을 차례로 탐방할 계획이다. 특히 이들이 우리의 삶과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고, 우리와 직접 연관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한 기회가 될 것이다.

 

▲ 당근 재배 농가 수확 모습. 생드르영농조합에 공급되는 농가들의 작물들은 말 그대로 '친환경-유기농'이다. ⓒ생드르영농조합법인

농민뿐 아니라 지금의 40~50대라면 결코 1993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을 앞두고 한국농업계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한국농업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조천유기농업연구회’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당시 조천 지역 농민들은 자연스레 ‘수입개방이 됐을 경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깊은 걱정에 잠긴다. 긴 고민 끝에 이들이 내린 결론은 ‘유기농’이었다.

당시 유기농업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기에 이들은 생존을 위해 또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유기농에 뛰어들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20여명의 농민들이 뜻을 모아 낮엔 농사를 짓고 밤엔 공부 하기를 몇 년. 땅의 균형을 깨는 화학비료 대신 유기질비료를 사용하다, 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생물연구소와 균배양체 시설이 있는 미생물비료 공장을 만들어 비료를 공급했다.

작물을 생산하는 것 자체에 어느 정도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이번엔 유통이 문제였다. 친환경으로 생산했기에 당연히 외관이 농약처리한 작물에 비해 흉터가 많아 ‘파치’(비상품) 취급을 받기 일쑤였던 것. 당연히 제 값을 못 받는 경우도 생겼다.

이에 당시 연구회 농민들은 생각한다. “생산만 같이 하는 게 아니라 판매도 같이하자!”

그렇게 2000년 친환경 농산물 유통사업단인 ‘생드르영농조합법인’이 탄생했다. 말 그대로 농사에 들어가는 전 비료를 공급하는 과정부터 생산된 농작물을 최종적으로 판매하는 과정까지 책임지는 경제공동체다. 서서히 규모가 커져 연매출은 50억이 넘고, 이 중 30억 이상이 농민에게 되돌아간다. 조천 뿐 아니라 제주시, 구좌, 성산과 표선, 대정까지 넓어졌다.

생드르영농조합법인은 농민들의 공동체인 ‘제주생드리연합회’ 소속된 농가들의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생산과 유통을 담당한다. 일 년 농사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을 짜면 여기서 결정된 사안을 이행하는 지원하는 사업팀이다.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높은 이윤을 짜내거나 절차를 간소화하는 대신 ‘농가들이 지속적으로 농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농민들은 중간에 돈 떼먹힐 일도 없고, 안정적으로 1년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단단한 사회 안전망

 

▲ 소비자에게는 안정성 높은 건강한 과일과 채소를, 균형을 잃었던 자연에게는 '회복'을, 농가들에게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가능케 하는 것이 영농조합법인의 목표다. ⓒ생드르영농조합법인

조천읍 신촌리에서 감귤을 생산하는 이성호-허은자 부부는 기존 농사에서는 알레르기로 고생이 많았지만 친환경 농사를 지은 이후에는 몸이 변한 것을 느낀다. 화학합성농약을 살포할 때는 예민해지고 몸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런 고생이 싹 사라졌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인스턴트'화 됐던 땅이 균형잡히면서 농민들의 일상도 바뀐 것이다.

생드르의 농가들이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변한 건 이것 뿐만은 아니다.

매년 2월이면 생드르연합회에 가입된 농민들은 1년 동안 생산할 농산물의 총량을 계산한 생산계획서를 제출한다. 그리고 생드르 운영위원회에서는 연간 소비계획량을 발표한다. 생산계획량이 소비계획량을 능가할 경우 다른 작물로 바꾸기를 요청하거나, 추가 구매 계획등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최대한 생산량과 소비량을 맞춰가려고 노력한다.

미리 최대한 예상수확량을 맞춰 농가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김기홍(42) 상무는 생드르영농조합이 운영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드르영농조합법인은 유통사업단이자 경제사업체, 여기에 모체로서 모든 계획이 결정되는 제주생드르연합회는 지역공동체라고 보면되요. 조합법인은 이미 연합회에서 농민들이 의논한 끝에 결정한 사항을 이행하는 사업체에요. 여기서 만약 개입하게 되면 이 영농조합은 장사꾼 밖에 더 되겠어요? 싸게 갖고와라 좋은거 갖고와라 이런 상인들 식의 요구를 안 해요.

