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정치, 삶을 만나다


1. 문제는 경제인가 아니면 정치인가?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국 국민의 삶이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하게 된 하나의 정치·경제적 계기로 1997~8년 IMF 경제위기를 꼽는데 주저할 필요는 없다. 1990년대 불기 시작한 탈냉전과 세계화의 바람에 김영삼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제기된 게 IMF 경제위기 때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김영삼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의 지배가 새 시대에 걸맞게 제대로 된 전환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생적 성장과 복지사회 건설 그리고 한반도 평화 구축 등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1990년을 전후하여 우리가 직면했던 이러한 과제들은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만족스럽게 달성되지 못한 채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은 박근혜 정부에게도 새로운 시대정신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는지, 박근혜 정부의 조각 면면을 보면 막막하다. 군과 관료 출신 인사가 지배적인 박정부의 역량으로 과연 불공정 해소, 격차 줄이기, 생태·평화 구축 등을 담보해 내는 혁신정치를 얼마나 해 낼 수 있는지 의구심이 크다.

  클린턴 대통령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하고 외친 이후 신자유주의 방식의 경제해법 찾기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류를 이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경제성장 방식에 큰 의구심이 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미국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서서 시장만능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공동선을 강조하는 협력적 정치가 아니라 개인적 이해타산에 급급해 하는 시장의 경쟁논리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협업과 공감을 중시하는 정치에서 혹은 제주도정의 새로운 모색에서 2010~20년대 제주 미래를 찾아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금 문제해결로서의 정치에 주목하고 정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2. 정치에서의 대안의 문제
 
  1987년 민주화는 일면 김대중-김영삼이라는 정치적 대안이 존재하였기에 가능했다.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한 대안은 누구였을까? 2012년 대선에서는 안철수로부터 시작하여 문재인으로 끝난 정치적 대안은 2%의 부족으로 낙마했다. 48%의 투표자들은 대선 패배를 민주당 탓으로 돌리지만, 그것은 반쪽의 진실일 뿐이다. 그 나머지 반은 열악한 언론 환경과 여전히 강고한 지역구도 그리고 보수 주도의 정치지형, 준비가 부족한 후보자 요인 등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5년 후 어떤 기치를 내건 정당이 기존의 보수정치에 대한 정치적 대안으로 등장할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많은 것을 바라고 요구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격차 줄이기’에 방점을 찍는 세력이 대안으로 집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빈부 격차는 물론이고 지역 격차, 세대 격차. 기업 격차, 기회 격차, 봉급 격차. 남녀 격차. 교육 격차, 이념 격차 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의식과 방책 찾기가 중요하다.

  2013년에 진행될 제주 지방선거에서와 관련하여 차기 도정에 요구할 아젠다를 발굴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누가 후보이고 누가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지의 구태의연한 조사가 아니라 차기 도정-도의회-교육감에게 제주도민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 지의 정책의제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 개진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누가 혹은 어느 세대가, 아니면 어느 당이 혹은 어떤 정치세력이 이러한 도민의 의중을 잘 반영할 수 있는지의 비교를 통해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정치과정이 가능할 것이다. 어느새 1년 남짓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다양한 물밑작업이 따뜻한 봄맞이와 함께 여기저기서 기지개 펴기를 기대해 본다.

3. 내생적 성장과 자영업 살리기
 
  제주경제의 견인차로 신공항 건설이 적극 요구되고 있다. 일면 타당하다. 다만 신공항 논의와 더불어 제주국제자유도시의 비전에 대한 재검토가 요청된다. 외자도입이라는 대기업 주도의 외생적 성장 논리가 아니라 제주도민 다수가 주체적으로 경제를 일구어나가는 내생적 성장이 그것이다.

