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르미'들의 흥미진진한 서울마라톤 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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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라톤 D-195] 서귀포마라톤클럽과 함께한 서울국제마라톤 (1)

 

▲ 서귀포마라톤클럽 회원들이 16일, 2013서울국제마라톤대회를 하루 앞두고 서울에 입성했다. ⓒ제주의소리

티셔츠와 런닝화 하나면 어디서든지 달릴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뒤섞여 한 목표를 향해 뛴다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다. 올 봄도 이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제주도 서귀포에서 좀 뛴다는 이들이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모였다.

2004년 탄생한 서귀포마라톤클럽은 도내에서는 주요 대회에서 수 차례 입상을 했을만큼 실력 또한 입증된 곳이다. 아름다운국제 제주마라톤대회에서도 오혜신(46) 씨를 비롯해 여러 명이 코스마다 정상을 차지했다.  

16일 아침. 한국 최대 마라톤 대회인 2013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귀포마라톤클럽 회원 23명이 집을 나섰다. 매년 가을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를 개최하는 <제주의소리>도 이들의 이번 원정에 함께했다. 

동경이나 뉴욕마라톤도 종종 가는 이들에게 서울을 가는 정도야 별 무리도 아니다. 특히 2만여명이 참여하고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최고 등급인 골드라벨을 인증받은 마라톤 대회이니만큼 설레는 무대다.

오후 1시 30분. 일행들이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건물 밖으로 나섰다. 바깥공기가 생각보다 찼는지 벌써부터 대회 날 아침이 걱정된다.  “아이구 추워, 내일은 이것보다 더 추울텐데”  “내일 2도랜 2도” “비옷입고 뛰당 중간에 벗으면 될 거 닮다게”

마라톤 예찬론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 98년즈음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장세일(61)씨는 마라톤으로 디스크에서 해방된 것은 물론 '만능 스포츠맨' 소리까지 듣게 됐다. ⓒ제주의소리

버스를 타고 각자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나니 대회 전날 인 것을 실감하는 분위기다.

2004년 서귀포마라톤클럽의 탄생부터 함께한 장세일(61)씨는 마라톤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97년쯤 척추디스크 진단을 받은 그는 수술이 아닌 간접요법을 통해 허리 건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마라톤이다.

“98년쯤 조깅, 건강 달리기를 시작했죠. 서서히 몸이 호전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400m...800m...10000m.... 차차 늘리다보니 자연스레 마라톤 풀 코스까지 오게 된 거죠. 그리고 지금은 디스크 걱정없이 아주 멀쩡해졌습니다”

마라톤으로 건강을 찾은 사람이 그 뿐만 아니다. 각자 한 마디씩 풀어놓는다. 몸무게가 쫙 빠졌다, 갱년기 고민이 없어졌다, 하루가 가뿐하다... 

들뜬 일행들 속에 유독 긴장한 표정의 한 사람이 있다. 태흥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문미정(51)씨는 이번 서울국제마라톤이 첫 풀코스 도전이다. 게다가 제주도 외 대회 출전도 처음이다.

긴장되지 않냐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했다. “떨려요. 그래도 주변 동료 분들이 도와주니까 할 만 하긴 한데...사실 부담이 많죠.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로요. 그 정도로 걱정이 되요...하지만 옆에서 많이 도와주니까요”

이번 대회 목표가 무어냐는 물음에는 “완주”라고 답했다. 무사히 5시간 이내로 골인지점에 들어오고 싶다는 것. 대회 얘기를 더 물어보면 부담일 것 같아 가족 얘기를 살며시 꺼냈다. 그러자 그녀가 좀 안심이 되는 표정을 지었다.

“마라톤을 하니 가족들이 정말 좋아해요. 특히 남편이요. 그리고 남편은 제가 계속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내조를 하는 셈이죠. 우리집은 제가 마라톤하면서 거꾸로 남편이 내조를 하게 됐어요(웃음). 그렇게 우리집안 분위기도 더 좋아진 것 같아요” 

마라톤 뛸 때 무슨 생각하세요?

