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르미'들 서울 도심을 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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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라톤 D-194] 서귀포마라톤클럽과 함께한 서울국제마라톤 (2)

 

▲ 경기시작 전 화이팅을 외치는 서귀포마라톤클럽 회원들. 왼쪽부터 서옥선, 오혜신, 고형훈씨. 서씨는 아침에 몸살로 고생을 했지만 정작 대회시작이 가까워지니 금새 몸을 회복하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17일 대회 당일 아침. 서옥선(52)씨에게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

전날부터 감기기운이 살짝 있었는데 그게 어느새 몸살이 됐다. 온 몸에 근육통이 찾아오니 당장 일어나기가 힘들다. 평소 마라톤뿐만 아니라 자전거로 단련돼 군살 하나 없는 건강한 몸이지만 하필 중요한 날 탈이 났다. 

예기치 않은 소식에 회장 고익보(55)씨의 표정도 좋지 않다. 일단 고씨는 급한대로 서씨의 몸을 풀어준다. 팔을 당기고 어깨를 좀 풀어주니 절로 ‘악’ 소리가 난다.

서씨가 애써웃으며 “전 실전에 강한 여자니까요...걱정없어요”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옷과 신발을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달리는 것이 기쁨이 되다

차 안에서 서귀포중앙동 우체국장 김문원(59)씨의 얘기를 듣게됐다. 마라톤에 입문한 지 7년째, 풀코스도 19번 완주했다. 그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금연 때문이었다.  

“담배 끊을 결심을 하고 동네공원을 산책하다보니 뭔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뛰기 시작했죠. 우정청의 마라톤클럽에서 단체로 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데 50대에 뛸 사람이 없다고 뛰라고 해서 대회에 출전한 게 처음이었습니다”

▲ 김문원씨가 대회시작 전 동료들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그는 금연과 함께 마라톤을 시작해 지금은 의사도 인정하는 건강한 폐의 소유자가 됐다. ⓒ제주의소리

그렇게 마라톤을 시작한 뒤 15kg이 빠졌단다.

“처음 담배 끊고 나서 마라톤을 시작한 뒤 1년 동안은 가래가 계속 나왔어요. 새까만 가래가. 마라톤 시작하기 전에 방사선과에서 검강검진을 받아보면 폐가 뿌옇게 나왔어요, 갈비뼈가 안 보일만큼. 그런데 마라톤을 몇 년 한뒤 얼마 전 다시 가서 방사선을 찍어보니 검은 색 필름위에 뿌연 게 사라지고 갈비뼈가 선명하게 나오는 거에요. 거기 의사가 물었죠 “무슨 운동하십니까? 이거 건강한 사람 견본으로 제가 걸어놓고 싶네요”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대화를 계속하던 중 그가 환갑을 코 앞에 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분명 누가봐도 40대로 보이는 외모였다. 동안이라는 말을 건네자 그가 웃으며 “머리가 좀 벗겨져서 그렇지 모자를 쓰면 젊어보이긴 할 거에요”라고 답한다.

몸이 달라지고, 동안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니 그의 경험 자체가 훌륭한 마라톤 예찬론이다.

“마라톤은 성질...아니 아니 성격을 차분하게 만드는데도 도움을 줘요. 바둑이 사람을 차분하게 해준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괴롭거나 우울할 때 뛰면서 생각을 해요. 잘못했던 것,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을 하다보면 해소가 되더라구요. 자신을 돌아보게 될 기회가 됐어요”

17일 오전 7시. 대회장에 도착한 뒤 김 국장의 표정이 더 밝아진다.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설렌다고 답했다.

대회시작 30분전. 짐을 맡기고 몸을 풀기 시작한다. 이제는 각자 스스로의 싸움을 할 시간이다. 기록별로 A그룹부터 E그룹까지 나눠 2만 여명이 줄지어 출발선에 섰다.

오전 8시. 땅 소리가 나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차량을 모두 막은 채 광화문 앞 왕복 10차선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모든 러너에게도 남다르다. 드디어 오전 8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앞으로 쏟아져나갔다.