  제주지역 한 일간지는 지난 2월 14일자 기사로 통계청이 발표한 제주지역 고용동향과 관련하여 ‘도내 자영업자는 9만 1,000명으로, 일년 새 6,000명이나 급증’한 것으로 보도한 바 있다. 도내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9.1%에서 올해 30.3%로 크게 높아졌는데, 이는 최근 퇴직한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자영업에 뛰어든 데다 실업난이 심화되고 있는 청년층의 소규모 창업도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문제는 자영업 창업이 상대적으로 쉬운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미용실 등의 개인서비스업 등 특정 업종에 편중된 쏠림 현상을 보이면서 과당 경쟁으로 영업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영업과 영세 사업체가 많은 제주경제의 현실을 어떻게 다듬어나가느냐의 문제의식이 요청된다. 예를 들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대자본 중심의 투자진흥지구 방식이 아니라 자영업-영세사업자를 아우르면서 도민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어떻게 힘을 모아 공동투자를 도모해 나갈 것인가의 접근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투자진흥지구와 관련한 하나의 제언 하나. 보광, 부영 등 대기업이 막대한 개발이득을 챙기는 것과 관련한 견제와 감시 체계를 누가 할 것인가. 투자진흥지구가 선정되면 그러한 개발이익에 상응하게 도민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여 투자진흥지구의 주변 지역으로의 선후방 연관효과 등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내도록 도의회-JDC-시민사회단체 간의 공조체계가 필요해 보인다.

당연히 불법이나 탈법이 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사후적 제재조치를 하여 그 범칙금을 제주도가 내생적 성장을 추진해 나가는 밑천으로 사용할 있도록 하면, 그만큼 제주도와 도민이 보다 강한 인센티브를 갖고 감시와 견제를 하게 되지 않을까.

  마침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1년 임기의 도민감사관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모집하여 감시와 조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한다. 감사위원회의 업무에 도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일면 좋아 보인다. 그러나 도민감사관이 주어진 역할을 보다 더 책임감 있게 하도록 하려면, 일정한 수당을 지급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다.

덧붙여 도의회에 선출직 교육위원을 두는 것처럼 국회의원 선거 시 지역구에 각각 1명 정도씩  3명의 감사위원을 선출하여 도의회에 두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야 도민감사관으로 혁혁한 성과를 낸 누군가가 본격적으로 감사전문가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4년 임기의 감사위원장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것은 제왕적 도정에 대한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유용한 방안일 것이다.

4. 생태평화의 섬 제주와 착한 제주

  세계환경수도가 국제자유도시와 세계평화의 섬에 세 번째 공식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는 생각보다 그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세계평화의 섬 지향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로 빛이 바랜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선정을 계기로 환경도시가 거론되었고, 2012년 WCC 총회를 거치면서는 세계환경수도론이 제창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게 무언지 그리고 과연 ‘환경수도’ 라고 운위할 정도로 제주도의 역량과 내적 추동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지만, 제주의 미래를 생태평화의 섬으로 차근차근 재정립해 가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제주의 미래와 관련하여 ‘국제, 세계, 수도’가 아니면 말을 꺼내지 못할 만큼 붕 떠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청정자연의 보전과 토착문화의 발전,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하는 데서 무언가 빠진 사람의 문제를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착한 제주가 그것이다. ‘착하다’는 건 무얼까? 이익을 갖다 주면 착하다고 하는 걸까? 마음 씀씀이에 진정성이 있는 것을 의미할까? 이타성 내지는 포용성일까? 어떤 의미에 중점을 두든, ‘착함’을 통해 제주가 세계로 나가고 세계가 제주로 들어오는 경계 허물기를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

  제주 내외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 1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제주도정이 동티모르에 의료지원을 하겠다는 공적개발지원(ODA)에 그치는 것이 아닌, 풀뿌리의 조그마하지만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을 통해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가보자는 것이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각종 동창회, 친목회, 사회단체들마다 예산의 1%에서 10%를 이웃사랑에 쓰도록 하는 착한 사업을 벌려나가는 것은 어떤가. 매년 예산의 평균 3~5%를 국내외 여기저기에서 평화봉사의 이름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데서 새로운 제주의 이미지 내지는 그런 도민의 삶을 꾀하는 건 어떤가. 도민 모두가 이웃돕기에 가장 앞서 나가는 곳으로 제주가 널리 소문이 나서, 그런 제주의 모습과 이미지가 세계로 나가고 그런 제주 사람을 직접 만나고자 세계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그런 제주의 미래상을 기대해 본다. /양길현 (제주대 교수/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이 글은 3월 16일 <이철희 초청특강>에서 필자가 토론했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