 

▲ 방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자 이야기꽃이 폈다. 각자 자신만의 마라톤論을 풀어냈다. 왼쪽부터 박광표, 김영민, 장세일, 김성범씨. ⓒ제주의소리

짐을 풀고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대회 전 날은 휴식을 푹 취하는 게 러너들의 기본 원칙이다. 장거리 훈련을 계속해오다가 대회 1주일 전부터는 훈련량을 점차 줄여 마라톤대회 당일 체력을 비축하기 위한 전략이다.

마라톤대회 안내책자를 쭉 훑던 남자들은 내일 어떤 식으로 뛰어야 하는냐, 이 대회코스는 특징이 어떻다, 날씨는 어떨까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마라톤에 대해 평소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하나 둘 씩 풀어놓게 됐다.

누가보기에는 ‘달콤한 주말’을 새벽부터 고통스런 달리기에 바치고, 대회가 있을 때 마다 자비로 전국을 누비는 그들은 ‘괴짜’지만 뛸 때 마다 느껴지는 기쁨은 이들을 계속 거리로 이끈다.

마라톤으로 허리디스크에서 해방된 장세일씨가 얘기를 시작했다. “마라톤은 목표를 정한 다음 그걸 달성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이에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면 자신감도 얻고, 사회생활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죠. 좋은 일이 반복되는 거에요. 얼마나 좋아요”

10여년 넘게 마라톤을 했고, 지금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풀코스에 도전하는 그는 학창시절만 해도 별명이 ‘느림보’였단다. 달리기만 하면 항상 꼴찌를 하니 친구들이 별명을 붙여줬단다. 하지만 이제 웬만한 친구들보다 훨씬 더 건강한 스포츠맨이 됐다.

장씨의 마라톤 인생사를 듣다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가왔다. 잠시 요기를 채울 겸 숙소 밑 식당으로 함께 내려갔다. 대회가 하루 앞이니 화제는 당연히 내일 마라톤대회다. 그런데 점점 얘기를 하다보니 이 스포츠 뒤에 숨은 자신들만의 철학들로 대화가 무르익는다.

김영민(43)씨가 말했다. “30km를 넘으면 제일 힘듭니다. 그 때 회수용 차를 타는 사람도 많아요 못 견디고. 그러다보니 그런 생각으로 견뎌내고 그렇죠”. 김씨가 물꼬를 트자 이 클럽의 회장인 고익보(55)씨도 옆에서 한 마디를 곁들었다.

“마라톤 뛸 때 별 생각을 다하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한 시간 반 동안 그 생각하다보니 어느 새 골인지점에 와 있어요. 읽었던 책도 생각나죠. 뛰기 전에 깊이 읽었던 책. 예를 들어 칸트의 ‘도덕의 형이상학의 정초’의 표현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과연 미군들이 포로로 잡은 아프간 목동들을 살려줘야 하는가...그리고 괴테와 니체가 떠오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신이 세상을 창조한 기분? 그런 느낌마저 들죠”

마라톤 베테랑 서옥선(52)씨도 ‘마라톤 중 명상’ 얘기가 나오니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애기들 욕했던 것부터 유년시절 어려웠던 일, 남편이랑 다퉜던 일도 생각나고 머릿속에서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기도 하고, 인생설계도 해요. 그러다보면 한 시간이 후딱이에요”

마라톤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운동이지만 누군가에겐 말 그대로 명상의 과정이다. 42.195km를 모두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차마 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 16일 저녁, 2013서울국제마라톤대회를 하루 앞둔 가벼운 산책. 첫 풀코스에 도전하는 문미정(51.왼쪽)씨와 함께 베테랑 러너 김영민(43)씨가 함께 여의도공원을 걷고 있다. ⓒ제주의소리

채운 배로 소화를 할 겸 여의도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내일을 대비한 마무리 몸풀기이기도 하다. 이왕 서울에 온 김에 여의도광장에서 기념사진을 하나 찍고는, 반 쯤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반 쯤은 긴장된 얼굴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방문은 하나 둘 씩 닫혔지만 그 뒤에도 한참 동안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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