그렇게되니 충분히 상품으로 가치가 있지만 아쉽게 비상품 판정을 받은 농산물을 가공품으로 만들거나, 추가 생산량에 대한 유통 방법을 고민하게 되죠. 사실 영농조합의 주인은 농가입니다. 그게 일반 상인들과 제일 많이 다른거죠”

2008년 제주의 감귤값 폭락은 이 곳 농민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김 상무는 당시를 떠올리며 생산안정기금의 힘을 떠올린다. 이 조합 소속 농가들은 출하금액에서 2% 떼서 이 기금을 마련한다.

“그 때가 약정량이 500톤 정도라고 하면...우리 조합원들 생산한 게 750톤 정도였어요. 그럼 250톤은 값이 떨어진 당시 시세대로 줘야하죠. 그럼 누구 감귤은 미리 약정된 높은 가격대로 누구 감귤은 낮은 시세대로... 그렇게 나눌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제주생드르연합회 과수분과 위원회에서 생드르 영농조합에 요구를 하죠. 6개월간 적자를 보면서 유통을 책임져라.

그래서 당시 생산안정기금을 갖고 4천여만원 적자난 걸 메꿨어요. 하지만 누구도 자기가 손해를 봤다 생각을 안해요. 생각해보면 농가들이 공동으로 적자를 떠 앉았는데도 손해봤다고 생각을 안하고, 생드르의 실무자들도 열심히 일을 하게 되죠. 이렇게 서로 신뢰감이 상승해갔어요”

미리 약정가격대로 다 결산해주는 대신 적자상에 대해서는 생산안정기금으로 보상이 가능한 것. 미래를 함께 대비하는 보험인 셈이다. 이는 태풍이나 가뭄으로 피해가 난 농가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농업은 문화이며 역사다

 

▲ 신촌초등학교 생태학습장인 '우영' 생태텃밭에서 신촌초등학교 아이들이 모종 심고 있는 모습. ⓒ생드르영농조합법인

“한 농업회사에서 큰 땅을 매입해서 농업노동자들과 첨단 기계들로 광작을 하면 수익은 많이 나오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 농업은 식량생산기지로만 남아있는 겁니다. 지속가능한 농업이고 원래 농업의 가치가 남아있는 게 아니죠”

화학비료가 아닌 미생물비료를 사용하고 친환경농법으로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이 중간 과정을 직접 지역농민들이 참여하며, 이들의 피해까지 책임을 지려는 데에는 농촌 자체가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인 것이다.

김 상무는 농업과 농촌에 대한 패러다움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농업은 환경을 보존하는 동시에 농토를 균형잡히게 만들고 국민의 정서적 안정에도 기여한다는 것. 균형잡히지 않은 신체가 탈이 나기 마련이듯, 농업이 사라지고 농촌이 황폐화된 국가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다.

농업이 이런 역할을 가능하게 하려면 농촌에 더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야 한다. 생드르가 어찌보면 물류 유통에서 더 편한 제주시가 아닌 조천을 고집하는 것도 이 이유다.

이것이 친환경 영농법을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미생물비료를 공급하고, 시장에서 유기농의 가치를 재발견시키기위해 노력하고, 친환경급식을 학교에 공급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텃밭을 일굴수 있도록 농자재를 무상지급하는 모든 활동의 이유가 된다.

농업은, 또 농촌은 항상 볼모였다. WTO에서 시작해 한미FTA와 한중FTA에 이르기까지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혹은 경쟁력을 스스로 키워내야 한다’면서 항상 궁지에 몰아넣었다. 다른 산업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번번이 나왔다. 생드르의 시도는 이렇게 방치된 농촌에 대한 당사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투쟁인 동시에 농가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려는 실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속가능성’이 핵심이다. 때문에 유통시기를 노려 일획천금을 꿈꾸거나 높은 마진율을 가져가는 일은 꿈꾸지 않는다.

“농촌공동화를 막기 위해서는 여기서 애써서 유통하고 전처리 가공을 1차 농산물 생산지역에서 해야한다고 봐요. 이 지역에서 직접 생산하면서 지역에서 하면서 창출해내고 농촌을 지킬 수 있어야 하는거죠

우리 슬로건이 ‘천년 생명 농업 더불어 함께 세상’입니다. 농업이라는 게 지속가능해서 꾸준히 가기위해 있다는 겁니다. 저희들의 근본적인 목표도 역시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있습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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