오늘도 달리고, 내일도 달린다

 

▲ 박광표씨는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 생각보다 좋은 기록으로 결승선에 도착했다. 이 날 가장 표정이 좋은 사람은 박씨였다. ⓒ제주의소리

해가 하늘로 높게 떠오르자 자신과의 긴 싸움을 버틴 이들이 하나 둘 씩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케냐의 프랭클린 쳅크워니(28)가 2시간6분59초로 골인점을 통과했다. 그 뒤로 하나 둘 씩 엘리트선수들이 들어섰다. 2시간 40분대가 넘어서자 일반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서브 3(3시간 이내에 골인지점에 들어오는 것)는 마라톤 매니아들에게는 ‘로망’이자 ‘훈장’이다. 이 서브3를 달성했다는 자체만으로 일반인 마라토너 중에서는 상당한 실력자라는 증거가 된다.

서브 3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진 지 몇 분 후 오혜선(44)씨가 결승선에 들어섰다. 오 씨를 시작으로 서귀포마라톤클럽 회원들이 하나 둘 씩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몸살로 뛸 수 있을까 걱정을 하던 서옥선 씨 역시 무사히 완주를 했다.

전원이 완주하고 이제 남은 것은 첫 도전을 한 문미정(51)씨.

5시간이 다 되도록 모습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한다. 5시간 하고도 15분 정도가 지나가자 문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 쯤은 기쁘면서도 반 쯤은 얼이 빠진 듯한 표정. 그리고 몹시 지쳐보였다. 회원들이 모여 그녀를 향해 박수를 치며 포옹을 나눴다.

이 날 가장 표정이 좋았던 사람은 박광표(50)씨. 그는 본인의 최고기록을 9분이나 앞당겨 약 3시간 17분대에 들어왔다. 기록증을 제출하지 않아 본래 기록이면 B코스 정도에서 뛰었을텐데, 맨 뒤 E코스에서부터 수백명을 제치며 거슬러 올라오니 힘이 많이 부쳤다고 말했다. 

그는 “기쁘고, 감동도 느껴진다”며 “사실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했는데 이상하게 욕심이 났다. 그래서 욕심을 조금 부렸는데 그게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명상’은 이 날 코스에서도 찾아왔다. 박씨는 “한 10분간은 나만의 세계 속에 빠져서 생각을 했다며 그 때만큼은 완전히 내 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2013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서귀포마라톤클럽 회원들. ⓒ제주의소리

모두가 골인지점에 들어오자 지쳐서 드러누울줄로만 알았지만 금새 일어나 수다를 나눴다. 후련한 모습이다. 회장 고익보씨가 트레이닝복을 걸친 채 운동장에서 계속 빠져나오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말한다.

“마라톤에는 늘 고통이 따르고,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그것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오늘 뛰고나서 ‘죽었다 깨나도 다시 안 뛴다’ 이런 생각을 할 거에요.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다시 뛰고싶어 안달이 날 겁니다. 누구도 맛 볼 수 없는 기쁨이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한 가지 행복을 더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시 버스로 돌아가는 길. 지칠법도 한 데 모두가 발걸음이 가볍다. 큰 대회를 치루고나니 아쉽거나 허무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김영민(43)씨가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도 대회는 계속 있으니까요. 어떻게보면 이번 대회는 봄 첫 대회이니만큼 자신이 겨울동안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했는지 확인해보는 시험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뛰어야죠”

“그럼 훈련도 계속되나요?”
“그럼요, 다음 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도 변함없이 계속 훈련합니다”

그들에게 마라톤은 특별한 대회나 기록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늘 이어지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각자 밭으로, 가게로, 직장으로 돌아가지만 어김없이 새벽이 되면 다시 거리로 나가는 그들에게 허무하지 않냐는 물음은 우문이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길. 9월 29일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건넸다. 그리고  이 스포츠 매니아들에게 별 염려는 안되지만 ‘건강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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